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어떤 결심 l 윤슬빛 지음, 책폴(2026) 광고김유진의 청소년이라는 세계 6~7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아동청소년문학을 여러차례 강의하는 마지막 날, 다른 장르의 예술인 수강생께서 아동 성폭력 이슈를 재현한 동화나 청소년소설이 있는지 질문했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고작 몇 작품에 불과했고, 그중 국내 작품은 더 손꼽을 정도였다. ‘유진과 유진’(이금이, 푸른책들, 2004; 밤티, 2021), ‘안녕, 그림자’(이은정, 창비, 2011) 정도 외에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사실이 책임 방기처럼 여겨져 부끄러웠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문학 분야 또한 여성 서사를 모색하며 다시 열띠게 창작하던 무렵이라 더욱 그랬다. 예술인인 그가 분명 자신의 작업에 참고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질문까지 했을 텐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이후 ‘너를 위한 증언’(김중미, 낮은산, 2022) 등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그날의 질문은 내내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다. 최근 출간된 청소년소설 ‘어떤 결심’은 아동 성폭력을 재현한 작품 목록에 한권을 더하는 이상으로 오랜 부채감을 누그러뜨려 주는 작품이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인 여성 청소년의 이야기를, 작가의 특장이라고 찬사받아 온 차분한 절제와 섬세한 서정이 공들여 만든 목소리로 들려준다. 독자는 그 이야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귀 기울여 듣고, 곁에 앉아 있게 된다. 아마도 작가 역시 똑같은 과정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서 작품으로 받아썼을 것으로 예상되듯이.광고 작가가 지나오며 마련한 길을 독자가 다시 걷는 일이 이다지 선연하고 아늑하면서도 새로운 인식을 다지게 하는 텍스트는 흔치 않다. 이 길에는 청소년 독자에게 전하기 민감한 이슈라는 걸림돌이 치워져 있다. 폭력을 재현하는 문학이 폭력을 재생산할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독자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썼고, 주인공은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이러한 겹침은 무척 익숙한 형식이지만 식상하거나 안일하게 느껴지지 않고 작가와 주인공의 쓰기가 하나로 겹치며 ‘진심’ 혹은 ‘진정성’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를 얻는다. “문장을 잇지 말자. 문장을 완성하지 말자. 조각난 채로 더듬고 퍼붓고 횡설수설하자”라는 문장은 폭력의 경험을 균열된 언어로 고발하고 증언할 수밖에 없는 생존자의 외침인 동시에, 폭력을 문학으로 재현하는 어려움 앞에서 이를 넘으려 분투하는 작가의 결심으로 들린다. 광고광고 마지막으로 주인공 이름을 밝혀야겠다. ‘주인 주’(主), ‘큰 하’(嘏).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졌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 청소년을 담은 영화 ‘세계의 주인’(윤가은 감독, 2025)의 주인공 이름 역시 ‘주인’인 게 떠오른다. 소설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윤슬빛 작가는 “‘강주하’란 인물과 마지막 문장이 퍼뜩 떠올라” 이 작품을 썼다고 하니 동시대 예술가들의 공통된 의식이 서로 만난 우연에 잠시 생각이 머문다. “우리가 불가피하게 어둠 속에 있을 때도 가느다란 빛에 기대 서로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도록 슬쩍 도와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소망을 독자로서 함께 바라본다. 여러 폭력의 생존자인 청소년, 위안과 용기가 필요한 모든 청소년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가느다란 빛으로 다가가는 목소리가 더 널리 퍼지기를. 광고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