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김녕만 전 동아일보 기자가 1980년 5월27일 오전 촬영한 옛 전남도청 앞에서 대기 중인 계엄군 전차. 5·18기념재단 제공광고“‘이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탱크까지 동원했구나.’ 그때 위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1980년 5월27일 아침을 기억하는 광주 시민들은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을 보고 46년에 본 계엄군의 전차(탱크)가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당시 20사단은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로부터 전차 18대, 장갑차 9대, 500MD 헬기 1대, UH-1H 헬기 3대, 코브라헬기 2대, 차량 40대를 배속받아 광주 재진입 작전에 투입했다.시민군 기동타격대 대장이었던 윤석루(65)씨는 2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그래도 민간인을 상대로 탱크를 몰고 올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지 않냐”며 “그때 느낀 위압감이나 무서움은 여전하다”고 말했다.광고20사단의 전차 무력시위 사진을 촬영한 나경택(77) 옛 전남매일신문(현 광주일보) 기자도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이 진압된 뒤 취재하면서 광주 시내 곳곳에서 탱크를 봤다”며 “탱크가 상무대로 철수한다고 해 중앙일보 이창성 기자와 광주 서구 돌고개에서 사진을 찍는데 포탑을 전방이 아닌 광주 시내 방향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여차하면 또 들어오겠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항쟁 마지막 날 광주 와이데블유시에이(YWCA)에서 붙잡힌 채영선(69)씨는 “와이더블유시에이에서 경계를 서는데 건물 사이로 캐터필러(무한궤도) 탱크가 도청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봤다”며 “탱크를 상대로는 뭘 할 수가 없으니까 ‘이제 끝났다. 우리가 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채씨는 “5·18 때 탱크를 목격한 우리 같은 시민들은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느낌, 계엄군 복장으로 뺨을 때리는 느낌이었다”며 분노를 나타냈다.광고광고나경택 옛 전남매일신문 기자가 1980년 5월27일 오전 촬영한 광주광역시 서구 돌고개를 지나는 20사단의 전차 행렬. 5·18기념재단 제공탱크 동원에 대한 지적은 5·18 당시 군 내부에서도 나왔다. 이구호(1933~99) 전 육군기갑학교 교장(준장)은 1980년 5월21일 오후 4시께 전차 1개 대대(32대)를 동원하라는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의 명령에 “적군이 아닌데 어떻게 시민을 향해 발포하란 말이냐”고 항명했다가 1년 뒤 군복을 벗었다.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과를 놓고 5·18 단체들은 “책임 없는 사과와 진정성 없는 해명”이라고 반발했다. 5·18 공법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기념재단은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 회장은 진정성 있는 반성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며 “5·18과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재발 방지 대책을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광고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성명에서 “면피용 사과 쇼”라며 “정 회장이 사퇴하거나 스타벅스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운영권이 넘어갈 때까지 1인 시위를 확대하고 스타벅스 본사에 재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이메일 보내기 운동, 상품권 100% 환불, 역사처벌법 개정 운동을 진행하겠다”고 했다.강기정 광주광역시장도 “정 회장의 기자회견은 사과, 진상 규명, 책임이 모두 빠진 ‘3무(無) 기자회견’이었다”며 “진상 규명을 핑계로 시간을 끌면서 고의성 여부 등 어떠한 의혹도 밝히지 못했고,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책임은 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