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배우 하영(왼쪽)과 1918년 12월10일자 ‘매일신보’에 있는 안상호 가족 모습.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국립중앙도서관 자료 갈무리광고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이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2~1927)에 대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정도는 아니지만 친일파가 맞다”고 밝혔다.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추모준비위원회에 안상호가 이름을 올린 사실도 공개했다.방 사무처장은 13일 와이티엔(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팩트로 확인된다”며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추가로 밝혔다.방 사무처장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뒤 경성(서울)에서 일제가 추모대회를 열었는데 그때 추모준비위원회에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어 안상호가 조선총독부 총독 자문기구 성격인 경성부협의회 의원이기도 했으며 항일 운동을 방해하고 조선을 일본에 완벽하게 통합하려는 ‘내선융화’ 정책을 뒷받침한 친일 단체 ‘동민회’에도 참여했다고 덧붙였다.광고일제강점기 의사로 활동한 안상호는 친일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점이 드러나면서 ‘친일’ 논란이 인 바 있다. 1918년 12월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는 안상호 가족이 ‘내선일체’ 모범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안상호는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다.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 일본 사람과 똑같다”고 말한 바 있다.다만 안상호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일본의 국권 침탈, 식민 통치, 침략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피해를 끼친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이 등재돼 있다.광고광고친일인명사전에 안상호가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방 사무처장은 “친일인명사전은 개인 집필자의 주관이 담기는 평전이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 1차 사료만 가지고 등재한다”며 “분야마다 친일파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친일 행위가 적극적이었는지, 지속·반복적이었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설명했다.이어 방 사무처장은 “(안상호가) 당시 활동한 친일·반민족 행위자에 비해 적극성과 반복성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수록 기준에 맞지 않아 등재는 안 했지만, 여전히 친일 행적의 팩트는 저희가 계속 확인하고 있다”며 “친일파가 맞다”고 말했다. “친일파라고 할 수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방 사무처장의 설명이다.광고방 사무처장은 배우 하영의 행동이 적절치는 않았다면서도 “과연 우리들은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나 성찰하고 지속적으로 보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 봐야 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응원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 배재고 야구부를 사례로 들며 “야구부에 대해서만 포커싱이 맞춰지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번 논란 역시) 어떻게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면서 방 사무처장은 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말을 인용했다. “친일했던 일제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반성과 화해,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더 문제다. 이런 문제를 우리가 철저하게 바꾸지 않는다면 민족사의 기강은 헛말이다. 이런 것을 우리가 바꾸지 않는다면 민족 사회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는 말이다.한편, 지난 7일 방송에서 자신의 집을 ‘4대째 의사집안’, 안상호를 ‘양의학을 일본에 가서 배워오시고 한양에 개원을 하신 첫 의사’로 소개했던 하영은 12일 자필 사과문을 올려 “저의 증조부와 관련된 일들로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겨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영은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며 “가족의 역사와 그 시대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앞으로 역사를 대하는 데에 있어 더욱 신중한 태도를 갖도록 하겠다”고 했다.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