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제43대 대한병원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유경하 이화여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병협이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의료계의 정책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식 기획위원 광고2024년 의정갈등 이후 한국 의료계는 깊은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으며, 갈등 조율은 한국 의료의 향방을 가를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1959년 설립된 병원계 대표 법정단체인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의 역할도 한층 무거워지고 있다. 지난달 제43대 병협 회장으로 선출된 유경하 이화여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이러한 전환기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화여대 의대 출신으로 이대목동병원장을 거쳐 2020년부터 이화의료원을 이끌고 있는 그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이대서울병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의료 위기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덮여 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정부와 의료계 모두 해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명확해진 만큼 이제는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한국 의료가 지속 가능한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 논의할 때”라고 강조했다. -많은 이가 대한병원협회를 병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로 인식한다. 신임 회장으로서 협회의 역할을 어떻게 설명하고 싶나.광고 “병협의 역할은 단순한 이익단체를 넘어선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병협의 존재 이유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시기였다. 당시 병원들은 코로나 환자 병상을 확보하면서도 암 환자와 응급환자 진료를 지속해야 했고, 의료진 감염을 막으면서 의료체계도 유지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병협은 현장의 어려움을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 정책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가교 구실을 했다. 병협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동시에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의료 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도 갖고 있다.광고광고 앞으로도 병협은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정책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의료 현장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상호 신뢰다. 정책은 취지가 좋아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의대 정원 확대 역시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누가 교육할 것인지, 수련 공간은 충분한지, 교육의 질은 유지될 수 있는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준비 없이 제도가 급격히 바뀌면 결국 현장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병협이 정부와 병원 사이에서 실질적인 소통 플랫폼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필수의료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지역완결형 필수의료’를 강조했는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광고 “필수의료 문제는 인력, 수가, 병원 인프라, 지역 의료체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어느 한 가지 대책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다. 병원이 필수의료를 유지할 수 없다면 지역 의료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응급, 소아, 분만, 외상 분야는 국민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의료진 확보가 어렵고 24시간 운영체계를 유지해야 하며 수익 구조도 충분하지 않다.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 의료는 국방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인프라다. 단기적으로는 적절한 보상이 가능한 수가 체계 개편이 우선돼야 하고, 과감한 재정 투자도 뒤따라야 한다. 동시에 지역 수련 시스템을 강화해 젊은 의사들이 지역에서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수도권 집중도 완화할 수 있다. 더불어 병원 간 역할 분담과 협력도 중요하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 중심 진료를 맡고, 지역 중소병원과 전문병원은 회복기 치료와 만성질환 관리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인 ‘지역 안에서 치료가 끝나는 의료’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본다.” -의정갈등 과정에서 전공의 집단 이탈 문제가 큰 쟁점이었다. 전공의와의 신뢰 회복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나.광고 “전공의는 단순히 수련받는 의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공의들이 충분히 존중받는다고 느끼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병협 역시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신뢰 회복은 결국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실제 근무환경, 교육 여건, 휴식 보장, 삶의 질 문제를 정기적으로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전공의를 ‘버텨야 하는 인력’이 아니라 ‘성장해야 하는 인재’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이 의료계의 화두다. 한편에서는 의료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I는 의료를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 다만 대형병원만 AI를 적극 활용하고 지역·중소병원은 비용과 인력 문제로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면 의료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할 수 있다. 그래서 병협은 단순히 ‘AI를 도입하자’고 외치는 데 그치지 않으려 한다. 병원 규모나 지역 차이와 관계없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표준화된 플랫폼 구축, 의료진 교육 지원, 여러 병원이 공동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최근 병협이 AI전략사업국을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는 10월 서울에서 국제병원연맹(IHF) 세계병원대회가 열린다. 어떤 의미를 가진 행사인가. “이번 세계병원대회는 한국 의료의 경험과 역량을 세계와 공유할 중요한 기회다.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접근성과 효율성을 갖춘 의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위기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대응한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극한 상황에서도 환자 곁을 지킨 의료진의 헌신은 세계적으로도 평가받을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 의료가 안고 있는 과제도 숨기고 싶지 않다. 필수의료 인력 부족, 지역 의료 불균형, 저수가로 인한 병원 운영의 어려움 같은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번 대회가 단순한 ‘K-의료 홍보 행사’가 아니라 한국 의료의 강점과 고민을 함께 세계와 논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그런 진정성이 오히려 한국 의료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병협 67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임기를 시작했다. 2년 뒤 어떤 평가를 듣고 싶은가. “여성 회장 선출은 그저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다만 모든 평가가 ‘첫 여성 회장’이라는 시선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성과다. 2년 뒤에는 병협이 조금 더 연결된 조직이 됐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병원 간, 지역 간, 세대 간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또 필수의료와 수련 환경 문제를 선언적인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변화의 출발점으로 만들고 싶다. 병원이 버텨야 국민 의료도 유지된다. 병원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국민 안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