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옛 미쓰비시 광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피해자 유족들이 23일 광주고법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광고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전쟁범죄기업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도 승소했다.광주고법 민사2부(재판장 박정훈)는 23일 유족 6명이 미쓰비시 마테리아루(미쓰비시 머티리얼, 옛 미쓰비시광업)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재판부는 유족 3명에게는 1억원씩, 나머지 3명에게는 상속분에 따라 1176만∼1666만원을 각각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광고유족 9명은 2020년 1월 소송을 제기했으나 미쓰비시쪽이 재판에 소극적으로 나서며 2024년 8월 1심 선고가 나왔고 소송 제기 6년 만에 항소심 선고가 이어졌다. 유족 중 3명은 소멸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1심에서 패소하며 항소심은 6명만 참여했다.유족들은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광업이 운영했던 광산에 강제동원돼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고된 노역에 시달린 피해자들의 가족이다. 피해자 고 이상업(1928~2017)씨는 15살이던 1943년 11월 일본 후쿠오카현 미쓰비시광업 가미야마다 탄광에 끌려가 1945년 8월까지 지하 1500m 막장에서 하루 15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세번의 시도 끝에 탈출하며 목숨을 건졌고 해방 뒤 귀국했다. 그가 남긴 수기는 2016년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광고광고또 다른 피해자 고 윤재찬(1917∼2010)씨도 15살 때인 1942년 8월 후쿠오카 미쓰비시광업으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렸고, 일하다 다쳐 평생 고통을 겪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윤씨에게 “월 150엔씩 우체국에 예치해주겠다”고 말하며 도장 1개를 만들어줬으나 윤씨는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귀국했다.재판이 끝난 뒤 이씨의 아들 선희씨는 기자들과 만나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끝까지 단합해 아픔을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윤씨 아들 출호씨도 “아버님의 한을 풀어드린 게 아닌가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광고한편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거주하는 피해자 유족들은 2019∼2020년 9개 전범기업을 상대로 집단 소송 15건(원고 54명)을 제기했다. 이중 스미세키 홀딩스를 상대로 한 소송은 확정 패소했고 대법원 1건, 항소심 9건, 1심 4건이 계류 중이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