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오후, 무속인 임치영씨가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자신의 신당에 서 있다. 정진영 작가 제공광고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대중이 무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양극단으로 엇갈린다. 누군가는 미신을 조장한다며 냉소하고, 누군가는 신비로운 존재라며 추앙한다. 이러한 편견과 맹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속인이라는 한 인간의 진짜 모습은 흐릿하게 가려지곤 한다. 양극단의 시선을 제쳐두고 ‘일하는 사람’ 중 하나로 바라보면, 무속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까. 무속인과 직업이라는 개념의 연결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다루는 무속인에게서 보통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먼저 무속인을 일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지 살펴보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직업’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에 따르면 무속인은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해 손님의 고민 해결에 도움을 주고 복채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므로 ‘직업’이 맞다. 나아가 무속인이 대한민국에서 직업으로 공인받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국가데이터처가 작성하는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르면 ‘서비스 종사자’ 항목에 ‘점술가 및 민속신앙 종사원’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법적·통계적 기준에 따르면 무속인은 우리 사회의 분명한 ‘일하는 사람’ 중 하나다.지난달 1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무속인 임치영(56)씨의 신당을 찾았다. 나는 몇년 전 아내의 손에 이끌려 그를 처음 만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여러 무속인을 만났는데, 그는 무속인임을 짐작할 수 없는 겉모습과 과장 없는 담담한 말투로 내게 심리상담사를 닮았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는 자기에게 운명을 묻는 대신, 무속인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일상을 듣고 싶다는 내 요청을 낯설어하면서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광고“손님을 만날 때 왜 무속인으로 일해야 하는가를 먼저 깊이 생각하는 편입니다. 무속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종종 경험합니다. 이를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는 무속인도 있지만, 저는 가능한 한 이해하고 받아들인 뒤에 손님을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일단 저부터 무속인이 되기 전에는 이 세계를 믿지 않았으니까요.”처음부터 무속인의 길을 걷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신병을 앓고 이에 오랫동안 저항하다가 체념한 뒤 무속인이 되는 과정을 겪는다. 임씨 또한 과거에는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무속인과 거리가 먼 직업에 종사했다.광고광고“젊었을 때는 공간 음향, 스튜디오, 종합 편집실, 녹음실 등을 설계했습니다. 중년이 되어 사운드 디자이너 일을 그만둔 뒤에는 자영업에 종사했습니다. 쌀국숫집에 이어 호프집을 운영했죠. 그런 제가 다른 직업도 아니고 무속인으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디즈니플러스의 예능 프로그램 ‘운명전쟁49’를 비롯해 여러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본 신병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무속인의 운명을 거부하면 몸이 아프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그런데도 버티면 가족에게 괴로운 일이 벌어진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속인 대부분이 겪었다고 밝히는 현상이다. 임씨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광고“2019년이었어요. 처음에는 하혈이었습니다.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다가 변기에 선지처럼 덩어리진 피를 쏟았어요. 치질이라고 생각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잇몸이 주저앉고 치아까지 한꺼번에 빠졌어요. 신경도 날카로워져서 사람들과 다투는 일이 잦아지더군요. 무언가 거슬리면 눈이 확 돌아가서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내가 점점 내가 아니게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무속인은 윗대 조상으로 무속인을 둔 경우가 많다. 이를 ‘신줄’이라고 하는데, 임씨의 외가에도 무속인이 있었다. 또한 그는 무속인이 되기 전에도 무심코 혹은 재미 삼아 지인에게 내뱉은 이야기가 그대로 이뤄지는 일이 잦았다고 고백했다.“무속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저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살아왔습니다. 제 말이 그대로 이뤄질 때마다 두려웠거든요. 누가 언제 결혼할지, 어느 대학에 합격할지, 어떤 일을 하면 돈을 벌지 등을 기가 막히게 알아맞히는 겁니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의 합리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거든요. 그러면서도 무속을 믿지 않는 태도를 고수했죠.”임씨는 다른 무속인과 달리 지천명을 앞둔 다소 늦은 나이에 신병을 앓았다. 여기에는 그도 몰랐던 뒷이야기가 있었다. 어머니의 친구이자 수양어머니인 무속인이 오랜 세월 그의 신기를 누르는 기도를 해왔다는 것이다.광고“수양어머니는 제가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이니 신에게 저를 팔아야 제가 오래 살 수 있다고 어머니께 말씀하셨다더라고요. 어머니는 그 말을 믿고 수양어머니께 기도를 부탁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오랫동안 이어졌던 기도가 중단됐다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신병이 시작된 때가 공교롭게도 그때와 겹쳤습니다.”임씨의 신병을 보고 놀란 어머니는 백방으로 용하다는 무속인을 찾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그가 신내림을 받게 도와준 신어머니(무속인이 될 사람에게 신의 계통을 이어주는 사람)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신어머니께서 어머니에게 당신 아들을 죽일 셈이냐며 당장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닦달하셨다더군요. 저는 무속을 믿지 않으니 신내림을 한사코 거부했는데, 몸이 너무 아프니까 더는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살기 위해 신내림을 받은 겁니다. 신기하게도 신내림을 받자마자 아팠던 몸이 바로 멀쩡해졌습니다.”임씨의 하루는 아침 6시에 신당에 촛불을 밝히는 일로 시작해 저녁 7시쯤 촛불을 끄는 일로 끝난다. 평일과 휴일을 구분하지 않고 손님이 찾아오는 터라 지방 출장 등 외부 일정이 없는 날에는 대체로 신당을 지킨다. 하루에 상담하는 손님은 세명을 넘지 않으려고 한다. 접신하면 두통을 앓는 등 몸이 아파서 온종일 접신한 채로 살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무속인이 늘 접신한 상태라고 여기는 손님이 대부분인데, 제 경험상 그럴 수가 없습니다. 몸이 견디지를 못하거든요. 하루에 손님 세명만 만나도 그날 진이 다 빠져요. 한번 접신하면 두통이 반나절 이상 가니까, 손님을 얼른 보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해져요. 온종일 여러 손님을 받는 무속인도 계신데, 그게 어찌 가능한지 저도 궁금해요. 다만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접신이 되지 않은 무속인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임씨는 신내림 이후 신당을 차린 뒤에도 한동안 방황했다고 고백했다. 매일 때가 되면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존재한다는 증거를 확실하게 보여달라고 화를 내며 신당을 부수겠다고 신을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신이 자기 몸에 깃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됐다.“애동(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당) 시절에 지노귀굿(진오기굿·죽은 사람의 넋을 저승으로 천도시키려는 굿)을 도우러 충남 공주로 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고인을 위한 기도를 하는데, 순간 머릿속에서 그분의 아내를 껴안고 통곡하고 싶은 감정이 들더군요. 하지만 낯선 여자를 껴안고 울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끼어들었고, 그와 동시에 슬픈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게 바로 접신임을 몸으로 깨달았죠. 이후에는 애써 슬픈 척을 하느라 난감했습니다.”임치영씨가 사용하는 징과 방울, 부채. 정진영 작가문득 의문이 들었다. 무속인을 흔히 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일컫는데, 무속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말 신의 말일까. 무속인의 공수(신령이 무당의 입을 빌려 인간에게 의사를 전하는 일)는 과연 정확할까. 내 민감한 질문에 임씨는 공수의 절반만 맞아도 꽤 정확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무속인의 말을 신이 사람의 몸을 빌려 내뱉는 말인 ‘신의 공수’, 신이 몸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내뱉는 말인 ‘인의 공수’로 나눠 설명했다. 아무리 훌륭한 무속인일지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신의 공수’가 정말 옳은지 의문을 버리기가 어려운데, 이럴 때 ‘인의 공수’가 끼어든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몇년 전 이른 아침, 한 아주머니가 신당을 찾아오신 일이 있습니다. 그때 아직 준비되지 않아 손님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분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돌아가신 어머니께 산적을 올려드리면 고민이 해결된다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그분이 제 말을 듣고 오열하시더군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조기와 산적을 드시고 싶어 했는데, 산적을 드리지 못했다며. 신의 공수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사념을 최대한 버려야 신의 공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경험이었죠.”챗지피티(GPT), 제미나이 같은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를 이용해 자기 운세를 점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또한 플랫폼 업체를 통한 비대면 상담도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에 미신으로 치부됐던 무속이 인공지능의 발전에 힘입어 오히려 ‘힙한’ 문화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무속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에 관해 임씨는 사주 풀이와 신점을 나눠서 전망했다.“사주 풀이는 인공지능이 상당한 정확도를 보여주는 편입니다. 사주 명리학은 사람이 태어난 연, 월, 일, 시라는 네개의 기둥(사주)과 여덟개의 글자(팔자)를 바탕으로 운명을 분석합니다. 분석이 빠르고 정확한 인공지능이 사주를 풀이하는 무속인의 영역을 어느 정도 대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인공지능을 따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점은 성격상 대체가 어렵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에는 신령의 힘이 실릴 수 없으니까요.”임씨는 무속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 때문에 최근 들어 젊은 손님이 늘어났는데, 사소한 선택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손님을 자주 본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무속인의 조언보다 중요한 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의지라고 강조했다.“적성에 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무작정 찾아와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하느냐고, 어떤 사람과 연애해야 하느냐고 묻는 등 제게 판단을 내려달라는 손님이 많아졌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다고나 할까요. 무작정 무속인을 찾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자기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무속인을 찾으세요.”정진영 작가정진영 l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왓 어 원더풀 월드’ 등을 썼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연애·적성 판단까지 무속인에게…“자기 의지가 먼저” [.txt]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대중이 무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양극단으로 엇갈린다. 누군가는 미신을 조장한다며 냉소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