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xt 커버스토리 l 책 안읽는 시대, 문해력 도서 6년새 3배로 스마트폰·SNS가 사고 약화시켰다면 AI는 사고를 대체 “인류라는 종의 위기”…저자도 번역자도 문해력이 화두 AI, 몇초 만에 정보 재구성…해석·판단 인간의 몫으로광고광고광고‘클로드’를 서비스하는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은 2024년부터 비밀리에 ‘파나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중고서점 등에서 종이책 수백만권을 사들여 절단한 뒤 스캔해 인공지능에 저장하고 학습에 활용했다. 그 결과 인공지능은 이용자의 어떠한 요청에도 답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인간의 읽기는 유례없는 위기에 처해졌다. 그림은 한겨레가 ‘파나마 프로젝트’ 과정을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를 이용해 생성한 이미지이다. 광고 “이 책 줄거리를 1천자로 요약해줘.”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특징을 알려줘.”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윈스턴의 대사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흐름을 분석해줘.”광고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사람의 읽는 행위가 요동치고 있다. 챗지피티(GPT), 제미나이, 클로드와 같은 인공지능 도구는 사람의 읽기와 비교할 수 없이 방대한 문서를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낼뿐더러, 이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해 바로 결과를 던져준다. 이는 과거엔 책을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거나, 해낼 수 있는 과제였다. 인공지능에 맡기면 몇초 만에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 있으니, 사람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책을 읽을 동기가 사라지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책 읽는 사람은 줄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 국민 독서실태 조사’(2024년 9월∼2025년 8월)를 보면, 1년간 종이책을 1권 이상 읽은 성인은 28.8%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종이책, 전자책(웹소설 포함), 오디오북의 연간 독서 경험을 모두 합한 성인의 ‘종합 독서율’은 2015년 67.4%에서 2025년 38.5%로 지난 10년 사이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독서율은 뚝뚝 떨어지는데, 텍스트를 잘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 도서 출간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픽은 교보문고가 집계한 2021년 이후 ‘문해력’ 관련 신간도서 출간 추이. 밑그림은 한겨레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사람 대신 책 읽어주는 AI를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니컬러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펴내, 사람들이 생각을 기계에 의존하고 집중하지 못해 멍청해지고 있다고 경고한 때는 2010년(국내 출간은 2011년)이었다. 카가 집중력 저하와 사고력 약화를 가져온다고 지목한 기술은 스마트폰, 동영상, 검색, 소셜미디어 등의 디지털 기술이었다. 이후 등장한 인공지능은 사고력을 약화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고 자체를 대체하는 수준이다.광고 인공지능이 읽는 텍스트의 규모는 인간이 읽는 양과 비교하기 어렵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공개적으로 진행된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는 2천만권 넘는 책을 스캔해 내용을 검색할 수 있게 디지털로 변환했다. 클로드를 서비스하는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은 2024년부터 비밀리에 ‘파나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중고서점 등에서 종이책 수백만권을 사들여 절단한 뒤 스캔해 인공지능에 저장하고 학습에 활용한 뒤 폐기했다. 저작권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었다. 올해 초 워싱턴포스트가 이와 관련한 저작권 소송을 보도해 ‘인공지능 책 읽히기’의 실체가 드러났다. 마침내 인공지능이 지금까지 출판된 책 대부분을 읽고 저장해, 이용자의 어떠한 요청에든지 척척 답변을 내놓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인간의 읽기는 유례없는 위기에 처했으며 전망은 더욱 암울해졌다. 이런 현실이 인공지능으로 인한 ‘인지 외주화’를 경고하는 책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사고 외주’(홍진기), ‘생각을 외주화한 사람들’(정재민·김영주), ‘지능 파산’(한소원), ‘읽지 않는 사람들’(나오미 배런), ‘읽기의 위기’(크리스토프 엥게만), ‘경험의 멸종’(크리스틴 로젠) 등과 같은 국내외 도서가 잇따라 출간됐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늘고 있는데, 텍스트를 ‘잘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을 다룬 도서 출간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문해력’을 제목이나 부제에 넣은 신간 도서가 2021년엔 105종이었는데, 2022년 193종, 2023년 199종, 2024년 231종, 2025년 292종, 2026년 7월 현재 233종으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문해력 관련 도서는 판매량도 해마다 증가 추세다. 국내에서 문해력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은 2021년 교육방송(EBS)의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가 방영되면서부터다. 민정홍 교육방송 피디는 2020년 교육 다큐멘터리 ‘다시, 학교’에서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다룬 게 ‘문해력’ 시리즈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글을 읽고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이런 현실을 다룬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가 큰 반향과 문해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교육방송의 문해력 시리즈는 6년째 이어지고 있다. 민 피디는 “문해력은 글에서 미디어로, 다시 인공지능 리터러시와 비판적 문해력으로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고 말한다. 초기의 문해력은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었다가, 인터넷 시대에는 가짜뉴스 식별 능력으로 확장됐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만든 정보를 어디까지 신뢰하고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민 피디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새로운 위험을 ‘가짜 독서’로 표현한다. “인공지능은 독서를 하지 않아도 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읽기에 영향을 끼친 게 처음은 아니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문자 사용이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독서를 대중화했고, 묵독과 개인적 독서를 확산시켰다. 목차와 편집 기술은 부분적·탐색적 독서를 가능하게 했고, 인터넷과 검색은 필요한 부분만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읽는 비선형적 읽기 문화를 만들어냈다. 읽는 행위는 기술을 수용하며 변해왔지만 읽는 주체는 변함없이 인간이었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인간의 읽기를 보조하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이 읽을 동기를 제거하며 읽는 주체를 소멸시킬 기술로 우려되고 있다. ‘읽는 기계’인 생성형 인공지능이 있음에도 인간은 읽어야 하는가? 사람이 직접 읽는다는 것은 기계가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다시, 책으로’의 저자인 미국의 뇌 인지 신경학자 매리언(메리앤) 울프는 ‘깊이 읽기’가 공감과 성찰, 비판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뇌의 회로라며 인공지능이 이를 약화시킨다고 경고한다. 최근 ‘읽지 않는 사람들’을 펴낸 인지과학자 나오미 배런도 디지털 환경의 읽기가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효율성과 깊은 이해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출판계가 ‘문해력’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위기감과 맞닿아 있다. 출판계에서는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조병영),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김성우), ‘문해 내공’(신종호 김윤정), ‘기계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마크 코켈버그 외), ‘문해력 격차’(민정홍 김지원) 등 문해력 서적이 다수 출간되며 논의가 풍부해지고 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문해력과 관련한 출판이 늘어난 배경에 대해 “인간의 고유성을 인공지능에 빼앗길 수 있다는 출판계의 두려움이 나타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이 등장할 때마다 책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항상 책은 새로운 매체와 공존했다”며 “하지만 인공지능과 책은 어떻게 결합될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고 외주’, ‘다시, 책으로’, ‘프루스트와 오징어’(메리앤 울프), ‘문해력 격차’, ‘경험의 멸종’ 등 문해력과 인지 외주화를 다룬 책에 주력해온 어크로스출판그룹의 김형보 대표는 문해력을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능력”이라고 본다. 김 대표는 “21세기 들어 문자라는 기호를 통한 추상화 능력이 이미지 위주의 소통으로 옮겨가면서 인간 사고 능력의 퇴화와 문명의 전환이 겹쳐서 일어나고 있다”며 “인류가 새롭게 직면한 문제가 문해력으로 집중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저자, 번역자들 중에서 문해력 문제를 꺼내지 않는 사람이 없다”며 “문해력은 이제 학습 능력 차원이 아니라 인류라는 종 자체의 위기로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문해력은 인간이 스스로를 진화시킨 핵심 능력으로, 오늘날의 인간과 위기를 설명해내는 키워드”라며 문해력을 출판의 주제로 삼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문해력 전문가인 조병영 한양대 교수(국어교육학)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문해력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고 본다. 예전에는 정보를 정확하게 처리하면 문해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이 요약과 정보 인출을 훨씬 더 잘한다. 조 교수는 이제 인간에게 남은 몫이 ‘해석과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내가 읽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며 ‘문해력’은 독해력이 아닌 철학적 인식론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를 ‘기능적 문해력에서 비판적·윤리적 문해력으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했다. 과거의 좋은 독자는 글을 정확히 이해하고 요약하는 사람이었고, 디지털 시대엔 정보를 비교·분석하는 사람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엔 “답변 결과를 의심할 수 있는가, 출처를 확인하는가, 자신의 생각과 인공지능의 생각을 구분하는가, 그 정보가 공동체에 바람직한지까지 질문하는가”가 중요해졌다. 이제 문해력은 이해력이 아니라 판단력과 책임의 문제가 됐고, 조 교수는 이를 ‘인식론적 책무성’이라고 부른다. 이제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기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능력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 인공지능은 출간된 책을 대부분 읽고 이용자 요구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해력은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묻고 확인하는, 성찰적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유혹이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해력에 대한 관심은 읽기 문화를 넘어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출판계와 독자의 길 찾기이자 답변인 셈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객원연구위원 starry9@hani.co.kr
“AI의 새로운 위험은 가짜 독서…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착각”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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