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시각예술 작가 홍민정씨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40대 여성 회화 작가가 작업실에서 개와 함께 작업하는 장면을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광고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1980년대 후반생인 홍민정(가명)씨는 시각예술 작가로 활동한 지 이제 11년째. 대학 때부터 따지면 20년째 미술을 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보고 처음으로 감동했던 작품은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의 햇빛’(Morning Sun)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미대에서 회화와 조각을 복수 전공했다. 전공이 두개라 졸업 전시회도 두번 했다. 그의 작품을 처음 구매한 사람은 대학원에서 배웠던 선생님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 작품이 선생님 댁에 걸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응원하는 마음에서 사주셨을 거라는 그의 말에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나는 홍씨를 세번 만났다. 연희동 카페에서 한번, 향동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또 한번, 그리고 신사동의 전시장에서 또 한번. 이 세번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연희동 카페에서 만난 것은 3월이었다. 지난해에 ‘80년대생 여성이 미술 작가로 사는 법’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했을 때, 계속되는 전시 준비로 일정을 내기 어려운 그가 비교적 좋다고 한 게 그때였다. 하지만 그날도 아크릴 공장에 발주한 작품 일부가 도면대로 나오지 않아 여러번 전화하는 걸 보았다. 4월에는 작업실에 갔다. 심지어 그가 프랑스로 출국하기 전날이었다. 프랑스의 어느 조각 공원에 테크니션과 함께 설치하러 간다고 했다. 세번째 만남은 작가의 전시회 오프닝에서였다. 본인의 전시회에 잘 가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었기에 만날 줄 몰랐다. 뒤늦게 나타난 그는 이 전시회의 작가라는 걸 밝히지 않고 관람객 속에 있었다.광고리히터가 그랬다던가. 자신의 전시회에 나타나지 않는 거로 유명한 그는 가끔 자신의 금기를 깨기도 했다고. 또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아 본인 사진 대신 청소 노동자 사진을 보내기도 했었다고. 완전한 익명으로 존재할 수는 없을지라도 웬만하면 작업실에서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의사를 존중해 이 인터뷰도 익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인터뷰하면서 그가 작업실에서 작업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업 외의 삶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랄까. 오전 9시에 작업실에 나가 10시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오후 6까지 일하는 게 일상의 루틴. 하지만 이 루틴이 붕괴된 지 오래다. 오후 6시에 회화과와 조소과 출신의 어시스턴트 두명이 퇴근하고 나서도, 홍씨는 계속해서 일을 이어간다. 일을 하다 보면 계속 시간이 흘러서 집에 잘 안 간다고 했다. 일년의 반은 폐인처럼, 일년의 반은 정상인처럼 산다며. 사실, 루틴이랄 게 없는 삶이라고 해도 되겠다. 모든 게 작업에 매몰된 삶.광고광고“집에 안 가면 잠은 어떻게…?”그렇게 사는 게 가능한가 싶어 이렇게 물었더니, 간이침대가 있다고 했다. 한달 후 작업실에 가보고 나는 그가 집에 가지 않는 이유를 이해했다. 층고가 높은 작업실 한쪽에는 완벽하게 구비된 한 사람을 위한 모듈형 살림집이 있었다. 옷장과 책꽂이와 책상과 싱크대가 일체형 가구로 짜여 있었고, 공중전화 박스만 하게 만들어진 샤워 부스도 있었다. 그리고 커튼 안에는 상당히 안락해 보이는 침대가 있었다.광고“이게 문제였네요.”그와 잘 아는 사이였다면 ‘원흉’이라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보니 애초에 이건 집에 가지 않을 생각을 하고 만들어둔 기능적이면서 미학적이기도 한 또 하나의 집이었다.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미술가를 위한 작은 집은 간결하고도 편안해 보였다. 이러니 일상과 작업을 분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원래의 집에 가지 않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작업실은 10층이라 채광도 좋았다.작가 작업실이 입주해 있는 6m 층고의 아파트형 공장. 본인 제공아파트형 공장에 있다는 작업실에 가면서 나는 살짝 긴장했었는데, 10층까지 차를 갖고 올라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경사가 가파른 대로를 건널 때마다 눈을 감고 싶어지는 나는 어떻게 10층까지 차를 갖고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의아하기도 했다. 올라가 보니 알 수 있었다. 주차타워를 올라가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 10층까지 올라갔으나 어지럽지 않았다. 경사도가 심하지 않아 나 같은 사람도 부담이 없었다. 1007호 앞의 주차 라인에 차를 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층이 족히 6m는 되어 보이는, 독보적인 층고의 이 건물이 매우 기능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장이나 작업장으로 쓰는 방에서 만든 물건을 엘리베이터 따위를 쓰지 않고 바로 차에 실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말이다. 아파트형 공장이란 작업장이 몇층이든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차에 물건을 실을 수 있는 곳이었다.주차를 하고 몇 걸음 떼서 들어간 홍씨의 작업실에는 크고 거대한 물건이 가득했다. 200호 이상의 캔버스는 기본에, 금속 주물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조립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상당히 부피도 크고, 무거워 보이는 것들이. 작업실의 문을 열자마자 그래서 화가의 아틀리에 층고가 높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리고 혼자 하기에 곤란한 일이라는 것도. 캔버스를 돌리거나 세우거나 하는 일도 혼자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는 회화도 스케일이 있는 작품을 주로 하는데다, 크고 무거운 것들을 다뤄야 하는 조각의 특성상 혼자서는 곤란하다.(그는 그다지 체격이 크지 않은 편이다.) 미술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커다란 작업실을 채운 재료들을 구하려면 돈이 들고, 재료들을 다루려면 몸을 써야 하며, 몸을 쓰다 보면 필히 아프다.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 놓고 위에서 하는 작업을 그는 ‘바닥 작업’이라고 했는데, 이 작업을 하다 회전근개 염증이 생겨서 치료받고 있다.광고홍씨도 학부에 다닐 때 이년 정도 어시스턴트 생활을 했다. 미술 학원에서 입시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어시스턴트 하면서 제작에서 전시까지의 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밑 작업과 캔버스 짜기, 붓질하는 법부터 운송과 설치 등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또 달랐다. 그러다가 첫 개인전을 했다.“첫 개인전을 서른에 했어요. 대학원을 4년 다니다가 졸업한 직후였어요. 그러고 나서도 두세번 개인전 할 때까지만 해도 학생의 기분으로 했어요. 아직 배우고 있달까, 연습을 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으로요.”삼십대 초반까지는 학원 일과 외주 디자인 일을 병행했다. 강의를 하면서 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또 강의하다가 작업이 많아지면서 강의도 그만두게 되었다. 온전히 자신의 미술 작업만 하고 살게 된 지 이년째. 그 시점에 지금의 작업실을 꾸리게 되었다. 언제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느냐고 묻자, 잠시 생각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작가가 쓰는 재료 중 일부. 본인 제공“첫 전시 이후 두세번의 개인전을 더 치르고 나서야 저의 작업이 뭔가를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작업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고 공감해 주는 반응을 보면서, 이 방식을 지속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작업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다. 그의 그림은 소위 말하는 구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이나 사람 같은 걸 그리는 게 아니라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린다. 그는 징후적 풍경을 그린다고 표현했다. “제가 느끼는 현실을 그림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포착해요. 앓고 지나온 시간들의 결과로 그림이 남는 것 같아요”라고.스케일이 웅장하고, 켜켜이 쌓인 밀도가 있는 작품이라 상당한 계획이 필요해 보였다. 홍씨는 작업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말했다. 스케치하고, 가공하고, 조립한다고. 작업실에는 스케치, 가공하기 위해 준비 중인 요소들, 그리고 조립하는 중인 것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서 때때로 혼란스럽다는 말이 작업실을 보니 잘 이해되었다. 짐작하기 어려운 도구가 있어 물었더니 간단한 용접도 한다고. 근육이나 뼈에 무리가 오는 것 말고 이런저런 화학 재료를 다룰 텐데 호흡기는 괜찮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몸에 안 좋은 재료는 안 쓰려고 하고 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추세가 그런 것 같아요.”유화 물감의 용매인 테레빈유나 야외 조형물 제작에 많이 쓰이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 같은 유독한 것들은 잘 쓰지 않으려 한다고. 그가 쓰는 재료는 아크릴 미디엄이다. 아크릴 미디엄이라는 재료는 물감의 양을 부풀리거나 마티에르(그림의 표면에 나타나는 재질감)를 주는 역할을 하는 보조제로, 보통 안료와 섞어 사용한다. 하지만 그는 안료를 섞지 않은 보조제로 형체를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입힌다. 그리고 수용성이라 몸에 나쁘지 않다고! 나는 ‘참 다행입니다’라고 하며 웃었다.“마치 몸과 정신이 분리된 것처럼 형상을 그리는 일과 채색의 과정을 분리해, 이러한 방법 자체가 하나의 수사처럼 작동하길 바랐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작의를 존중하자면, 색 없이 아크릴 미디엄으로 작업하는 그의 방식은 영혼 없는 육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현대 사회의 어떤 것들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회화와 조각을 낡은 장르로 취급하는 창작자들을 많이 봤다며, 연희동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생각을 물었다. 더구나 당신은 디지털 시대의 회화를 한다는 평을 받지 않느냐며.“회화나 조각이 ‘올드 미디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대성을 탐색하는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라고는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게 맞는 발화 방식이기도 하고요. 이게 올드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그의 작업실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그의 이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가 회화와 조각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작가들이 단어로 세상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가 도구로 삼는 모든 물성은 그의 언어였다. 그림 그리듯 조각하고, 조각하듯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 홍씨였다.한은형 작가*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이름 및 여러 정보를 변형했음을 알립니다.한은형 작가한은형 l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거짓말’ ‘레이디 맥도날드’와 경장편소설 ‘서핑하는 정신’,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산문집 ‘밤은 부드러워, 마셔’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