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주기율표 아이러니 l 김명희 지음, 낮은산(2025) 광고김명남의 과학책 읽기 1988년, 낮에 일하고 밤에 공고를 다니던 15살 문송면 학생이 수은중독에 걸렸다. 수은으로 온도계를 만드는 협성계공에서 일한 지 두어달 만이었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지만, 병원을 전전하다 서울대병원에서야 수은중독을 진단받았다. 가족은 산재 처리를 요구했다. 회사는 일하다 중독되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발뺌했다. 하는 수 없이 사업주 날인이 없는 채로 산재 신청서를 접수했다. 노동부는 서울대병원이 산재 지정 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했다. 사정이 언론에 알려진 뒤에야 산재가 승인되어 병원비 걱정은 덜었으나, 소년은 열흘 뒤에 죽었다. 뒤늦게 점검한 작업 현장은 공기에 수은이 가득해 수은 방울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광고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이른바 빅5병원이 산재요양기관으로 지정된 것은 그로부터 20년 뒤인 2008년, 사업주 날인 제도가 폐지된 것은 30년 뒤인 2018년이었다.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 고대부터 인류가 특별히 여기고 활용해 온 수은 원소가 소년을 죽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짜 범인은 노동자를 부품쯤으로 여긴 기업과 정부다. ‘과거에나 일어나던 일이겠지’ 하고 생각한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하자. 2016년, 대기업 휴대전화 부품 생산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들이 잇따라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세척용 메탄올이 문제였다. 구조가 간단한 탄소화합물로 산업에 널리 쓰이는 메탄올은 소량으로도 실명을 일으키는 유독 물질이다.광고광고 그런데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자신이 쓰는 물질이 뭔지 잘 몰랐고, 같은 일터에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신고가 아니었다면 여섯명의 피해자는 연결되지 못했을 테고, 사업장에 만연한 메탄올 중독이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들이 파견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근무 기록도 안 남고, 수시로 드나들기에 옆 동료가 누군지 모르고, 안전보건 교육도 허술히 이뤄지는 불법 파견 노동자. 이때도 진짜 범인은 유기용제 속 탄소가 아니었다. 각각 ‘주기율표 아이러니’의 수은편과 탄소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18개 화학 원소를 매개로 관련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 책의 저자는 오랫동안 사회의학을 연구하고 실천해 온 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화학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에 대한 오마주로 이런 형식을 취했다지만, 레비가 21개 원소를 매개로 자신의 인생과 내면을 돌아보았다면 그는 이 원소들에서 사회와 세상을 본다.광고 직업병 이야기만도 아니다. 다른 원소와 거의 결합하지 않는 비활성 기체 아르곤을 놓고 레비가 자기네 선조인 피에몬테 지방 유대인의 성정을 떠올릴 때, 저자는 원자화된 현대인의 고독을 떠올리고 사회적 고립이 어떻게 신체적 불건강을 낳는지 설명한다. 인 원소 편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 지역에 떨어뜨리는 잔혹한 백린탄 이야기가 나온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나는 그 글을 레비에게 보인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했다. 저자는 “인류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느냐에 따라 “어떤 원소가 구원자도 파괴자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과학에서 끌어내는 이야기가 인간을 배제하는 서사도 인간을 돌아보는 서사도 될 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이 책으로 보여주었다. 레비도 이 글을 읽었다면 틀림없이 고마워했을 것이다. 과학책 번역가
구원자도 파괴자도 될 수 있는 원소들 [.txt]
김명남의 과학책 읽기 1988년, 낮에 일하고 밤에 공고를 다니던 15살 문송면 학생이 수은중독에 걸렸다. 수은으로 온도계를 만드는 협성계공에서 일한 지 두어달 만이었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지만, 병원을 전전하다 서울대병원에서야 수은중독을 진단받았다. 가족은 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