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게티이미지뱅크 광고 안태호 | 정책금융팀 기자광고 이따금 선후배 동료들과 기사 내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자가 기사를 읽었을 때, 이 부분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등의 표현을 듣거나 말할 때면 머릿속에 물음표가 등장한다. 대체 독자란 누구인가. 또 기자 저마다 그리는 독자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언론사는 독자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 외부 인사로 꾸린 ‘열린편집위원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편집국 바깥 시각을 반영하려 한다. 기사의 클릭 수나 댓글 수로 독자의 관심사도 파악한다. 정성스러운 감상평을 담아 이메일을 보내주시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독자의 모습은 손에 잘 잡히지 않고, 흐릿하다.광고광고 기사를 작성할 때 어느 정도 친절해야 하는지도 독자와 연결된 고민이다. 나와 독자가 공유하는 앎의 범위가 어떤 수준인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용어가 등장하면 친근한 일상어로 바꿔 써야 할지, 아니면 정확하게 쓰는 것이 맞을지 고민한다. 추가 설명을 곁들여야 할지, 아니면 ‘누구나 아는 내용인데 나만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추가 설명은 불필요한 건 아닌지 고민한다.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써야 한다’는 언론계의 유구한 격언이 있다. 하지만 ‘어려운 내용을 억지로 쉽게만 써서는 안 된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복잡한 내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면서 부정확한 설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에게 익숙한 용어나 개념이라면 그대로 쓰고, 낯설다면 일상적인 표현으로 바꾸거나 추가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 것 같다.광고 무엇을 취재하고 기사화할지 결정하는 데도 독자는 중요하다. 독자에게 필요한 이야기이면서도, 읽고 싶게 만드는 주제는 무엇일까. 결국 이때도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사회적 관심 사안을 취재하되 그 안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을 잡아내 한발 더 들어간다. 당장의 사회적 관심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취재하게 된다. 결국 독자에 관해 고민하다 보면 나부터 좋은 독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보통 언론사에서는 현장 기자에게 취재를 지시하고 초고를 다듬어 최종 기사를 완성하는 데스크를 ‘기사의 첫 독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0번째 독자가 아닐까. 담당 취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으면서도 그 분야를 잘 모르던, 독자이기만 했던 때의 감각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균형감을 갖춘 나의 0번째 독자가 돼야겠다. 최근 우연히 펼쳐 든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인간은 각자 피부를 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식 속에 갇혀서 직접적으로는 그 의식의 영향만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암울한 얘기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어서 받아들여야 한다면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나를 두른 의식의 경계를 더 넓히려 노력하고, 다른 이의 의식과 그 경계를 탐구하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독자를 생각하는 일도 그런 시도일지 모른다. 끝내 실체를 또렷이 파악할 수는 없지만, 계속 궁리하며 독자의 모습을 그려보고, 다른 동료의 ‘독자론’에도 귀 기울이는 일. 그런 꾸준함이 독자에게 조금씩 가까워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e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