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게티이미지뱅크광고유금분 | 전태일의료센터마음상담소 소장 최근 병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해 3월 경기 광주의 한 병원을 퇴사한 뒤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던 20대 간호사 ㄱ씨가 지난달 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9일에는 20대 방사선사 ㄴ씨가 전북 군산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지난달 초 군산의 한 종합병원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이들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관계 기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실 관계는 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심리상담사인 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원인보다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있다.우리는 자살을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하지만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수개월이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수년이었을 테다. 반복되는 모욕과 침묵, 무력감과 고립 속에서 삶은 조금씩 무너진다. 마지막 선택은 어느 하루의 충동이라기보다 오래 지속된 절망의 끝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의외로 “죽고 싶다”가 아니다.광고“제가 예민한 걸까요?” “제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버티는데 저만 힘든 것 같아요.”처음 상담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탓한다. 직장 안에서 반복되는 비난과 무시를 경험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를 의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괴롭힘이 가장 깊게 남기는 상처다. 폭력은 몸보다 먼저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린다.광고광고병원은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병원은 감정을 가장 쉽게 숨기게 되는 조직이기도 하다. 환자의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는 책임감, 인력 부족 속에서 이어지는 과중한 업무, 선후배 위계 문화,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긴장감은 의료인들에게 “버티는 것이 능력”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학습시킨다. 상담실에서 만난 의료인들은 자주 이렇게 말했다.“다들 힘든데 저만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선배도 그렇게 버텼다고 했습니다.”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아요.”광고이 말 속에서 내가 보는 것은 우울보다 더 깊은 감정이다.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공감 피로와 대리 외상, 그리고 도덕적 상처를 떠올린다.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룬다. 환자를 충분히 돌보고 싶지만 현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동료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조직 문화 때문에 침묵해야 한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현실이 반복해서 충돌할 때 사람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는다. 이것이 도덕적 상처다. 번아웃보다 더 깊고, 오래 남는 상처다.많은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왜 좀 더 빨리 신고하지 않았을까”를 묻는다. 그러나 상담실에서는 오히려 “왜 말할 수 없었을까”를 묻게 된다. 조직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질 때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적응이다. 더 두려운 것은 괴롭힘 자체보다 방관이다.“관리자도 알고 있었어요.” “동료들도 다 봤어요.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어요.”광고상담실에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고립이다. 사람은 공격받아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더 깊이 무너진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은 의료인만이 아니다. 돌봄노동자도, 사회복지사도, 활동가도, 교사도, 상담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타인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을 뒤로 미룬다. 책임감이 큰 사람일수록 무너질 때까지 버틴다.상담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더 이상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고통은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이 있고, 가족이 있고, 일터가 있고, 사회가 있다. 상담실은 개인의 마음을 만나는 공간이지만,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회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는 ‘누가 잘못했는가’만큼이나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우리는 언제부터 버티는 사람을 칭찬하기 시작했을까. 왜 “힘들다”는 말보다 “조금만 더 참아”라는 말을 더 쉽게 건네게 되었을까. 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보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더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회복보다 인내를, 돌봄보다 희생을 미덕으로 가르쳐 온 것은 아닐까.병원 노동자의 죽음은 의료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직장에서, 학교에서, 돌봄의 현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아무 말 없이 버티고 있다. 이 글이 한 병원을 향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가 더 이상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되는 사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용기가 아니라 일상이 되는 사회, 사람을 살리는 일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은 병원만의 책임도, 상담사만의 책임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상담실에서 만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늘 우리 사회를 향한 질문이 된다. 우리 사회는 사람을 끝까지 버티게 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사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