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해 28일 서울 강남 그랜드 머큐어 임피리얼에서 열린 ‘2026 세계번역가대회’의 오후 세션 ‘AI 기술의 발전과 번역의 미래’. 왼쪽부터 사회자 허희 평론가, 토론자로 나선 문지혁 작가, 발제자로 참여한 이상빈 한국외대 교수와 한국계 미국 시인 스타인 안. 생중계 유튜브 갈무리광고“지금 보니, 제 관점을 너무 양보한 것 같아 후회됩니다. 이후 다신 그 편집자와 일하지 않기로 했어요. 소설을 읽을 때 작가의 실력만 중요하다고 보지만, 번역가 실력도 중요하고, 편집자 실력도 중요합니다.”프랑스에 한국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번역가 정이렌은 28일 이렇게 강조했다.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판타지 소설 ‘비스킷’(김선미 지음)의 프랑스어 번역 과정을 “가장 힘들었던” 때로 소개하면서다. 언어와 언어 사이 문화·윤리적 차이로부터 먼저 비롯하긴 한다. 작중 “생활기록부” 관련 번역문에 현지 출판사 편집자는 “프랑스 독자는 (작중 주인공들이) ‘생활기록부의 한줄을 두려워한다’는 게 우스꽝스럽다”며, “원래도 통통한 편이었지만, 아버지의 스캔들 이후 착실히 살이 오르고 있다”는 문장은 “혐오 표현”이라며 삭제를 요청했다. ‘손가락이 퉁퉁하다’는 표현 등도 마찬가지. “심상치 않은 건 네 눈빛이거든. 아주 돌아버린 눈빛이야”라는 문장을 두고선 ‘정신질환 혐오’라며 삭제를 요청받았다. 정이렌은 “어느 하나 삭제되지 않는 것”을 당시 최종 과제로 삼고 “일부 번역은 양보했다”고 고백했다.한국 문학의 세계 진출이 활발해질수록 ‘난제’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 강남 그랜드 머큐어 임피리얼에서 열린 ‘2026 세계번역가대회’에 국내외 여러 번역가·관계자들이 집결한 배경이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이후 한껏 고무된 국내 사정과 달리, 문학 자체의 국외 확장성 한계도 감지된다. 이날 연사로 나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의 유스트나 나이바르 밀러 교수는 조사 결과 이 대학 한국학의 석사생 가운데 31%가량만 ‘문학’ 쪽에 관심을 표명했으며, 번역을 진로로 모색하는 이들 대다수는 티브이(TV) 시리즈(83%)와 영화(75%) 등 대중 영상 콘텐츠를 목표한다고 소개했다. 바르샤바 대학에서 2011년부터 한국학을 가르친 밀러는 “다른 나라 학생들의 의견도 비슷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러 국가에서 대학 한국어·학과를 늘리고, 지원 경쟁률을 높인 케이(K) 컬처에서 케이 문학의 지분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광고영국 독립출판사인 혼포드스타 대표 앤서니 버드는 “2016년부터의 국제 부커상, 독립 번역출판사, 공공 지원기관이 (번역 문학의) 시장 확대와 한국 문학의 국제적 주목에 미친 영향”을 소개하면서도, 최근 해당 계열의 출판사들이 처한 재정난과 어려움을 소개했다.이러한 환경에 더해, 번역가들은 나날이 막강해지는 인공지능(AI)과도 대적해야 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오후 포럼을 열어젖힌 ‘AI 기술의 발전과 번역의 미래’ 세션을 관통하는 화두와 우려는 ‘AI는 번역가의 적인가, 동반자인가’, ‘AI 시대, 인간 번역이 고유하게 요구되는가’였다.광고광고이상빈 한국외대 교수(영어통번역학)는 “체화된 경험, 맥락 감지, 문화적 직관, 창의적 능력” 등을 내세워 “인간 번역을 옹호하던 시도”는 “우리는 ‘기계보다 잘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여전히) 머무”르는 것이라며, 그를 초월해 “번역을 윤리적 사건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인간 번역의 고유성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때 “번역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명제가 부각된다. “번역가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타자를 배반한다.” 결국 번역가에겐 “원문을 해석하면서 자신의 해석이 타자를 어떻게 드러내고 어떻게 왜곡하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는 “윤리적 중개자”로서의 역할 재편이 요구된다는 게 이 교수의 요지였다. 말하자면 “책임 있는 실패”가 인간 번역만의 방식인 셈이다.미국문학번역가협회 이사회 일원인 한국계 미국 시인이자 번역가 스타인 안(안수연)은 “번역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케 하는 도구”로서의 AI 활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번역가에게 발제자, 문화 기획자, 에이전시 등의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국 번역가 클레어 리처즈도 “혼자 일하는 번역가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번역 밀접 업무”가 많으면서도, 보상은 충분하지 않은 세태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면서다. ‘AI 시대’가 와중에 과제로 보태진 것이다.광고언어의 위계가 엄연한 가운데 편집자와 ‘전쟁’을 치러야 했던 정이렌은 이날 “그럼에도 한국 문학이 프랑스에 알려지다 보니 이제 언니, 오빠, 아저씨 같은 호칭도 익숙해진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오전 세션 사회를 본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는 문학 번역 이론가 로렌스 베누티(미국)의 이론을 들어 “한국 문학이 프랑스로 가면서 프랑스 문학, 독자, 결국 프랑스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라며 “적극적 삼투로서의 역할이 바로 번역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 번역’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계 문학판에서 인간 번역가가 헌신하는 바를 압축하는 말처럼 들린다.이번 행사는 한국문학번역원(전수용 원장) 설립 30돌을 맞아 기획됐다. 29일은 번역원 아카데미 출신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홈커밍데이’가 열린다.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