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한국 민중미술과 탈식민 운동을 연구해온 미술사학자 이솔(43) 미국 뉴욕주립 스토니브룩대 부교수는 몇년 전부터 전세계 해조류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솔 교수 제공광고“어찌 보면, 전 해조류를 짝사랑하고 있어요. 사랑하려면 잘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탐구하고 있어요.”그저 식재료로만 여겨졌던 해조류에서 전통과 역사, 관계와 예술을 읽는 사람이 있다. 1970~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과 탈식민 운동을 연구해온 미술사학자 이솔(43·사진) 미국 뉴욕주립 스토니브룩대 부교수다. 미술사 전공자로 현대·동시대 아시아 미술, 사회참여 미술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그가 몇년 전부터 해조류에 푹 빠져있다. 도대체 해조류에 어떤 독특한 이야기가 담긴 걸까.지난 19일 자정, 화상회의 플랫폼에서 만난 이솔 교수는 각 지역의 해조류 문화는 기후위기와 선주민·식민 문화, 여성주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가 처음 해조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 도시가 멈췄을 때였다. 집 근처 뉴욕의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길 위에 떨어진 조미 김을 발견하고는, 한국의 대표 해조인 김이 1만㎞를 떨어진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에 묘한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광고이후 한국에 머물던 2023년 7월, 광주비엔날레에서 캐나다 선주민 ‘이누이트’ 예술가 케노주악 아셰바크(1927~2013년)의 작품 ‘바닷말을 먹는 토끼’(1958년)를 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해조에 매혹됐다. 통통한 토끼가 거대한 해조를 먹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이 판화 작품은, 초기 북극 예술의 정체성과 이누이트 예술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유명작이다. “토끼가 해조를 먹는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한국·일본 풍속화에도 해조류를 채취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프랑스에도 이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해조류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선 김, 미역, 다시마를 떠올리지만, 한반도에 서식하는 해조류만 약 750종에 달할 정도로 다양하다. 전세계적으로는 수천~수만종에 이른다. 물고기들의 산란처이자 먹이원으로, 해양 생태계의 1차 생산자이지만 기후위기로 서식지가 파괴되며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광고광고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시네콕 선주민 보호구역에서 열린 해조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서 이솔 교수가 참가자들에게 미역을 설명하고 있다. 이솔 교수 제공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시네콕 선주민 보호구역에서 열린 해조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와 함께 웃고 있는 이솔 교수. 이솔 교수 제공이때부터 이 교수는 미국 하와이와 뉴욕 롱아일랜드, 한국 제주 등을 찾아 사람들이 해조류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 조사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각 지역에서 해조류는 선주민 주권 운동, 여성 전승 문화 등과 깊게 연관돼 있었다. 그는 단순히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들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해조를 선물로 나누고는 했어요. 음식을 공유하면서 식구가 되는 거죠.”직접 만든 ‘해조 요리’를 참가자에게 대접하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제주에서 한 퍼포먼스 ‘리무 리포트’에서 그는 하와이 해조를 얹은 두부 요리와 제주 톳, 우뭇가사리로 만든 비빔밥을 만들었다. 뉴욕 시네콕 선주민 보호구역에서는 미역국과 김밥, 미역귀 튀각을 요리했다. “직접 음식 25인분을 만들었어요. 해조로 만든 음식을 선보이면서 해조류에 대한 역사, 생태, 문화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렇게 한국에 하와이 해조인 ‘리무 마나무에아’가, 뉴욕에 한국 김·미역이 전해졌다.광고이런 식의 연구 방식을 그는 ‘실천 기반 연구’라고 설명했다. 이론이나 문헌 조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작품을 제작하거나 전시를 기획하는 등의 실천을 통해 미술사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해조류 요리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적 실천으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런 연구 방법이 기존 미술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을 재발견하고, 미술사 연구 자체도 새롭게 접근하는 방법이 될 거라 보고 있다.이번 해조류 연구 또한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를 부른 인간 중심적 사고를 되돌아보는 예술이 되길 기대한다. 이솔 교수는 “한국의 민중미술을 연구하며 배운 것 중 하나가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라면서 “자신의 인생을 한국 민주화에 바친 예술가들의 삶을 보며 나는 어떤 동료를 찾고, 어떤 실천을 하며,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그러한 고민의 실마리를 해조·바다와 오랜 기간 엮여온 인간의 의례, 기억, 생태에서 찾은 것이다. 선주민 문화와 식량 주권, 생태 지식과 기후위기를 함께 살펴보는 시도다.지난 2024년 6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첫 미역국 프로그램에서 이솔 교수가 한국의 식용 해조류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솔 교수 제공예컨대 하와이에서는 가족들이 서로의 잘못과 상처를 이야기한 뒤 목에 해조류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준다고 한다. 그런 뒤 저물녘 바다에 들어가 물이 머리 높이까지 차오르면 해조류 목걸이인 ‘레이 칼라’를 물로 돌려보낸다. 관계를 회복하는 이들의 의례처럼, 우리나라에는 출산한 어머니가 몸조리를 위해 먹던 미역국을 생일마다 챙겨 먹는 관습이 있다. 이 교수는 “어찌 보면 해조는 모든 식물의 기원이자,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고 했다. 바닷가에 기대어 사는 모든 인간에게 해조와 엮인 역사가 있고, 이를 잇는 것이 우리가 잊고 있는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다만 해조류의 생애와 욕구, 정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해조류를 먹거리, 자원으로만 바라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분명 우리 생활사에 더 많은 해조류가 숨어 있을 거라고 했다. “일제식민지 시대 때 감태를 채취한 해녀 이야기를 취재하고 있어요. 감태가 폭탄의 원료로 쓰였다고 하더라고요.” 당분간 이 교수는 기후위기로 사라져 가는 해조류를 좇는 모험을 지속할 생각이다. 먼저 올 하반기 미국 메인주, 캐나다 노바스코샤, 프랑스 브리타니, 일본 오키나와를 찾아 그 지역 해조에 대해 알아볼 계획이다. “저도 제 연구도, 해조류와 해류를 따라 국경 없이 흐르는 셈이죠.”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