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북디자이너의 세계 l 함지은 상록 대표 열린책들 문학 시리즈로 이름 날려 “매일 훈련하듯 반복하는 하루가 중요” 소장하고 싶은 책 만드는 게 목표인스타그램 팔로워 1만명을 훌쩍 넘는 함지은 북디자이너는 지금 출판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본인 제공 광고광고 열린책들 디자인팀장을 떠나 북디자인 스튜디오 ‘상록'을 차린 지 1년 반. 함지은 북디자이너의 작업은 벌써 120권을 넘어섰다. 출판사들이 그의 손길을 쉬지 않고 찾은 결과다. 그가 인스타그램 팔로워 1만명을 훌쩍 넘긴 ‘스타 북디자이너'가 된 이유는 서점 매대에서 단번에 시선을 붙잡는 표지 디자인에 있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와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폴 오스터 컬렉션 등은 출판계에 그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어떤 책에서는 매력적인 색감과 패턴으로, 어떤 책에서는 섬세한 타이포그래피로, 또 어떤 책에서는 과감한 생략과 여백의 미학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광고광고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만의 ‘추구미'는 없다고 말한다. “어떤 디자이너는 딱 보면 ‘이 사람 작품이다' 하는 스타일이 있잖아요. 물론 그것도 멋지지만 저는 반대로 책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에게 좋은 북디자인이란 “책과 독자 사이를 잇는 다리”이기에 책이 디자이너에게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책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대신 그에게 분명한 목표는 있다. 바로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드는 것. “예전에는 책이 정보를 얻는 가장 중요한 매체였지만 지금은 검색도 있고 인공지능(AI)도 있잖아요.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사는 시대는 점점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소장의 가치를 디자인으로 증명하겠다는 그의 전략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시리즈 디자인에서 강점을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표지만 봐도 책을 집어 들고 싶게 만들 만큼 강한 흡인력을 지녔다. 덕분에 상복도 이어졌광고 다. 2024년과 2025년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됐고, 2022년부터 2026년까지는 5년 연속 ‘인스퍼어워드’를 수상했다. 인스퍼어워드는 한솔제지가 매년 책이나 인쇄물 등 종이 기반 제작품 중 뛰어난 디자인에 수여하는 상이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된 ‘2666’, ‘개와 고양이 의학 사전’,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은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서로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책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얼굴을 찾아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그대로 구현된 결과다. 그가 처음부터 북디자이너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해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했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가 보니 회화는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회화는 결국 나를 드러내는 작업이더라고요. 저는 그게 조금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실기실이 아닌 도서관으로 향했다. 수많은 책과 디자인 서적을 탐독하며 “가슴이 뛰었고” 시각디자인을 부전공하며 북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후 북디자인 에이전시에 입사해 교과서부터 인문서까지 다양한 책을 디자인하던 그는 문학책에 대한 갈증으로 열린책들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장미의 이름’ 리커버 판을 디자인하며 북디자인의 힘을 실감했다. “이미 많은 독자가 갖고 있는 스테디셀러였지만 새로운 디자인을 입은 뒤 다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어요. 같은 책이라도 새로운 디자인이 독자들에게 다시 읽히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죠.” 열린책들에서 국내외 문학작품을 원 없이 작업한 그는 이후 각본집과 요리책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디자인하고 싶어 독립을 선택했다. 서울출판예비학교(SBI)에서 후학도 기르고 있는 그가 북디자인 지망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엉덩이의 힘', 즉 성실함이다. “디자이너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운동선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매일 아침 출근해서 매일 훈련하듯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특히 그는 신입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습관이 하나 있다. “길을 걸을 때 좋은 디자인을 보면 왜 좋은지, 불편한 디자인을 보면 왜 불편한지를 계속 분석하고 고민해요. 그 습관이 가장 큰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재능보다 성실함, 영감보다 습관을 믿어온 그의 꾸준함이 오늘도 한권의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 이런 책을 디자인했어요 2666 로베르토 볼라뇨의 대표작으로 악의 본질과 태동을 파헤치는 소설이다. 그의 20주기에 맞추어 방대한 분량을 압도적인 판형의 특별판으로 묶어냈다. 표지는 서로 얽히고설킨 수많은 인물을 통해 반복되는 ‘악’의 형태를 강렬한 지옥도의 콘셉트로 담았으며, 빨간색과 검정색의 선명한 대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024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됐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2023) ‘사이시옷’ 시리즈 시인과 시인을 잇는 릴레이 시집으로, 지금까지 ‘진심의 바깥’ ‘피냐타 깨뜨리기’ ‘사계절 시네마’ 등이 출간됐다. 세로로 긴 판형과 과감한 그래픽, 선명한 컬러 대비의 띠지를 통해 시각적 긴장감과 개성을 강조한다. 표지에 작은 조각들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형태를 적용해 시의 주제와 핵심 오브제를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2026 한솔제지 인스퍼어워드 ‘블랙페이퍼’를 수상했다. 이제야 등 지음, 에피케(2025∼) 박찬욱 각본 컬렉션 세트 총 9권으로 구성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각본 선집으로 특히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등의 각본이 정식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과감하게 확대해 그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와이드 스크린 시네마스코프 2.35:1 비율에 담고, 뒤편으로 해당 장면의 각본이 흐르도록 구성했다. 한편의 소설을 읽듯 편안하게 읽히는 본문 디자인도 특징이다. 박찬욱 등 지음, 을유문화사(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