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인공지능 챗지피티에 “로고스 중심주의의 종언을 이미지로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묘비명에 작은 글씨로 “로고스의 특권은 해체되었다. 의미는 더 이상 하나도, 중심도, 최종 진리도 아니다. 확정이 아니라 질문 속에 잠들라. 차연(différance) 속에서 살아가라”고 적혀 있다. 광고‘기계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라는 긴 제목의 신간이 인터넷서점 알라딘 컴퓨터/모바일 분야에서 3주 넘게 10위권에 머물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인공지능(AI) 관련 책들 틈바구니에서 인문학 도서로서 꿋꿋이 선방하고 있는 셈이다. 2022년 11월 말, 오픈에이아이가 챗지피티(GPT)를 출시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특히 언어를 대량으로 학습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s)은 문명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AI는 인간이 장기간 연구해 쓴 것처럼 복잡한 글을 허무할 정도로 단시간에 쏟아냈다. 글쓰기의 종말이 온 것인가? 거대언어모델은 인간이 만든 거대한 말뭉치에서 말 조각(토큰)의 올바른 배열을 찾아내면서 문장을 만드는 기술이다. 예컨대 셰익스피어 ‘햄릿’의 독백,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____로다”에서 빈칸을 채울 수 있는 높은 확률을 가진 단어들이 있다. ‘문제’, ‘골칫거리’, ‘딜레마’ 등이다. 언어모델은 입력된 데이터를 중심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요소를 예측해 ‘문제’라는 정답을 맞힌다. 광고 그러나 거대언어모델은 난제 또한 갖고 있다. 편향, 환각, 환경적 영향, 디지털 격차, 저작권 등이다. AI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성별, 인종, 나이, 장애 등과 관련된 편향을 갖고 심각한 차별 발언을 내놓을 수 있다. ‘환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출처를 인용하면서 학술 논문을 쓰고, 저작권을 무시하고, 조작된 데이터로 가짜 뉴스를 만들기도 한다. AI를 가동하기 위해선 막대한 전력과 열기를 식힐 대량의 물도 필요하다. AI 시대라는 가혹한 변화에 희생당할 개인을 보호하거나 사회를 준비시킬 정책적 수단도 없다. 여러 한계가 있지만 저자들은 거대언어모델 AI가 수행하는 글쓰기의 새로운 방향성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 가장 정확하게 겨냥하는 이론은 서구 철학 계보의 뿌리에 해당하는 ‘로고스 중심주의’다. 로고스 중심주의는 머릿속의 생각을 전달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목소리’라고 본다. 태초에 존재한 음성 언어, 그것이 곧 ‘로고스’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문자’ 언어는 파생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플라톤 역시 ‘파이드로스’에서 ‘말’은 근원적 사고와 연결돼 있으며 ‘글’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광고광고 그러나 로고스 중심주의를 해체하려 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말이 글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데리다는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유예되는 가운데 생성된다는 뜻으로 ‘차연’이란 개념을 썼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화자’나 텍스트를 쓰는 ‘저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언어 그 자체’가 말을 한다고 보았다. 이 책 또한 ‘저자’라는 개념을 가부장적인 근대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책을 저자가 낳은 ‘자식’으로 여기는 관념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저자와 저작물이 ‘모녀’가 아닌 ‘부자’로 인식되는 점에서 명백히 성별화된 지적 전통이라는 얘기다. 화자가 인간이든, 기계든, 기계와 인간의 혼합체든 ‘저자’는 이미 존재하는 여러 문화를 섞어 짜깁기하는 “문학적 리믹서 또는 텍스트 디제이”라고 덧붙인다. 광고 저자들의 주장은 선명하다.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고, 진리를 논할 때는 윤리적, 정치적 책임이 따른다. 거대언어모델을 ‘개소리 기계’라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AI를 개발하는 다국적 기업에게 책임을 묻고 기술적 전문성과 민주주의가 상호보완적으로 얽힐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 사용자들도 더 나은 분배와 민주적 참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학적으로는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자는 ‘포스트휴먼’의 기획을 지지한다. 거대언어모델의 글쓰기가 ‘인간과 비인간의 혼성’으로 실행되기 때문에 이런 혼종적 글쓰기는 서구 지적 전통을 거스르는 급진성을 띤다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로고스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AI의 글쓰기가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며, “실제로 글쓰기에는 미래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기계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l 마크 코켈버그,데이비드 J. 건컬 지음, 신동숙 옮김, 손화철 감수, 생각이음, 1만9000원 공저자 마크 코켈버그와 데이비드 건컬은 글로벌 기관의 정책과 윤리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해 온 학자들이다. 한국에도 번역된 ‘인공지능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에서 코켈버그는 미셸 푸코, 도나 해러웨이, 캐런 바라드 등의 철학을 경유하면서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포스트휴먼적 사유로 인공지능에 특정한 권리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지구의 ‘동물’과 ‘환경’이 지니는 정치적 지위에 관한 주장을 인공지능에도 적용하자는 얘기였다.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후기구조주의 철학이나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등의 관점에 기댄다. 그러나 서구 형이상학의 헤게모니와 인간중심성을 극복하면서 ‘비인간’과 연결하자는 포스트휴먼적 사유가 가진 정치성에 살짝 무임승차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AI 기술이 기후위기를 심화하며 동물과 환경 등 다른 비인간과의 결합을 완전히 가로막는 점을 추궁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 거대언어모델이 ‘저자’의 해체를 앞당긴다며 탈권위주의적인 순기능처럼 설명하는 점도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꽤 억울할 수 있다.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타자 저자’들이 이제 막 ‘저자성’과 권위를 인정받으려 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여러 의문이 있지만, 그럼에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점만은 명백하다.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서 이미 거대언어모델 AI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너무도 강력한 현실이 펼쳐져 있지 않은가.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