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광고이대한 |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요즘 새롭게 생긴 스트레스가 하나 있다. 카페나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인공지능(AI) 음악이다. 처음 몇분은 괜찮다. 하지만 5분쯤 지나면 불편해지고, 10분이 넘어가면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진다. 이제는 에이아이 음악을 틀어놓는 곳이 하도 많아져서, 인간의 음악이 들려오면 안도감마저 느낀다.사실 처음부터 에이아이 음악에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연구실 근처 카페에서 처음 에이아이 음악을 들었을 때는 귀가 번쩍 뜨였다.광고‘이거 처음 듣는 노랜데, 너무 좋은데?’습관처럼 곧바로 폰으로 음악 검색 기능을 실행했다. 그런데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땐 야외 카페라 주변 소음 때문에 음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거라 생각했다.광고광고얼마 뒤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가 좋아할 법한 보사노바 음악을 추천해 주었다. 첫 곡을 듣자마자 마음에 들어 연주자와 앨범을 찾아보았는데, 이상하게도 또 검색에 실패했다. 영상 설명을 자세히 읽어본 뒤에야 에이아이로 만든 음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카페에서 음악 검색에 실패했던 이유도 깨달았다.에이아이 음악을 들을 때 반복되는 경험이 있다. 첫 곡의 도입부는 ‘오, 괜찮은데?’ 싶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보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고, 템포가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가사가 달라져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묘한 기시감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광고말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얼굴도, 패션도, 헤어스타일도 다르지만 왠지 모르게 다 적당히 멋지고 예쁜 느낌이다. 게다가 그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형언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모두 약간씩 다르게 꾸민 ‘똑같은’ 사람들인 것 같다.인간 가수의 앨범을 들을 때는 보통 정반대의 느낌을 받는다. 분명 같은 사람이 부른 노래들인데, 이질적이다. 첫 소절에 심장이 덜컹거리는 곡이 있는가 하면, 앨범을 들을 때마다 건너뛰게 되는 곡도 있다. 무엇보다 곡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가 다르게 느껴진다. 앨범의 어떤 곡들은 정말 아티스트가 영혼을 팔아서 작업한 곡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곰곰이 생각해보니 에이아이 음악이 주는 불편함의 근원은 모두 다 ‘적당히’ 좋다는 균질함이었다. 너무 좋거나, 별로거나, 그럭저럭 괜찮은 음악들이 뒤섞여 있는 인간 아티스트의 앨범과 달리, 에이아이 음악의 플레이리스트는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은 적당한 음악들로만 가득 차 있다. 아마도 세상의 수많은 음악을 학습해 그와 비슷한 무엇을 ‘금방’ 만들어내는 에이아이의 작동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예술의 본질은 ‘적당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무언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적당함에서 멀어지는 것이 예술의 본질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144년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적당함에서 몹시 거리가 멀다. 그런데 바로 그 적당함으로부터의 먼 거리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위대한 건축물로 만든다.광고그런 점에서 예술과 과학은 통한다. 과학자들도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기어코 가장 먼 과거를 보기 위해 우주로 망원경을 쏘아 올리고, 기어코 가장 작은 입자를 확인하기 위해 거대한 가속기를 만들어 입자를 충돌시킨다. 생물학자들은 초파리 뇌에 들어 있는 10만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을 하나하나 추적해 기어코 커넥톰이라고 불리는 뇌의 지도를 그려낸다.적당한 것은 무엇인가? 효율적인 것이다. 제한된 자원과 시간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적당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적인 식사 땐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가성비가 적당한 메뉴를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누군가 모든 끼니를 적당한 음식들만 먹는다면 왠지 인간적이지가 않다. 차라리 종종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가끔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 ‘플렉스’를 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나는 어울리고 싶다.적당함과 타협하지 않은 수많은 아티스트가 빚어낸 명곡들 덕분에 내 귀는 줄곧 호강해왔다. 에이아이 음악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적당함만 넘치는 세계가 다가온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비효율적인 집요함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은 적당함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계. 그런 세계는 도무지 정이 안 간다. 생명이 너무 궁금해서 꼬마선충이니, 초파리니, 그것도 모자라 해파리까지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적당함과 거리가 먼 나라는 인간은, 종종 좌절할지라도 꿈과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삶과 세계의 서사를 여전히 열망하며 인간의 노래를 뒤적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