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말글살이게티이미지뱅크 광고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광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때가 있었다. 친하지 않은 선배 기관장에게 강의를 맡겨 주었는데도 밥 한번 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튀어나온 말은 “한번 접대를 해 드리고 싶었는데 게을러서 그러지 못했네요.” 아뿔싸, 관계 개선은커녕 “선배한테 접대가 뭐냐?”는 핀잔만 들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려니 입에서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 ‘대접’과 ‘접대’는 앞뒤만 바뀌었는데도 하나는 환대의 마음이, 다른 하나는 반대로 이익을 얻으려는 속셈이 담긴다. 회사마다 ‘접대비’는 있어도 ‘대접비’는 없고, ‘사람대접’은 해도 ‘사람 접대’는 하지 않는다. 글자 순서가 단어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수학에서는 2+3이나 3+2나 값이 같다. 순서를 바꾸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아 교환법칙이라고 하던데, 말에는 이 법칙이 잘 통하지 않는다. 말은 계산보다 까다롭다. 순서를 바꾸면 ‘값’이 달라진다. 쓰임이 달라지고 초점이 바뀌며 말맛도 달라진다. ‘당신이 보고 싶다’란 말보다 ‘보고 싶다, 당신이’란 말에서 간절함이 더 느껴진다.광고광고 일이 안 풀릴 때면 신통치 않은 놀이를 한다. 앞뒤를 바꾸어도 말이 되는 단어 찾기. 숨은그림찾기처럼 한자로 된 단어 중에 드문드문 이런 예들이 숨어 있다. ‘건강’은 ‘강건’이 되고 ‘평화’는 ‘화평’이, ‘거주’는 ‘주거’가 된다. 쓰임새는 달라도 뜻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러다가 ‘계단’을 뒤집은 ‘단계’나, ‘평지’를 뒤집은 ‘지평’, ‘회사’를 뒤집은 ‘사회’ 같은 단어를 만나면, 남남처럼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단어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말은 글자가 아니라 자리로 뜻을 만든다. 지금도 식당 문을 들어설 때면 묻는다. 이것은 대접인가, 접대인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