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충북 청원군 오창읍에 위치한 영농형태양광 실증 단지에서 태양광발전 모듈로부터 빈 밭으로 떨어진 낙수가 고랑을 이루고 있는 모습. 빽빽한 일반형 모듈일 경우엔 낙수 피해가 더 커진다고 김창한 회장은 말했다.광고“농촌은 전력 식민지가 아니다.”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지난달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주거지역 등에서 얼마나 떨어져야 하는지(이격거리)를 정한 규제를 정부가 완화하려 한다며 규탄했다. “전력 식민지”, “보호장치 무력화” 같은 표현에서, 재생에너지를 ‘위협’으로 여기는 농촌 일각의 인식이 드러난다.태양광 이격거리 규제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느끼는 ‘위협’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치부할 순 없다. 그간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은 주로 농지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농어촌공사 통계를 보면, 전국에서 태양광발전 설치 목적의 농지 용도 변경(전용) 면적은 2014년 253.1헥타르(ha)에서 2018년 3496.1ha로 14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전북·전남·경북 등 농촌 지역이 많았다. 발전 수익이 농사 수익보다 좋은 한 그 땅에선 농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후 임차농 소득 저하, 농업생산성 하락, 식량 안보 위협 등으로 이어진다. 또 사업자 대부분이 외지 발전업자들이라, 태양광은 ‘농민의 것’과 거리가 멀다. 지난 4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도 “이제 태양광 농사(영농형태양광)를 지으면 서울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편하게 벌 수 있다. 그 상황을 만들어줘야한다”고 했지만, “핵심은 송배전망”이라며 농업의 병행보단 전력망 쪽에 더 방점을 찍었다.광고태양광이 농민의 것일 순 없을까? 중부지방에 장맛비가 퍼붓던 지난달 20일, 충북 오창읍 탑리 600평 규모 ‘영농형태양광’ 실증단지에 비가 왔다. 샐러리·케일을 수확한 빈 밭에 일정 간격으로 기둥이 박혔고, 3.5m 높이에 태양광발전 모듈이 설치돼 있었다. 모듈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밭 위로 끊임없이 떨어져 세 줄씩 고랑을 만들었다.“그나마 ‘협소형’을 써서 줄이 세 개만 생기지, 밀도 높은 일반형 모듈을 썼으면 여섯 줄, 열두 줄도 생겼을 거예요. 낙수 피해는 우박보다 큰데, 작물이 받는 피해가 그만큼 커진단 얘기죠.”광고광고지난 8년간 “어떻게 하면 태양광 아래에서 농사가 가능한지”에 천착했다는 김창한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회장의 설명이다. 영농형태양광은 농지 위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해 농사와 발전을 병행하는 것을 말한다. 농민운동과 유기농업에 매진해온 그는 15년 전 일본에서 영농형태양광을 처음 접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름의 ‘표준’을 만들었다 자부한다. 그의 말대로면, 영농형태양광은 오롯이 농민의 것이 될 수 있다.지난 20일 김창한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회장이 충북 청원군 오창읍에 위치한 영농형태양광 실증 단지를 소개하고 있다.세로폭이 좁아 햇빛을 30%만 가리는(차광률) 협소형 모듈이 그 중심에 있다. 하부 농작물에 필요한 일조량을 확보하려 상부 태양광 밀도를 낮추는 것이다. 또 농기계가 지나도록 모듈은 3m 이상, 기둥 사이는 4m 이상 간격을 확보했다. “기둥도 사각이 아닌 원통으로, 스크류 방식으로 박았어요. 그래야 작물 면적을 확보하고, 농기계와 부딪혀도 농작물 피해를 줄일 수 있거든요.” 발전보다 농사를 우선 하는 이 노력들은 설치 비용을 높이는 요소다. 일반형 모듈을 빽빽히 설치하면 더 싸게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지만, 작물 생산이 어려워진 땅은 농민이 것이 아니게 된다.광고김 회장은 “월 100만원 농민연금 모델”이 영농형태양광의 목적이라 말했다. 소멸 위협이 날로 커지는 농촌에 들어오는 발전 설비를, 아예 농민의 연금처럼 농사를 지을 발판으로 삼자는 것이다. 협회의 원칙은, “농지 발전은 농민에게만, 또 영농형태양광 형태로만 허용해야 하며, 규모는 1인당 100㎾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농형태양광이라 해도 발전이 주된 목적이면 “농사를 잡아먹는 본말전도가 일어날 것”이라고 김 회장은 말했다. 실증 결과 600평 농지에 협소형 모듈을 설치하면 월 100㎾ 전력을 생산해 100만원가량 수익을 낼 수 있다 한다.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가 적용하고 있는 영농형태양광 설비의 설계도. 3.5미터의 높이, 4미터의 간격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제공앞선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일본은 농작물 수확량 감소 비율(감수율)을 20%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농지에서 영농형태양광을 할 수 있도록 2013년부터 허가했다. 그 뒤 10여년간 허가 건수가 6천건이 넘는 등 겉으로 볼 땐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설치 주체의 73%가 발전사업자였다. 하부 농지 작물 36%는 후피향나무 같은 관상용이었는데, 모듈 아래에서도 쉽게 자라는 ‘음지성 식물’을 심었기 때문이다. 발전 설비로 하부 농지의 영농이 지장 받은 비율도 24%나 됐다.우리나라에선 지난달 ‘영농형태양광 특별법’이 공포돼 올해 12월 시행을 목표로 시행령을 만드는 단계다. 김 회장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다양한 실증 사업을 해왔고, 저도 양배추 등 7~8개 품목을 직접 해봤는데, 제대로만 하면 농사는 무조건 된다”고 자신했다. 들깨·참깨는 감수율이 1% 수준으로 거의 없었고, 녹차는 되레 두 배 가까이 증수됐다. 배 같은 과수는 모듈이 냉해·서리를 막아주는 효과까지 누렸다. 이런 실증 성과들은 이미 정부기관 등에도 널리 공유됐다.문제는, 일본 사례에서 보듯 제도가 부실하면 ‘언제든 발전이 농사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이다. 협회는 협소형 모듈을 통한 차광률 30% 제한, 1인당 발전용량 100㎾ 허용 등의 원칙이 명확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앞으로 농촌을 책임질 청년농에겐 1인당 발전용량 300㎾를 허용해 농업에 정착하는 징검다리로 삼게 해주는 등 영농형태양광을 미래 농촌을 설계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도 제안한다.광고충북 청원군 오창읍에 위치한 영농형태양광 실증 단지에 태양광발전 모듈 밑으로 농기계가 이동하며 경작을 하고 있는 모습.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제공김 회장은 “최근 정부기관 쪽으로부터 ‘협소형 모듈을 만드는 국내 업체가 없다’는 이유로 영농형태양광에 일반형 모듈을 써도 되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식으로 하나씩 ‘타협’을 했다가는 또다시 농민 반발에 부닥쳐 발전과 농사 모두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도와 표준을 통해 ‘농사가 우선이고 발전은 도구’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줘야 더 많은 농민이 참여해 시장이 형성되고 기업도 뛰어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발전이 농사를 잠식했다지만, 그렇다고 발전이 마냥 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2018년 3496.1ha로 정점을 기록했던 태양광 농지전용 면적은 2024년 900.1ha 수준으로 확산세가 줄었다. 부족한 전력망이 설비 확충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지만, 이격거리 논란에서 보듯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민 반발과 갈등, 농촌 소멸 우려 등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태양광은 농민의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지 못하면, 이는 앞으로도 쉽게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될 수 있다. 김 회장은 “지금은 ‘앞으로 우리 농촌이 어떻게 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출 때”라며 “농사와 발전을 함께 하는 영농형태양광이 그 길을 보여줄 수 있다”고 단언했다.농민 10만명이 100㎾씩 태양광 10GW 설치하면… 매달 100만원 ‘연금’이재명 정부는 현재 37기가와트(GW) 수준인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2030년까지 100GW로 늘리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내놓은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보면, 현재 30.8GW 수준인 태양광은 2030년까지 87GW로 56.2GW만큼 늘려야 한다. 이 중 11.GW가 ‘영농형·수상형’의 몫이다. 간척지·접경지역 등을 활용해 전체 12GW 용량의 ‘초대형’ 발전단지를 짓는 계획의 일부도 ‘영농형’으로 한다 했으나, 이는 원래 있던 농지에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이는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의 전망과도 얼추 비슷하다. 협회는 앞으로 농민 10만명이 100㎾씩 영농형태양광 10GW를 설치해 월 백만원 정도의 ‘농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엔 농지 2만ha 정도가 필요하다. 농촌 전체에 설비용량 10~11GW를 맡기는 수준이라면, 전체 농지 면적(150만ha)의 1.33%에서 농사와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난 6월 영농형태양광 특별법이 공포되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된 상태다.문제는, 우리 사회가 농촌에 요구할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과연 10~11GW 수준에서 그칠 것이냐다. 농업·기후 관련 정책연구단체인 ‘식량과기후’의 남재작 대표는 “재생에너지를 늘릴 수 있는 잠재력이 농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데, 정부 계획은 두루뭉술하다. 결국 다른 분야에서 채우지 못하는 목표치가 ‘블랙박스’로 남겨놓은 농촌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식량과기후는 최근 영농형태양광 관련 포럼을 열었는데, 여기서 발표를 맡은 기후·에너지 정책연구단체 ‘넥스트’의 송용현 부대표는 “영농형태양광의 잠재량 자체는 100㎾ 이상 필지에만 설치해도 193GW, 소규모 필지까지 합하면 434GW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만약 농촌에서 더 많은 태양광을 생산해야 할 경우, 여기엔 개별 농가가 농민연금을 받는 모델과는 다른 영농형태양광 모델이 필요하다고 남 대표는 주장했다. 발전용량 10~30㎿ 기준으로 농업인들이 공동영농 조직(들녘경영체·마을)을 통해 흩어진 농지를 모아 농업과 발전을 함께 하는 모델, 농업법인이나 지역 컨소시엄이 재생에너지지구에서 산업수요에 직결되는 50㎿ 이상을 대량생산하는 모델 등을 더해 역할을 분담하자는 것이다.농지를 모으면 농업 생산과 발전 모두에서 ‘규모의 경제’를 구현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재 태양광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계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력을 생산하는 설비는 많지만 이를 실어나를 전력망이 부족한 상황이다. 태양광 설비가 가장 많은 호남지역의 경우 생산된 전력을 전력망에 보내지 못하는 ‘접속 제한’까지 겪고 있다. 송 부대표는 전력망 접속을 감안할 경우 영농형태양광 잠재량 434GW는 25GW로 급감하며, 변전소를 신·증설하는 데에는 적어도 3~6년이 걸릴 것이라 분석했다.영농형태양광 특별법 주요 내용은? 지난 6월 공포된 영농형태양광 특별법의 특징은 영농형태양광을 할 수 있는 진입조건을 비교적 엄격하게 정했다는 것이다. 사업 주체를 실경작자(임차농 포함, ‘재생에너지지구’에선 농업법인도 허용)와 주민참여협동조합으로, 사업 부지를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재생에너지지구는 허용)로 한정했다. 농지를 전용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3년이며, 농사를 의무적으로 짓고 이를 확인받아야 한다. 임차농 보호를 위해, 사업기간 동안 임대차 계약을 자동 갱신하고 임대료 인상 폭은 5%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또 부지면적, 발전용량 등 사업 규모를 제한하거나 조건을 설정할 수 있도록 열어놨다. 앞으로 만들어질 시행령에서는 영농의무 비율을 어떤 방식으로 설정할지, 면적·용량에 어떤 상한을 둘 것인지 등이 구체적으로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농사짓고 발전도 하고…영농형태양광, 농촌에 ‘밝은 미래’ 선사할까
“농촌은 전력 식민지가 아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지난달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주거지역 등에서 얼마나 떨어져야 하는지(이격거리)를 정한 규제를 정부가 완화하려 한다며 규탄했다. “전력 식민지”, “보호장치 무력화” 같은 표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