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말글살이클립아트코리아광고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은 뿌옇다. ‘인간적’이란 말도 그렇다. 사전엔 ‘인간적’을 ‘사람다운 성질이 있는’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풀이한다. ‘인간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운 사람인가. 당신 친구처럼 어리숙하고 허점 많은 사람인가.(나처럼 차가운 이성과 깔끔한 판단력을 갖춘 인물에겐 쓰지 않겠지.)‘기계적’은 기계처럼 행동하는 것이고 ‘동물적’은 동물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니, 인간에게 있는 것이라면 뭐든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탐욕스럽고 분노하며 어리석은 것이 인간이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인간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인간이라면 이래야지’ 하는 모습을 따로 정해놓고, 누군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인간적’이라고 말한다.광고‘비인간적’도 마찬가지.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하면 ‘비인간적’이라고 한다. 요즘 생태 담론이나 신유물론에서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와 사물을 ‘비인간 존재’라 부른다. 동물과 식물, 균류와 미생물뿐만 아니라 자연물과 인공물까지 아우른다. 비인간 존재는 인간 세계에 놓여 있는 수동적인 사물이 아니라, 인간과 얽혀 사건을 일으키고 세계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행위자다. 비인간 존재는 비인간적이지 않다.광고광고인간은 좋은 것은 ‘인간적’이라 부르고, 자신이 저지른 나쁜 짓은 ‘비인간적’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인간은 분명 동물의 한 종인데도 ‘인간과 동물’ ‘사람과 짐승’을 말로 갈라놓고, 인간이 저지른 끔찍한 일을 동물 쪽으로 떠넘긴다.우리는 인간인데도 인간적이려고 애쓴다. 가끔은 비인간적으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비인간 존재’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