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남파의 천지가 입체 영화라면서파의 천지는 파노라마 풍경화북파 코스는 10㎞ 달리기 대회로사흘 연속 맑은 천지 보는 행운장보영의 등산 여행천지 등반과 백두산 트레일러닝 대회백두산 남파 코스로 올라 마주한 천지. 2005년부터 개방된 남파 코스는 북파, 서파 코스에 견줘 천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장보영 제공광고이번 등산 여행의 발단은 산악계 선배에게서 걸려 온 한통의 전화였다. 안부를 주고받던 중 선배는 무심히 6월 말 백두산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이야기가 그날만큼은 유독 내 귀를 사로잡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남파, 서파, 북파까지 세개 코스로 천지를 둘러볼 계획이라는 것, 그중 북파 코스는 10㎞의 산악도로를 두발로 걷고 달려 오르는 ‘백두산(장백산) 천지운로 등산대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 대회에 참가해 천지에 오른다는 이야기였다. 보통은 차를 타야 닿을 수 있는 천지를 오직 자신의 발로 올라가 만난다니. 순식간에 마음이 동했다.사실 나는 이미 달려서 천지를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무려 50㎞를 말이다. 2018년 여름, 백두산에서 열린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해 완주했다. 대회의 공식 명칭은 ‘더 노스 페이스 100 챌린지 창바이산’. 창바이산은 백두산의 중국식 이름이다. 당시 제2회 대회였는데, 백두산 삼림보호구역이 일시적으로 개방됐다. 50㎞는 물론 100㎞ 부문까지 코스가 정해졌다. 덕분에 수많은 트레일러너와 등산 애호가들이 평소에는 출입이 제한된 백두산 원시림을 마음껏 누비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호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부터 행사가 무기한 연기됐고 ‘달려서 백두산을 오르는 꿈’은 희망의 저편으로 사라진 듯했다.그렇게 사라진 줄만 알았던 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더욱이 남파, 서파, 북파 세개 코스를 통해 천지를 만나는 일정이었다.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먼 길을 찾아가고도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한 데가 천지다. 사흘에 걸쳐 세개 코스를 통해 세번이나 오른다니 적어도 한번은 천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여름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 5년 전인 2013년엔 공정여행을 통해 백두산에 처음 올랐다. 그때는 서파 코스를 올라 천지를 보았다. 북파와 남파 코스를 통해 천지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기대가 됐다.광고서파 코스로 오르면 만나는 천지. 대지 위에 놓인 거대한 거울 같다. 장보영 제공백두산 여행은 현지 가이드 없이 개별적으로 다녀오기에는 절차가 꽤 복잡한 편이다. 언어 장벽은 물론이고 관광지까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도 쉽지 않아 대부분 여행사를 통해 일정을 진행한다. 나 역시 이번 여행을 위해 오랜 기간 트레킹 전문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여행사와 함께했다. 특히 이번 일정에는 ‘백두산 천지운로 등산대회’ 참가가 포함되어 있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창춘 룽자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창춘에서 송강하(쑹장허)까지 버스로 네시간가량 이동해 도착했다. 본격적인 백두산 여행의 시작이었다. 지린성 바이산시에 자리한 송강하는 백두산으로 향하는 관문 같은 곳이다. 문득 송강하에서 한인 민박을 운영하는 지인 부부가 떠올라 연락했다. 8년 전 백두산 트레일러닝 대회 당시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이번 여행은 단체 일정이라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사흘간 일정도 빽빽하게 짜여 있어 따로 만날 여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도착해 전화로 목소리를 듣는 것만도 뭉클했다.광고광고이튿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백두산 남파로 향했다. 남파는 북파와 서파보다 비교적 늦게 개방된 코스다. 북파는 1980년대 초부터 관광지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서파는 2000년대 초반, 남파는 2005년 이후 단계적으로 일반 관광객에게 공개됐다. 남파는 세개 코스 가운데 천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구간으로, 생태계 보호와 국경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6월에서 9월 사이에만 한시적으로 개방된다. 도착한 관광서비스집산센터에서 10인승 흰색 승합차로 갈아탄 뒤 곧장 천지로 향했다. 모든 과정이 놀랄 만큼 속전속결이었다.남파 코스는 백두산 세개 코스 가운데 북한과 가장 가깝다. 우리를 태운 승합차는 원시림을 관통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차창 밖 풍경은 점점 다른 차원으로 변해갔다. 원근감이 사라진 듯한 시야 저편으로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고원이 펼쳐졌다. 가이드는 그 방향이 북한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썼지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광고승합차를 탄 지 약 30분 뒤, 우리는 남파 정상부에 이르렀다. 이제 천지까지는 걸어서 겨우 500m 남짓이었다. 전망대는 먼저 도착한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시야를 겨우 확보했다. 내가 아는 천지가 변함없이 맑고 투명한 얼굴로 어서 오라고 환영했다. 얼어붙은 듯 미동조차 없는 천지는 대지 위에 놓인 거대한 거울이 되어 자신을 비추는 모든 것을 고요히 품고 있었다. 천지의 시간은 멈춰 있는 듯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민족이 갈라진 그날부터였을까?오후에는 조선족 자치 도시인 장백현으로 넘어갔다. 압록강 인접 지역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양강도 혜산시였다. 흡사 1970년대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폭이 좁은 압록강 상류에서 바짓단을 걷고 강을 건넌다면 1분도 되지 않아 강 반대쪽 북한 땅에 닿을 거 같았다. 안보상의 이유로 사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압록강 건너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중 누군가는 웃고 있었다.서파 코스의 상징인 1442계단. 노약자, 장애인 등 이동 약자는 가마를 이용해 오른다. 장보영 제공이튿날은 백두산 서파로 향했다. 일전에 두번에 걸쳐 백두산을 찾았을 때 모두 서파 코스를 올랐기에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러 가는 듯한 심정이었다. 서파의 상징인 1442계단은 여전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기존의 낡은 목조 계단 옆에 대리석으로 만든 새 계단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1442계단을 올라 마침내 다시 마주한 천지는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남파의 천지가 입체 안경을 쓰고 보는 한편의 영화 같다면, 서파의 천지는 한발 떨어져 감상하는 풍경화였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천지를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대관절 전생에 무슨 덕을 쌓은 것일까. 화창한 하늘 아래 이틀 연속 천지와 마주하는 운명이라니. 천지 3연패 도전의 신화는 어느덧 마지막 한발을 남겨두고 있었다. 북파로 향하는 날은 ‘백두산 천지운로 등산대회’도 열리는 날이었다. 백두산 여정 셋째 날 새벽 1시, 경기 준비를 모두 마친 우리는 대회장이 있는 북파 관광구 내 운동원촌(선수촌)으로 향했다. 짐을 맡긴 뒤 대형 아치가 세워진 출발선에 섰다. 8년 만에 다시 천지를 향해 달리다니, 감개무량했다.광고‘제7회 백두산 천지운로 등산대회’에 참여한 장보영 작가(왼쪽 둘째). 주행 거리 10㎞, 수직 상승고도 1000m의 북파 주봉도로를 두발로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회 주최 쪽 제공카운트다운과 함께 새벽 4시, 경기가 시작됐다. 결승선인 천문봉까지는 10㎞였다. 거리는 비교적 짧아도 누적 상승고도가 무려 1000m에 이르는 전형적인 ‘버티컬 코스’(가파른 오르막 코스)였다. 평소 승합차와 셔틀버스가 오가던 북파 주봉도로를 제한 시간 3시간 동안 오직 두발로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 대회는 중국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고, 참가 인원 역시 1000명으로 제한해 많은 이들이 출전하고 싶어 했다. 1㎞를 달릴 때마다 고도가 100m씩 올라갔다. 호흡이 거세지지 않도록 숨을 고르며 멈추지 않고 꾸준히 눈앞의 경사도를 지워 나갔다.장백폭포. 높이 약 70m로, 천지에서 발원한 물이 절벽을 타고 떨어지며 형성된 고산폭포다. 장보영 제공어느덧 동쪽 방면으로 해가 떠올랐다. 밝아지는 사위 속에서 어둠에 잠겨 있던 비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불과 몇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기였기에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다시 보지 못할 풍경 앞에서 하염없이 두리번거렸다. 그러면서도 저 멀리 성채처럼 솟은 천문봉에 서둘러 닿고 싶었다. 쉼 없이 뒤따라오는 주자들과의 간격을 지키는 것이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1시간20분28초 만에 여자부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날도 천지는 같은 자리에서 빛나는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백두산 천지운로 등산대회’ 완주 메달. 천지를 배경으로 찍어 더욱 빛난다. 장보영 제공장보영 ‘아무튼, 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