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농인의 손자를 뜻하는 고다(GODA·Grandchild of Deaf Adults)이자 일본에서 혼혈인을 뜻하는 ‘하프’로 자라는 나의 아이의 정체성은 하프(반쪽)가 아닌 더블이자 트리플이다. 내가 농인 부모와 수어로 대화하자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수어’라는 단어를 손으로 말하는 모습. 이길보라 제공 광고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몇년 전, 재일 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다. 일본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며 살아가는 학생들이 한글로 글을 쓰고 자신이 쓴 원고를 읽는 방식의 전국적인 행사였는데 코로나19의 유행 탓에 비대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일 행사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어떤 종류의 업무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 영상이 재생되자마자 깨달았다. 이건 내가 가진 ‘한국어’에 대한 정의를 넓히는 경험이라는 걸.광고 다양한 이유로 일본에 체류하는 한국인의 자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쓴 글을 읽었다. 원고를 얼마나 잘 썼는지도 중요했지만 말하기 대회였기에 무대에서 청중을 대상으로 말하는 능력이 점수를 크게 좌우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목소리와 어떤 자세로 어떤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가. 가령 노랗고 빨간 한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꼿꼿이 서서 눈에 힘을 주고 단전에서부터 꺼낸 기운을 담아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 글의 내용은 평범했으나 아이는 준비한 그림을 하나씩 꺼내며 원고의 부족함을 보완했고, 그 영상이 재생될 때는 행사장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심사하려 했지만 태도랄지 귀여움이랄지 혹은 비주얼 퍼포먼스 같은 것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영화감독이기에 영상의 배경과 조명, 샷 크기, 촬영 장비, 하다못해 촬영장의 분위기가 미치는 연출적인 요소도 신경 쓰였다. 간혹 고심하여 선택한 의상이나 소품 같은 것이 한국어로 잘 쓰인 원고 혹은 정확한 한국어 발음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말하기’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즐겁고 유쾌하게 상상해 보는 순간이었다. 참가한 학생들의 정체성은 다양했다. 양쪽 부모가 한국인인 경우도 있고 한쪽이 한국인이고 다른 한쪽이 일본인이나, 재일동포이거나 혹은 재일조선인의 자녀에 해당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운영하는 조선학교에 다니거나 남한 재일 한국인 자녀를 위한 한국학교에 다니거나 혹은 일본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했다. 또한 집 바깥에서는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제부터는 엄마 혹은 아빠를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겠다고 수줍게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들의 말하기 영상을 보면서 한국 음성언어가 중심인 사회에서 수어를 배우며 자라온 나의 경험과 이들의 경험이 닮았다고 생각했다.광고광고 심사에 참여하며 내가 그동안 ‘한국어’라고 명명해왔던 것이 한국 영토 내에서의 경험에만 기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어 사용자의 몸이 한국을 벗어나 한국 바깥에서 다른 문화·언어를 만나게 되고, 소수자의 언어가 되고, 이것이 또 다른 정체성을 빚어낼 때 생겨나는 이야기를 간과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를 지키려 분투하는 이들을 보며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언어·문화적 소수자로서 공감하고 공명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하프(Half)라고 부르지만 저는 반쪽이 아니라 더블(Double)이에요.”광고 중·고등부에 참가한 학생이 쓴 문장이었다. 일본에서는 혼혈인을 하프라고 부른다. 반쪽씩 물려받았다는 뜻인지 일본인 피가 반쪽만 섞여 있다는 뜻인지는 몰라도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이 단어는 다소 차별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은 반쪽이라고 불리기를 거부하고 더블이라고 명명하겠다고 했다. 일본인과 한국인으로 구성된 부모를 가진 학생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한국어는 다소 어색하고 부족하게 들렸다. 그것은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자라온 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평가다. 영토 바깥에서 ‘한국어’가 무엇인지, ‘한국인’ 정체성은 어떤 의미인지를 고뇌하며 경험과 시선을 벼려 가는 학생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훨씬 더 한국말답고 이들의 정체성이 훨씬 더 한국적일지도 모른다고. 이들로 인해 한국어라는 언어가 가닿을 수 있는 공간과 지면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두터워지고 복잡다단해진다고. 그것이 바로 디아스포라 문학과 예술로 펼쳐진다고. 농인의 자녀인 코다(CODA)인 나와 하프이자 더블, 트리플로서 자랄 내 아이의 경험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고 말이다.
하프가 아니라 더블, 트리플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몇년 전, 재일 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다. 일본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며 살아가는 학생들이 한글로 글을 쓰고 자신이 쓴 원고를 읽는 방식의 전국적인 행사였는데 코로나19의 유행 탓에 비대면 방식으로 이루어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