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금의 서울 관악구 관악세무서 자리에 있었던 신림보육원(신림원)의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서 원생들을 찍은 사진. 유진수씨 제공광고“죽을 것처럼 맞아본 적 있나요? 하루라도 안 맞은 날이 없어요.”유진수(57)씨가 40여년 전 아동수용시설 신림보육원(신림원)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되짚으며 다시금 분노했다.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보내진 신림원에서 폭행과 강제노동으로 얼룩진 유년 시절을 보낸 유씨는 3일 한겨레에 “미래를 강탈당했다”고 했다.유씨를 비롯해 어린 시절 신림원에 수용당했던 피해자 37명이 지난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했다. 폭행, 강제노동, 성폭행 등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 등에 버금가는 인권침해가 전해졌지만, 이들이 국가와 시설이 결탁한 인권침해 피해를 공식적으로 규명해달라고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광고1967년 현재 서울 관악세무서 자리에 터 잡았던 신림원은 정부의 ‘부랑아 단속’ 정책에 맞춰 운영된 보육시설이다. 대부분 아동은 실제 부모가 있는지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대여섯살 때 경찰이나 공무원 등에게 붙잡혔고,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등 ‘경유지’를 거쳐 신림원에 들어갔다.신림원 피해자들은 끔찍한 배고픔과 폭력을 증언했다. 최창식(65)씨는 “바위 틈 사이에 낀 ‘쫀득쫀득한’ 진흙을 파먹거나, 몰래 담장을 넘어 아카시아꽃을 따먹었다”고 말했다.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유진수씨 “보육원 총무가 원장의 친척이었는데 악질이었다. 아직 국민학생에 불과했던 우리에게 오리걸음을 시키거나 오금에 몽둥이를 끼우고 무릎 위를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엉덩이를 때리면 멍이 드니까, 폭행을 숨기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광고광고신림원 식당에 모여있는 원생들. 유진수씨 제공신림원 원생들은 강제노동에도 동원됐다. 피해자들은 원장 일가의 소유로 추정되는 벽돌 공장에서 일하거나, 닭똥을 말려 거름으로 팔아야 했다고 전했다. 김용재(64)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자급자족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한겨울에 손에 동상이 걸리고 피가 터져도 천 평이 넘는 땅을 개간했다”고 말했다.피해자들이 특히 분노하는 건 ‘잃어버린 미래’다. 신림원은 돈이 든다는 이유로 국민학교를 졸업한 원생들을 봉천동의 고등공민학교에 보냈다.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시설이라 원생 대부분 최종학력은 국졸(초졸)에 머문다. 가난과 차별이 시설을 나온 뒤로 이어졌다. 유진수씨는 “200여명 원생 중 45명이 사망하고 최소 20명이 연락 두절된 상태다. 사망자 대부분은 사회 적응을 못 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거나 이른 나이에 무연고 사망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광고이들은 3기 진실화해위에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를 다루는 조사3국이 신설된다는 소식에 뒤늦게 진실규명 신청을 결심했다고 한다. 피해자 정순영(57)씨는 “진실화해위가 신림원에서 있었던 일이 반헌법적인 국가폭력이란 점을 명백하게 증명해주길 바란다”며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아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육시설을 점검하고 이를 운영하는 위탁자들에 대한 철저한 선별과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하루라도 안 맞은 날이 없어요”…신림원 아이들의 ‘진상규명’
“죽을 것처럼 맞아본 적 있나요? 하루라도 안 맞은 날이 없어요.” 유진수(57)씨가 40여년 전 아동수용시설 신림보육원(신림원)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되짚으며 다시금 분노했다.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보내진 신림원에서 폭행과 강제노동으로 얼룩진 유년 시절을 보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