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광고언론은 1차 자료(원문)를 꼼꼼하게 확인해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게 저널리즘의 본령인 ‘진실 추구’의 출발점이다. 원문의 전체적인 취지와 맥락을 무시한 채, 이른바 ‘야마’(기사의 방향)에 맞는 일부 표현만 가져와 기사를 쓰는 것은 진실 보도와 거리가 멀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구상이 알려진 날, 주식 투자에 진심인 우리 집 이대남이 볼멘소리를 했다. 왜 이상한 소릴 해서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냐는 거다.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그걸 뺏어서 국민에게 나눠 주겠다는 게 말이 되냐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내용이 다르니, 다른 기사들도 읽어 보라고 했다. 잠시 기사를 찾아보더니, 기자들이 왜 기사를 그따위로 쓰냐고 또 볼멘소리다. 김 실장이 11일 밤 ‘차원이 다른 나라: 에이아이(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다음날 아침부터 그 글을 인용한 보도가 쏟아졌다. 그런데 보도 방향은 사뭇 달랐다. 경제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보수 언론은 김 실장이 인공지능(AI) 호황으로 기업들이 얻는 ‘초과이윤’(초과이익)을 국민에게 환원하자고 제안했다고 썼다. ‘초과세수 활용’으로 방향을 잡은 언론은 소수였다.광고 ‘초과이윤’과 ‘초과세수’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국민배당금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면 더욱 그렇다. 초과이윤이라고 쓰면, 기업이 큰돈을 벌면 정부가 이익을 환수해 배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반면 초과세수는 경기 호황으로 예상보다 세수(법인세)가 늘면 그걸 국민을 위해 쓰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예컨대, ‘“삼성·에스케이(SK)가 번 에이아이 돈, 국민도 나눠 갖나”…청와대가 꺼낸 ‘배당국가’ 실험’이라고 제목을 단 기사와 ‘‘에이아이 국민배당금’ 띄운 청 정책실장…“역대급 초과세수, 어떻게 쓸지 고민할 문제”’라는 제목의 기사는 어감이 확 다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언론이 상반된 보도를 한다면 기사의 바탕이 된 1차 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 실장의 글은 200자 원고지 38매에 이르는 장문이다. 김 실장은 글의 4분의 3가량을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확연하게 달라진 한국 경제의 위상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니라 산업 인프라이며, 한국은 그 인프라 공급망을 통합적으로 보유한 드문 나라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은 순환형 수출경제에서 기술독점적 성격이 강한 경제구조로 체질이 바뀌어 지속적 초과이윤을 생산하는 국가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글에서 ‘초과이윤’은 이처럼 한국 경제의 위상 변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거듭 등장한다.광고광고 논란이 된 국민배당금 제안은 초과이윤 집중에 따른 격차 확대 우려를 언급한 이후 나온다. “인공지능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응당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는 국민배당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거듭 ‘초과세수’란 단어를 썼다. 국민배당금이란 말도 주식 배당금처럼 현금을 뿌리자는 의미가 아니다. 김 실장은 ‘인공지능 인프라 시대 과실의 구조적 환원’이라는 원칙을 소개하면서, “이 글에서는 그 원칙에 가칭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고 썼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이 원칙 위에서 백가쟁명식 사회적 토론을 통해 정교화하자는 제안이다. 광고 김 실장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라면 ‘정부가 기업이 번 돈을 더 뜯어내려 한다’는 식의 비판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글을 읽고 쓰는 걸 업으로 삼는 기자들이 헷갈릴 정도로 난해한 글도 물론 아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온 보수 언론이 ‘의도된 오독’을 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이유다. 언론은 1차 자료(원문)를 꼼꼼하게 확인해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게 저널리즘의 본령인 ‘진실 추구’의 출발점이다. 원문의 전체적인 취지와 맥락을 무시한 채, 이른바 ‘야마’(기사의 방향)에 맞는 일부 표현만 가져와 기사를 쓰는 것은 진실 보도와 거리가 멀다. 없는 얘기 지어낸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의 자의적인 취사선택과 교묘한 편집은 ‘왜곡 보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그릇된 관행임이 분명하다. 건강한 공론장 형성이라는 언론의 책무를 방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사실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언론사 논조에 맞춰 사실관계마저 비트는 일이 반복된다면, 언론에 들씌워진 ‘가짜뉴스’ 혐의만 더욱 강화할 뿐이다. 도매금으로 “왜곡 보도를 일삼는 언론”이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반박하기가 쉽지 않으니, 이게 다 언론의 업보가 아니면 뭐겠나.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