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5·18민주광장 분수대가 물을 뿜고 있다. 광고오월길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흔적을 따라 걷는 66.2㎞의 길이다. 횃불, 희생, 광장, 열정, 영혼, 그리고 최근 추가된 ‘한강 작가 소년의 길’까지 6개 코스다. 길을 따라 주요 현장에 사적비를 세워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광주광역시가 만든 스마트투어 앱 ‘5·18 민주화운동’을 따라 걸으면 편리하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도 오월길 안내 코너가 따로 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 광주를 겪은 백기철 전 한겨레 기자가 오월길 이야기를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5·18민주광장의 분수대는 힘차게 물을 내뿜고 있다. 오월 햇살을 받아 부서지는 물줄기가 눈부시다. 5·18민중항쟁 46돌을 맞은 광장은 산뜻하다.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이 복원돼 가림막이 치워졌고, 18일부터는 내부도 공개됐다. 오랜 기간 복원을 마친 도청과 상무관을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도청 본관을 비롯해 6개 동이 예전 모습을 갖추니 일대가 제법 풍성하다. 오래된 관공서 건물인 본관을 중심으로 주변 건물들이 모두 제자리에 들어섰다. 철거됐던 정문 쪽 행정안내실은 이번에 다시 지었다. 본관 좌우의 회의실과 도경 민원실, 별관이 제각각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예전 사진 등을 토대로 건물들 안팎에 복원한 탄흔들은 항쟁 당시의 엄혹함을 증언한다. 건물들 내부는 당시 상황을 현장감 있게 살필 수 있도록 원형을 복원하면서 영상, 사진, 기록물 등 다양한 자료들을 비치했다. 계엄군 공격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네모난 추모 동판이 각각 현장 바닥에 새겨졌다. 회의실 2층 강당 바닥 중앙에는 ‘윤상원’이라 적힌 동판이 있다. “1980년 5월27일 최후항쟁 당시 오월의 별이 된 자리”라고 적혀 있다. 시민학생투쟁위 대변인을 맡아 활동하다 5월27일 도청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30살이었다. 전라남도경찰국 건물 3층 복도 중앙로비에는 광주상고 1년 동기 문재학과 안종필의 이름이 각각 새겨진 동판이 있다. 애초 각종 자료에는 2층 복도 로비에서 두 사람이 희생된 것으로 돼 있었지만 이번에 당시 사진 등을 토대로 검증한 결과 3층 복도 로비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광고 상무관은 정중앙 벽면에 빛바랜 태극기 액자가 있다. 그 아래 둥글게 이어지는 제단 형태의 구조물 위로 타고 흐르듯 내려오는 흰 천의 물결이 마룻바닥 전체를 가르고 있다. 항쟁 당시 상무관을 가득 채웠던 희생자들의 관과 그것을 덮은 흰 천, 그리고 시민들의 끊이지 않는 발길을 떠올리게 한다.복원된 옛 전남도청 본관. 밝은 파랑색으로 단장한 분수대는 46년 전 오월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계엄군이 도시를 짓밟기 전 시민 집회의 주 무대가 분수대였다. 이곳에서 ‘민족민주화 대성회’가 연일 열렸고 횃불 대행진도 펼쳐졌다. 도청에서 공수부대가 철수한 뒤에는 ‘범시민 궐기대회’가 열렸다.광고광고 한강 작가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은숙은 항쟁이 진압된 직후 도청 앞 분수대 물줄기가 평소처럼 솟는 것에 분노한다. 여고 3년생 은숙은 버스를 타고 하교하면서 치솟는 분수를 보면 참을 수 없었다. 집 앞 버스정류장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 도청 민원실에 전화해 절규하듯 항의한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광고 은숙은 항쟁 기간 상무관에서 중학교 3학년 동호와 함께 시신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계엄군이 진입하기 전날 밤 항쟁 지도부 결정에 따라 여성들은 도청 밖으로 내보내졌다. 같이 나가자는 은숙의 간청을 거절한 동호는 그날 새벽 다른 학생들과 함께 총을 맞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은숙은 그 학살의 현장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치솟는 분수에 무너졌다. ‘6월의 분수’에 대한 분노는 다름 아닌 80년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다. 한강 작가는 그 분노와 슬픔을 장례식으로 표현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 간 뒤에/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1980년 가을 광주의 한 극장. 나는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할리우드식 멜로드라마였던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도중 갑자기 슬픔, 미안함, 분노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밀려왔다. 수많은 이들이 계엄군에 짓밟혀 스러져간 도시, 그 광장 바로 옆 영화관에서 내가 느긋하게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게 너무도 슬프고 부끄러웠다. 그 극장에서의 미안함은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았다. 이학영 시인은 시 ‘각시꽃’에서 살아남은 이의 슬픔을 이렇게 노래했다. “살아남아서/이 봄을 맞는 죄로/아려오는구나, 사랑이여/눈물도 묻혔다 피어나면/선연한 핏빛으로/다시 오는가/불타버린/어느 옹기막 자리에서인들/저리도 붉은 꽃 피어날 수 있을까.”광고 옛 도청 앞 분수대는 이제는 힘차게 물줄기를 내뿜는다. 1971년 설치돼 55년 된 분수대는 노후화로 한때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분수대는 일종의 금지구역이었다. 무슨 날만 되면 분수대 주변에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2015년 새롭게 설비를 갖추고 정비된 분수대는 이제 ‘빛의 분수’를 내뿜는다. 솟구치는 물줄기에 미디어아트 영상 기술을 더해 다양한 분수 모양이 연출된다. 가끔 힘차게 솟는 물줄기 사이로 활활 타오르는 횃불 모습도 보인다. 1980년 5월16일 밤 시민들이 도심을 돌며 벌인 횃불 대행진을 떠오르게 한다. 고2 학생이던 나도 그날 밤 횃불 대행진 행렬에 끼였다.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내를 돌았다. 도청 앞 분수대 물줄기는 5월 햇살 아래 다양한 변주를 보이며 힘차게 솟구친다. 마치 금남로에서, 도청에서 스러져간 이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처럼 보인다.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는 합창처럼 들린다. 과거의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는 이제는 ‘빛의 물줄기’가 되어 솟구친다.5·18민주광장 시계탑. 분수대 앞쪽에는 고색창연한 시계탑이 있다. 1971년 세워진 시계탑은 광주항쟁 때도 이곳을 지켰다. 1980년대 중반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계탑은 도심 밖 농성광장으로 옮겨졌다. 시계탑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연결됐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실제 인물인 힌츠페터는 항쟁 기간 광주에 들어와 도청과 금남로 상황을 영상에 담았다. 도청 앞 광장 영상에는 분수대와 함께 시계탑이 등장하곤 했다. 시계탑은 시민들을 담은 영상의 한구석을 지키며 오월 광주라는 시공간의 좌표이자 증거가 됐다. 1980년대 후반 5·18을 다룬 비디오나 다큐멘터리는 힌츠페터의 영상과 연결해 ‘시계탑은 알고 있다’라는 제목을 상징적으로 사용하곤 했다. 시계탑은 2015년 30여년 만의 ‘유배’를 끝내고 도청 앞 광장으로 돌아왔다. 당시 투병 중이던 힌츠페터는 시계탑의 귀환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했다. 광주로 보낸 축하 메시지에서 그는 시계탑이 오월의 진실을 목격한 증인이자 미래 세대의 나침반이라고 적었다. 시계탑은 이제 매일 오후 5시18분, ‘님을 위한 행진곡’을 광장에 울려 퍼뜨린다.광주 금남로 인근에 자리한 광주극장. 금남로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광주극장이 있다. 1980년 그 가을, 스크린 속 할리우드의 화려함 너머로 광주의 비극을 곱씹던 나의 청춘이 머문 자리다. 육중했던 회색 콘크리트 외벽은 군데군데 살갗이 벗겨진 채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건물 정면에는 대형 영화 간판이 걸려 있다. 영화를 지금도 상영하고 있다. 주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것 같다. 거대 자본의 멀티플렉스가 세상을 덮은 시절, 일제 강점기부터 있었다는 이 낡은 극장이 여전히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게 반갑고 신기했다. 마치 오월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낸 채 묵묵히 시대를 견뎌온 노병 같아 보였다. 글·사진 백기철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객원교수 kckc100@naver.com (참고자료) 한강, ‘소년이 온다’(창비, 2014)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 2017) 김상봉, ‘철학의 헌정’(도서출판 길, 2015) 광주서석고등학교 제5회 동창회 엮음, ‘5·18, 우리들의 이야기’(심미안, 2019)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백산서당, 2023)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2024) 광주광역시 스마트투어 앱 ‘5·18민주화운동’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https://518.org/base/main/view글쓴이 백기철은 광주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1980년 광주항쟁 때 고교 2년생으로 광주를 겪었습니다. 2023년까지 서울에서 ‘한겨레’ 기자로 33년간 일했습니다. 최근 2년여 동안 매주 광주를 찾을 일이 생겨 틈틈이 오월길을 걸었습니다. 그 사이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따라 걷는 오월길은 더욱 애잔하면서도 명징했습니다. 오월길에서 접한 광주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를 담아 독자들과 만나려 합니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오월길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흔적을 따라 걷는 66.2㎞의 길이다. 횃불, 희생, 광장, 열정, 영혼, 그리고 최근 추가된 ‘한강 작가 소년의 길’까지 6개 코스다. 길을 따라 주요 현장에 사적비를 세워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광주광역시가 만든 스마트투어 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