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최교진(가운데)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부산대, 충남대, 전남대를 거점 국립대 패키지 지원대학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광고이시철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다들 아는 사실, 솔직히 말해 봅니다. 대한민국에서 한 학생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은 어느 대학을 다니느냐 이전에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라는가가 아닐까요? 서울과 지방의 학생들은 같은 시험을 치르더라도 출발선이 다릅니다. 물론 대구의 범어·만촌동, 광주 봉선동, 대전 둔산동처럼 유달리 뛰어난 학군은 지역 내 예외로 봄직합니다. 어떻든 좋은 학교와 직장, 정치·경제적 기회까지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음을 다 압니다. 시골 출신 ‘개천의 용’이 대폭 줄어든 현상, 이를 ‘공간 능력주의’(개인의 능력·노력보다 ‘어디에 사느냐’가 성공과 신분을 결정하는 현상) 때문이라 할 만합니다. 형식적으로 공정한 경쟁이 지리적으로 불공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균형발전은 이전 정부에서도 등장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 지역에 대한 투자, 균형발전은 한국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까지 다짐합니다.지난 1일, 이른바 ‘서울대 10개’ 지원 대학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사업은 대학 교육과 지역 산업을 직접 이으려는 시도로 교육부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8개 부처가 참여하고 있지요. 공식 명칭은 ‘거점 국립대 패키지 지원사업’으로 우선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가 첫해 지원을 받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지역별 성장 엔진 산업과의 연결입니다. 대학의 교육·연구, 기업의 기술 수요, 지역의 산업 기반이 하나의 생태계로 맞물리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광고모든 거점 국립대가 사활을 걸었던 이 초대형 사업에서 대학 선정 기준은 당연히 중요한데, 매우 불명확했습니다. 평가의 주체와 과정에도 의문이 남습니다. 각 대학 관계자들이 계획을 준비하면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대학 내부에서 커다란 진통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대학의 객관적인 역량, 성과와 함께 지역별 성장 엔진 산업과 ‘실제로’ 결합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의지가 실제로 있는지, 주변에 어떤 기업과 연구기관이 있으며, 공동 연구와 인재 양성이 ‘진짜로’ 가능한지를 실증 평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대학 자체의 객관적인 교육·연구 역량과 자체 혁신 의지도 중요합니다. 이번 평가가 진정한 ‘세계 수준의 대학’을 기대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과정이었는지, 오히려 예상치 않은 후폭풍과 불균형을 유발하지 않을는지 걱정입니다. 진정 열심히 노력하는 거점 국립대의 위상을 오히려 낮추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고려가 주로 개입했다면, 사업의 효과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발표 전, 3개 대학이 지역 안배로 선정되리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충청, 호남, 영남으로 나누어 각 1개 대학씩 배정되리라는 추측이 그대로 맞아 버렸지요.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의 경우 인구, 대학, 산업의 규모와 구조 면에서 그 자체로 각각 거대한 경제·생활권입니다. 숫자로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균형 배분의 명분 아래 ‘영남권 한 묶음’?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정치적, 감성적 구획보다 현존하는 대학, 산업, 인재, 연구의 구성과 흐름을 기준으로 보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일자리, 기업 성장, 국내외 대학 평가 상승 등 사업의 성공 효과가 이른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지도 중요할 것입니다.광고광고꼭 3개 대학이었어야 할까요? 올해 사업 공고가 예상보다 많이 늦어졌습니다. 9월부터 집행하더라도 2026년 책정된 예산을 제대로 쓰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대학 관계자들은 다 압니다. 따라서 첫해에는 대학별 지원액을 현실적인 착수금, 초기 필수 기반 지원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원 대학 수를 더 넓히며 단계별 평가를 통해 차등화하는 방법을 고려했어야 할 것입니다.권역마다 내세울 강점이 있습니다. 반도체 기반이 강한 곳에는 반도체를, 바이오 생태계가 축적된 곳에는 바이오를, 모빌리티와 로봇 역량이 실재한 곳에는 그 분야를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제가 익숙한 대구·경북의 사례를 봅니다. 구미는 이미 국가첨단전략산업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됐고, 반도체 소재·부품 분야 300여개 기업이 집적돼 있습니다. 포항 역시 이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이며, 대구에는 국가로봇테스트필드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대학들은 로봇, 인공지능(AI),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이미 기업과 함께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대학만의 역량이 아니라, 가까운 공간에 이미 축적된 연구–산업–교육의 연결 능력이,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국책 사업의 평가 기준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광고대학 정책과 산업 정책을 연결하는 ‘서울대 10개’ 사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으로 진행하길 바랍니다. 지역마다 수십년간 축적한 산업, 연구, 교육 자산이 다릅니다. 똑같은 모델을 전국에 적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대 10개’는 단순한 복제가 아닙니다.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가 서울대를 닮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가능하지도 않고 그리 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서울에 없는 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지역이 소멸하지 않고 살아나려면, 좋은 대학에 좋은 학생을 유치하고 좋은 일자리까지 더해져야 합니다. 연구실의 기술이 이웃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지고, 기업이 교육에 참여하며 학생이 실제 산업 문제를 풀고 그곳에 취업해야 합니다. ‘명문 지방대’ 몇개만이 아니라 배우고, 연구하고, 취업하고, 살아가는 완결된 지역 생태계가 필요한 것입니다.거점 국립대의 성장이 주변 대학의 쇠퇴를 대가로 해서도 안 됩니다. 연구 시설과 교육 과정, 기업 네트워크를 사립대와 전문대에도 열어야 합니다. 거점 국립대는 우물 안 서열의 꼭대기가 아니라, 역내 지식과 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이어야 합니다. 이 맥락에서 지역의 사립대와 전문대까지 연결하는 5극3특 공유 대학 사업, 예컨대 경북대의 ‘대구·경북 공유대학 사업단’(ORBIT), 부산대의 ‘부산 지능형소프트웨어·에너지사업단’(BITS), 충남대의 ‘대전·세종·충남 혁신플랫폼’(DSC) 등을 눈여겨봅니다.공정한 사회에는 시험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공정한 지도도 중요합니다. ‘서울대’ 또는 ‘10개’를 넘어, 대한민국의 대학, 산업, 기회의 지도를 함께 제대로 그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에서 능력을 키운 청년에게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능력주의의 진정한 극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