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임종을 앞두고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개인의 의사를 담은 문서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광고지난 2월에 정년퇴직하신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수명이 길어진 현대인에게 인생은 30년 단위 3막이다. 독립을 위한 교육과 성장의 1막 30년, 홀로 선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존재 가치를 쌓는 2막 30년, 그리고 은퇴와 함께 존재 이유를 완성해 가는 3막 30년이다. 스승님의 2막은 정신과 의사로 시작해 성적 경쟁에 힘들어하는 의대생들을 면담하다 의학교육학자로 변신하셨고, 나중에 사회의 아픔을 보듬고자 인문사회의학자가 되어 통일 보건과 사회적 참사 치유에 투신하였다. 그리고 이제 스승님은 대학을 떠나 서울을 살짝 벗어난 조용한 곳에 작은 공간의 개인 연구소를 차리고 인생 3막을 걷고 있다. 이곳이 수도원 같다며 방해받지 않고 사색하고, 독서하고, 글을 쓰고 있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스승님은 지도교수를 넘어 러닝메이트가 되어주었다. 앞서 입학한 학우들의 중도 포기가 많았기에 학위논문을 쓸 때도 포기하지 않도록 매주 미팅을 잡고 한주간 채워진 글을 본인에게 공부시켜 달라며 나를 이끌어주었다. 인문학의 위험인 자칫 생각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우주 미아가 되지 않도록 처음과 끝 모든 구간의 말 없는 이정표가 되어 함께 달리셨다. 그렇게 정년을 맞이한 스승님을 몇달 만에 뵈었는데 수도자의 절제된 일상 탓인지 살이 빠져 턱선이 더 날렵해졌고, 빛나는 눈빛과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모습이 열정 가득한 청년 같았다.리 호이나키의 저서 ‘아미쿠스 모르티스’(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이날은 스승님과 후학들이 함께 모여 독서 모임을 하는 날이었는데 이번 책은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라는 뜻의 ‘아미쿠스 모르티스’였다. 인간은 탄생과 함께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자신의 소멸을 미리 염려한다고 말한다. 그 염려는 부정적 혹은 긍정적인 영향으로 삶을 이끌게 되고, 두려움에 휘둘리기보다 마지막까지 자기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비로소 삶은 완성된다. 자기다움, 즉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함께 걷는 가족, 친구, 공동체와 관습을 저자는 죽음까지 함께하는 아미쿠스 모르티스라고 말한다. 저자 리 호이나키의 삶과 철학은 자신의 친구이자 스승인 생태주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의 사상과 궤를 같이한다. 이반 일리치는 저서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서 의료 과잉 세태를 비판했고, 자신의 ‘죽어감’에서도 병원을 이용하지 않았다. 리 호이나키 역시 암 투병 중인 동생 버나드가 마지막 두달을 병원이 아닌 집에서 지내며 지난 삶을 반추하고 가족과 이웃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메시지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반면 마지막까지 병원 치료를 포기하지 못해 삶이 황폐해진 지인도 있었고, 첨단 시대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추모 의례를 고수하는 마을 공동체를 체험하며 존엄한 죽음이 어려운 현대사회의 결핍과 과잉이 무엇인지 이 책에 담았다.스승님은 현대인이 병원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주체적으로 죽음을 준비한다면 늦지 않게 의학적 집착을 내려놓아야 함을 고민하셨다. 안타깝게도 그 결정을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너무 유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려놓음이 가능성의 포기가 아니라고 지지하는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그것이 삶의 완성임을 믿는 문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죽음은 공동체와 문화가 아닌 개인과 법이 책임지는 구조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를 늘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적 주체로 상정하고, 자기결정권을 이성의 결정체 즉,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 취지는 그럴싸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유약함에 대한 배려도, 그것을 보완해줄 친구도 없다. 연명의료결정법은 개인의 결단을 촉구하는 방식이어서 말기 환자는 더없이 고독하고 두렵다. 스스로 자기 목숨줄을 끊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법이 관여하는 순간 오랫동안 공동체를 지탱해왔던 관습은 폐기되고, 처벌에 대한 경계와 서로에 대한 불신만 남는다.광고이런 우려는 사법부 안에서도 이미 제기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촉발시켰던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당시 가족들은 병원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 외에도, 국가를 상대로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제도 마련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없다며 각하했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 사회적 논의를 통한 제도 마련의 필요성은 긍정하였다. 다만 판결문에서 헌법재판관 이공현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고 우리 사회 관습에 익숙하지도 않은 자기결정권이 절대 공준이 되는 제도’는 위험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대화보다는 법으로 모든 사회 갈등을 정리하려는 한국 사회의 조급성은 자기결정권을 전면에 내세운 법 제정이라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법은 연명의료를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해악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법의 바탕에 존엄한 죽음을 맞고픈 말기 환자의 처지는 배제한 채 분쟁을 최소화하려는 정부 편의주의와, 죽음을 피하고픈 일반인의 의지가 깔려있다. 그래서 모든 절차가 복잡하다. 환자와 가족의 뜻을 확인하는 과정도, 임종기에 대한 의학적 판단도 주치의 소견만으로는 신뢰할 수 없어 동료 전문의의 추가 확인을 강제한다. 무엇보다 편안한 죽음을 쉬운 죽음이라고 의심하며 마지막까지 산소와 수액 등 영양 공급을 강제 의무로 명시하였다. 이 때문에 환자는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주삿바늘에 찔려 멍이 들고, 팔다리가 붓고, 산소 줄과 콧줄을 빼지 못하도록 묶이는 신세가 된다.한국은행의 BOK 이슈노트 발췌.편히 죽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자기결정권 때문에 환자는 더욱 고독해졌고, 의료진은 ‘충분한’ 설명을 ‘중립적’으로 제공하고 결정만 기다려야 한다. 아니 죽음 앞에서 의지할 친구가 되기는커녕,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중환자실 지옥을 선사하겠다는 협박범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여전히 공동체와 문화의 역할은 외면한 채, 자기결정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제도 정비 및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독려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현실은 참담하다. 정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가파르게 늘였다며 성과를 자축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오히려 연명의료가 늘고 있는 엇박자가 관찰된다. 곰곰이 얘기를 듣던 스승님은 사자성어 ‘결초보은’의 배경인 중국 고전 소설 ‘열국지’의 한 부분인 ‘인자종치명 부종란명’(人子從治命 不從亂命)에 대해 이야기했다.광고광고중국 위나라 장수 위과의 아버지는 조희라는 어린 첩을 두었는데, 노쇠한 자신이 죽거든 조희가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라고 아들 위과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임종기에 그는 정신이 혼미하여 첩을 자신과 함께 순장하라고 하였다. 위과는 고민하다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조희에게 새출발을 하도록 하였다. 동생이 이유를 묻자 위과는 “효자는 맑은 정신으로 말한 ‘치명’(治命)을 따라야지, 혼미할 때의 ‘난명’(亂命)을 따르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훗날 진나라와의 전쟁 중 위과는 수세에 몰렸으나 누군가 미리 묶은 들판의 풀에 적군의 말들이 걸려 넘어지면서 큰 승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꿈에 조희의 아버지가 나타나 ‘난명’ 대신 ‘치명’을 따라 딸의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음을 말한다.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크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난명도 법으로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끝까지 치명을 지켜낸 효자와 같은 아미쿠스 모르티스의 문화가 아닐까?임권택 감독의 1996년 영화 ‘축제’ 포스터. 태흥영화 제공임권택 감독의 1996년 영화 ‘축제’에서 아미쿠스 모르티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고령의 노모가 곡기를 끊고 쓰러졌다는 말에 서울 살던 아들 준섭은 급히 고향에 내려간다. 다른 형제들은 이미 모여 있었고, 시골집 마당에는 마을 이웃들이 장례 준비를 마치고 먼저 흥겨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힘겹게 눈을 뜨지만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횡설수설한다. 급히 병원이라도 모시고 가서 보약이나 링거라도 맞춰야 하지 않겠냐는 준섭의 말에 평생 수발을 들었던 형수가 펄쩍 뛴다. 편히 가게 해드려야지, 그러면 더 힘만 들게 한다는 것이다. 모든 가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노모는 편히 세상을 떠난다. 한국에서 병원 임종이 자택 임종을 앞지른 것이 2003년 즈음이니 1996년 당시는 집에서의 마무리가 흔했고, 병원에 있더라도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관습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런 관습도, 죽음을 축제로 만들어줄 마을 이웃도 남아 있질 않다. 덩그러니 서류 한장을 두고 우리는 스스로의 죽음을 홀로 결정해야 한다.광고박중철 |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