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 21일 오후 용산 미군기지 내에 있는 장교 숙소 5단지의 일부 모습. 6년 전부터 일반에 공개돼 있다. 박현 기자 광고박현 논설위원 젊은 날의 첫 운전 교습이 칼럼 소재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30여년 전 기억을 다시 꺼낸 것은, 용산공원의 미래를 두고 벌어진 논쟁 때문이다.광고 카투사 운전병으로 복무한 필자는 용산 미군기지에서 몇주간 운전을 배웠다. 기초 코스는 사우스포스트 동남쪽에서 따로 떨어진 ‘수송부’에서, 주행 연습은 본체 기지 ‘영내’에서 했다. 사우스포스트 남동쪽 출입문(현재 미 대사관 직원 숙소 출입문)으로 들어가 직선 도로를 타고 맨 끝까지 주행하는 게 첫 과제였다. 2㎞ 안팎의 긴 코스였다. 중간에 작은 언덕도 있었고, 신호등도 꽤 있었다. 처음엔 앞만 보고 운전했으나 차츰 익숙해지자 남쪽의 골프장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한복판 널찍한 골프장에서 남의 나라 고위 장교들이 골프를 친다는 사실에 기가 찼고,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위화감을 의식해서인지 미군은 우리 정부의 요구에 1991년 골프장 문을 닫았고, 이듬해 용산가족공원으로 시민에게 돌아왔다. 골프장 주변엔 잘 정돈된 잔디밭 위에 예쁘게 단장한 미군 주택들이 그림엽서처럼 펼쳐져 있었다.광고광고 미8군 사령부가 있던 북쪽 메인포스트까지 주행도 했다. 곳곳에 막사와 호텔·식당·체육관·학교·병원 등 각종 시설들과 공원, 운동장이 즐비했던 걸로 기억한다. ‘서울 속 작은 미국’으로 불릴 만했다. 그곳은 미 지상군 사령부이기도 했지만, 초·중·고등학교까지 갖춘 미군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삶의 공간이기도 했다. 정부가 용산기지 본체 부지의 일부를 용도변경해 청년주택을 짓겠다고 밝히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의한다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며 맞섰다. 솔직히 말해 필자도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2004년 한·미가 기지 반환에 합의하고 국민적 지지 아래 2007년 특별법을 만든 지 20년도 안 돼 용도변경을 말하는 게 온당한가 싶었다. 일제가 병영으로 삼고 해방과 함께 미군이 이어받은 치욕의 땅, 그 역사적 상징성은 마땅히 후대에 남겨야 하고, 생태적 가치도 가꿔가야 한다.광고 잊고 있던 그곳을 지난주 다시 찾은 것은, “1㎝도 동의할 수 없다”는 오 시장의 단호함이 오히려 궁금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거론한 장교 숙소 5단지, 옛 방위사업청 부지 등을 둘러봤다. 6년 전 일반에 공개된 장교 숙소는 4만9천㎡ 부지에 2~3층짜리 타운하우스 형태의 빨간 벽돌집들이 보존돼 있고 미니 골프장과 어린이 놀이터도 있었다. 그런데 40여분간 이용객을 단 한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주말에는 좀 온다”는 게 직원의 답이었다. 수송부는 ‘용산 개리슨(garrison·주둔지)’ 표지판 뒤로 19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 낡은 건물들이 그대로 서 있었다. 사우스포스트 남동쪽 출입문 너머 직선 도로도, 멀리 보이는 작은 언덕길도 그 시절과 비슷해 보였다. 메인포스트 북쪽 옛 방사청 부지의 출입문은 아예 폐쇄돼 있었다. 몇년째 방치된 건지 문은 녹슬고 쓰레기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길옆에 차를 세운 채 급한 용무를 보는 운전자도 있었다. 출입문 너머 보인 내부는 잡초가 무성해 폐허에 가까울 정도였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기지 전체 이전 때까지 이렇게 방치해 놓는 게 맞나 싶었다.지난 21일 오후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 동남쪽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주한미군 ‘수송부’ 모습. 잡초가 우거진 공터 뒤 허름한 시설물과 콘크리트 길이 수송부의 일부다. 박현 기자 100여년 만의 기지 환수 소식에 감개무량해 많은 이들이 전체 공원화에 찬성했다. 필자도 그랬다. 그러나 다시 돌아본 용산기지에는 재설계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청년주택 마련이라는 시급성도 있지만,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명소를 만들기 위해서도 재설계는 필요할 수 있다. 센트럴파크는 길이가 4㎞에 이르지만 폭은 0.8㎞ 정도다. 런던 하이드파크도 0.8~1.2㎞다. 시민이 어디서든 걸어 들어올 수 있게 만든 접근성을 고려한 설계다. 반면 용산기지 상당 부분은 폭이 1.5~2㎞에 이른다. 이대로라면 중간지대는 접근성이 매우 떨어질 것이다. 유적과 유물은 보존하면서, 미군과 그 가족의 생활공간이었던 그 자리에 청년과 신혼부부의 삶터를 함께 두는 설계가 왜 불가능하겠는가. 5만여명이 살고 유동인구가 수십만명에 이르는 여의도보다도 넓은 거대한 땅을 두고, 공원 외의 용도는 한 뼘도 검토할 수 없다는 태도가 정말 상식적인가. 그 땅의 미래를 정부 관료와 서울시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용산기지, 다시 보기를 권한다. 100년 뒤를 내다보는 결정이라면, 20년 전의 합의를 지키는 일만큼 20년 전에는 없던 질문에 답하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그 답은 반드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용산 미군기지 내 장교 숙소 5단지 전시실에 공개돼 있는 용산기지 모형도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