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작가 ©Photo by Claire Dorn, courtesy Studio Lee Ufan '왜 예술을 하느냐고요? 그건 저에게 왜 사느냐는 질문과 같아요. 인생에는 결국 답이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베니스=코리아헤럴드 박윤아 기자)흰 캔버스 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붓질 하나가 공간의 공기를 단숨에 바꿔 놓는다. 절제된 선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긴장감을 품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또 다른 전시 공간에서는 차가운 돌과 철판이 서로를 마주한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침묵 속의 두 물성은 밀어내고 끌어당기기를 반복하며 묘한 울림을 남긴다.한국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의 작품이 지닌 마법 같은 힘이다. 언뜻 그의 작업은 미니멀하고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베니스에서 우연히 만난 구순의 작가는 그 단순함이야말로 수없이 반복한 몸의 움직임과 긴 시간의 사유 끝에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회화 작업에서는) 힘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해 보여도 그것은 엄청난 연습 끝에 나오는 거예요. 돌 하나를 옮기는 것도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면 자신만의 다루는 방식이 생깁니다."5월 8일 아침 베니스 해안 산책로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를 산책하던 작가를 우연히 마주친 자리였다."어떤 날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다시 하고, 답답해질 때도 있어요."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 전시 "이우환(Lee Ufan)" 전시 전경 (박윤아 기자/코리아헤럴드)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 전시로 열리는 "이우환(Lee Ufan)"전은 회화와 설치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60여 년 작업 세계를 베니스 산마르코 아트센터에서 8개의 전시 공간에 걸쳐 조명한다.이우환은 일본의 모노하(Mono-ha)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한국 단색화(Dansaekhwa)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1960년대 후반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 확산 속에서 등장한 모노하는 과도한 생산과 인공적 제작을 거부하고, 사물 자체와 그것이 공간·자연과 맺는 관계에 주목한 미술 운동이다.아시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 작가는 전시서문에 “근대미술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면, 내 작업은 외부 세계와 연결되며 또 다른 차원을 열어가는 데 있다. 관람객은 결국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고 밝혔다.전시에는 현지에서 수급한 둥근 돌과 거울처럼 반사되는 철판 길을 활용한 설치작품 "Relatum — Infinity"도 포함됐다. 자연물과 산업 재료 사이의 균형과 긴장을 제안하는 작업이다.관람객은 두 개의 거대한 돌 사이에 놓인 철판 위를 직접 걸으며 자연과 산업 생산물이 맺는 관계를 체험하게 된다.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 전시 "이우환(Lee Ufan)" 전시 전경 (박윤아 기자/코리아헤럴드) 1960년대부터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이 작가는 문득 “인공지능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기도 했다.“지금은 답이 너무 빨리 나오기 때문에 편리해요, 하지만 과정은 사라졌어요. 생각하고 표현하는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인공지능으로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도 생길꺼에요.”또 그는 다양한 사람과 경험을 직접 만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중요한 건 과정입니다. 무엇보다 만남이 중요해요.”세계적인 명성과 오랜 예술적 성취가 행복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 전시 "이우환(Lee Ufan)" 전시 전경 (박윤아 기자/코리아헤럴드)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외국에서 들어온 개념이에요. 서양에서는 일상적으로 자주 쓰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자주 행복을 말하지 않죠.”그는 “같은 하늘 아래 우리는 모두 점 같은 존재인데 누가 성공했고 실패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결국 다 비슷한 존재들”이라고 말했다.전시에는 단 한 번의 붓질처럼 보이는 대형 회화 연작 "Dialogue"도 포함됐다. 하나의 붓질을 한 달 가까이 반복해 덧칠하며 완성한 작업이다.최근 작업인 "Response" 연작 역시 함께 소개된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색채와 표현적 붓질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회화를 탐구한 시리즈다.1936년 경남에서 태어난 이우환 작가는 서울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뒤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유럽과 일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그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럽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며 “한국 안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해외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1980년 © Lee Ufa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그는 예술적 영감이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옛 명작에서도 올 수 있고 일상에서도 올 수 있다”며 “담배꽁초를 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보이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고 했다.베니스 전시 “이우환(Lee Ufan)”은 디아 아트 재단(Dia Art Foundation)이 주최하고 제시카 모건이 큐레이팅했다. 뉴욕의 디아 비컨(Dia Beacon)에서 열리는 이 작가의 대규모 회화·조각전과 동시에 진행된다.여전히 작업을 이어가는 그는 왜 예술을 하느냐는 질문에 지체 없이 답했다.“왜 예술을 하느냐고요? 그건 저에게 왜 사느냐는 질문과 같아요. 인생에는 결국 답이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베니스 전시 “이우환(Lee Ufan)”은 11월 22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