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역 비하 성격을 가진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주장이 지난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사과문을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광고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배재고 사태는 돌연 일어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혐오 밈은 힙합 가사와 ‘연고전’ 응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혐오는 적은 자원으로 많은 주목을 끌 수 있는 ‘가성비’ 도구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주목이 곧 화폐다. 즉, 혐오는 주목을 끌고 주목은 돈이 된다. 이런 시대에 혐오의 창궐은 차라리 필연이다.혐오를 놀이로 소비하는 이들이 광주 항쟁 비하와 희생자 모욕이 나쁘단 걸 정말 몰랐을까? 그럴 리 없다. 사회에서 단절된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그걸 모를 수는 없다. 애초에 혐오가 놀이가 될 수 있는 건 그게 주목받고 ‘긁히는’ 반응을 만든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효능감이 없으면 놀이도 없다.광고혐오의 놀이화는 ‘무지’가 아니라 ‘죄의식의 증발’에 기인한다. 기존 규범을 무력화하는 무언가가 선행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일베 폐쇄 혹은 혐오 표현 처벌로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 일베나 혐오 표현 때문에 민주주의 위기가 온 게 아니다. 평등의 가치가 이미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됐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졌고, 그 결과 혐오 표현과 극우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평등과 민주주의를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는 극우의 원인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많은 이가 경제적 불평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불평등이 덜한 북유럽에서 극우가 기승을 부리는 현상이나, 불평등의 최대 피해 집단인 빈곤층보다 중간계급 하층이 극우를 더 많이 지지하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연구자들은 극우의 주된 원인으로 지위 불안(status anxiety)을 꼽는다. 이는 불평등 자체라기보다 불평등 인식에 관한 문제다.광고광고특히 한국에는 타인과 비교하는 문화를 부추기고 지위 불안을 극대화하는 이념이 유독 강하다. 바로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는 스펙과 자격에 따른 불평등을 당연시하며 혐오와 결합되면 사회적 약자를 기생충 취급하는 데 이르기도 한다. 일베 담론과 법률 엘리트 다수의 심층에 있는 이념 역시 능력주의였다(‘지금, 여기의 극우주의’(2014), ‘한국의 능력주의’(2021)). 일베가 여성, 호남 사람, 민주화 세력, 세월호 유가족 등을 벌레 보듯 멸시하면서 일말의 죄의식도 없었던 이유는, 이들을 기여도 없이 보상만 빼먹는 무임승차자라 여기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을 천명하고 있고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지배 규범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능력주의라는 것을 아이들조차 잘 안다. 이러한 ‘이중 규범’ 상황은 평등과 민주주의를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민주화”가 일베의 대표 밈이 된 게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능력주의는 극우 이념과는 다르다. 하지만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와 극우는 밀접하다. 민주주의가 무력해질수록 능력주의는 최고의 ‘극우 사육장’이자 ‘극우 발사대’로 기능한다.광고극우의 부수 요인으로 ‘위선 혐오’도 있다. 인간은 배신자와 위선자를 악인보다 싫어한다. 불신보다 신뢰의 상실을 더 고통스러워하고, 명백한 적보다 친구로 위장한 적을 더 위험하게 느낀다. 한국의 ‘민주화 엘리트’는 앞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을 말하지만 뒤에서 지위 세습에 골몰하는 ‘내로남불’ 집단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극우는 이런 반감, ‘역겨운 위선보다 솔직한 혐오가 낫다’는 감각을 자양분 삼아 덩치를 키웠다.다시 강조컨대 색출과 처벌만으로 극우를 막을 수 없다. 대통령부터 재벌까지, 청소년부터 고령층까지, 모든 곳에 극우가 편재한다. 법적 처벌을 강화한 유럽도, 표현의 자유와 대항 표현(counterspeech)을 강조한 미국도, 끝내 극우 정당과 극우 대통령을 막지 못했다. 한편 일본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10년의 경험은, 비록 한계도 명확했지만 한국에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처벌 조항 없이도 혐오 표현을 억제하는 상징적·문화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극우 밈과 혐오 놀이를 전부 규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극우·혐오 표현에 맞서려면 전방위적 대응이 필수다. 한국의 경우 능력주의 문화와 승자독식 제도에 대한 성찰과 개혁이 무엇보다 핵심이다. 결국 극우를 막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은 잃어버린 민주주의 신념의 회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