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황진미의 그거 봤니?] 신입사원 강회장 드라마는 핏줄이 아닌 공정한 능력주의를 천명하는 척하지만, 주인공 황준현의 몸을 입은 강 회장이 결정적인 위기를 돌파할 때 쓴 진짜 카드는 “내가 사실 회장의 숨겨진 막내아들”이라는 핏줄의 사기극과 그 현금 다발이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맥과 자본이 없다면 말단 사원은 영원히 말단 사원일 뿐이라는 잔인한 현실의 역설적 자백이다. 강방글의 뛰어난 능력도 잘 뜯어보면, 재벌가라는 환경에서 짬짬이 체득되고 최고급 유학과 파티를 통해 형성된 ‘세습된 문화 자본’의 산물이다.‘신입사원 강회장’ 포스터. 영혼 체인지로 청년 인턴의 몸에 강 회장의 영혼이 들어가, 경영 능력이 ‘만렙’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쓴 산경 작가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제이티비시 제공 광고최근 종영한 제이티비시(JTBC) 주말 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의 최종회 전국 시청률이 13.6%를 기록했다. 광고주와 화제성의 핵심 지표인 ‘2049 타깃 시청률’은 일요일 전체 프로그램 중 압도적 1위였다. 비결이 뭘까. 표면적으로는 오피스 활극의 재미를 내세우지만, 밑바닥에는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완전히 끊어진 시대에 2049세대의 절박한 생존 욕망과 집단적 무력감이 투영되어 있다. 이들은 주말 밤만이라도 복잡한 현실의 중력에서 벗어나, 직관적이고 통쾌한 대리 만족을 소비하고 싶었다.광고 ‘인생 2회차’ 효능감과 영리한 각색 드라마 원작은 ‘재벌집 막내아들’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산경 작가의 웹소설이다. 대중이 두 작품에 매료된 이유는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기업물의 외피를 쓰고 있는데, 주인공이 ‘인생 2회차의 경험치’로 압도적인 자본주의 생존 기술을 펼친다. 주식과 코인, 부동산 등락의 리스크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 관객들에게, 내가 갖지 못한 혜안을 탑재하고 투자 신공을 발휘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거대한 소망 충족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것은 ‘미생’(2014)을 보며 짠내 나는 직장인의 성공을 응원하던 시대와 사뭇 달라진 세대의 욕망을 보여준다.광고광고 드라마는 원작이 가진 치명적인 한계와 파멸적 결말을 영리하게 비틀었다. 원작에서는 70대 최성그룹 강 회장이 젊은 인턴의 몸을 영구 점령하고, 인턴의 영혼은 소멸하는 결말을 맞았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각자 영혼이 제자리를 찾는다. 만약 드라마가 원작의 설정을 따랐다면, 2049 관객들은 대리 만족이 아닌 계급적 불쾌감과 정서적 저항감을 느꼈을 것이다. 청년의 신체까지 착취하며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실리콘밸리 테크-갑부들의 디스토피아적 영생 판타지이자, 기득권의 추악한 노욕으로 비쳤을 테니까. 또한 드라마는 주인공 황준현에게 ‘축구선수이자 뺑소니 피해자’라는 전사를 얹는다. 그는 영혼이 바뀌기 직전 강 회장을 찾아와 뺑소니 사건을 따지고, 강 회장이 내민 당좌수표에 “최성을 주시죠”라고 적었다. 황준현에게 ‘주체적 인물’이라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사건의 진상을 쫓는 미스터리 장르물의 동력을 드라마에 추가했다. 이 영리한 각색 덕분에 드라마는 청년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신입사원 강회장’ 1회. 주인공 황준현은 축구선수이자 뺑소니 피해자였다. 그는 뺑소니 사고를 따지러 강 회장에게 왔다가 몸이 뒤바뀐다. 원작에 없는 황준현에 대한 전사는 관객에게 황준현(의 몸을 지닌 강 회장)을 응원하게 만든다. 제이티비시 제공 노인-청년 세대 직거래의 의미광고 각색이 더욱 흥미로워지는 점은, 드라마가 원작에는 없는 막내딸 ‘강방글’을 창조해 넣으면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세대 갈등과 재원 배분의 문제를 정조준한 것이다. 경영권을 노리며 비자금을 은닉하는 중년 세대(강재성·강재경)는, 능력은 평범하면서 오직 기득권의 대물림과 사익에만 혈안이 된 ‘부패한 낀 세대’의 병폐를 상징한다. 반면, 능력이 있음에도 기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했던 청년 세대(강방글·황준현)가 손잡고 이들의 부패를 폭로하며 경영권을 수호하는 모습은 우화적이다.‘신입사원 강 회장’ 5회. 강재경과 강재성. 강 회장의 쌍둥이 자녀인 두 사람은 각각 화학과 물산의 사장 자리를 맡고서, 회장 자리를 두고 출혈 경쟁을 벌인다. 제이티비시 제공 이는 필자가 드라마 ‘협상의 기술’을 비평하며 폈던 세대론의 논조와 연결된다. ‘협상의 기술’이 독점 권력을 쥔 산업화 세대와 권모술수만 남은 민주화 세대 모두를 서늘하게 비판했다면, ‘신입사원 강회장’은 그 칼날을 ‘사회의 재원과 기회를 누가 가질 것인가’라는 경제적 관점으로 이어받는다. 노년 세대(강 회장)가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중년 세대를 과감히 건너뛰어, 그동안 배제당한 청년 세대에 경영 혜안을 직접 전수하고 기회를 주는 모습은 한국 사회를 향한 웅변이다. 즉 “노인 세대가 꽉 쥐고 있는 자본과 기회를, 수혜를 당연시하는 4050에만 세습하지 말고, 새로운 청년 세대에 나누라”는 세대 간 직거래를 항변하는 것이다. 능력주의의 가짜 신화 하지만 이 통쾌한 세대론 서사 뒤에는 대중문화가 심어놓은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착시와 맹점이 숨어 있다. 관객은 황준현이라는 무해하고 억울한 청년의 육체에 감정을 이입하느라, 강 회장이라는 인물이 소유한 거대한 불법성에는 완전히 눈을 감아버린다. 중년의 강재성과 재경 남매가 숨겨둔 비자금은 기업을 좀먹는 추악한 범죄로 단죄되지만, 강 회장이 회장실 뒤에 잔뜩 쌓아둔 금괴와 현금 다발은 주인공이 위기를 돌파할 때 쓸 수 있는 ‘착한 치트 키’로 미화된다. 탈세와 정경유착의 결과물이었을 그 부정한 자금의 원천에 대해 드라마는 끝내 질문하지 않는다.광고‘신입사원 강회장’ 1회. 강 회장의 비밀 금고 안에는 금괴와 현금다발, 비자금 문서 등이 가득 들어 있다. 황준현의 몸을 얻은 강 회장은 비밀 금고 안의 금괴와 현금을 꺼내 요긴하게 쓴다. 제이티비시 제공 더욱이 드라마는 핏줄이 아닌 공정한 능력주의를 천명하는 척하지만, 황준현의 몸을 입은 강 회장이 결정적인 위기를 돌파할 때 쓴 진짜 카드는 “내가 사실 회장의 숨겨진 막내아들”이라는 핏줄의 사기극과 그 현금 다발이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맥과 자본이 없다면 (그가 강 회장의 두뇌와 경험치를 가졌다 할지라도) 말단 사원은 영원히 말단 사원일 뿐이라는 잔인한 현실의 역설적 자백이다. 강방글의 뛰어난 능력도 잘 뜯어보면, 재벌가라는 환경에서 짬짬이 체득되고 최고급 유학과 파티를 통해 형성된 ‘세습된 문화 자본’의 산물이다. 진짜 서민 청년들은 생존을 위한 스펙 쌓기에 급급해 접근조차 불가능한 영역이다. 축구선수 청년의 단단하고 수려한 육체는 단지 기득권의 자본 놀음과 세습을 (관객 눈에 보기 좋게) 도덕적으로 포장하도록 동원된 외피였던 셈이다.‘신입사원 강회장’ 6회. 강 회장의 막내딸 강방글이 경쟁 업체의 대규모 리튬 광산 거래가 이루어지는 외국 파티장에 잠입해 거래를 중단시키고 가로챈다. 제이티비시 제공 묵직한 화두와 얄팍한 해피엔딩 이러한 자본주의적 착시는 남성 가부장 주체의 지체된 반성 서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강 회장의 성찰은 철저히 자본의 지위 안에서만 맴돌 뿐, 근원적인 해체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는 과거 재혼 과정에서 전처 자식들의 배신감과 상처를 방치한 무책임한 가부장이었다. 공포영화 ‘장화, 홍련’의 아버지처럼. 또한 강재경은 오빠와 차별을 느껴왔지만, 대외적으로는 “아버지는 차별한 적 없으시다”라고 말한다. 그는 가부장의 인정을 갈구하다 괴물이 되어버렸고, 결국 미쳐버린다. ‘장화, 홍련’의 수미(임수정 분)와 비슷한 귀결이다. 마지막 순간, 강 회장은 강재경에게 “어릴 때 너를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가부장으로서 뒤늦은 사과와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그러나 딸은 그 손길을 단호히 뿌리치며 패륜을 택한다. 강 회장은 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이는 가부장의 원죄를 오직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만 간신히 상쇄할 수 있다는 뒤늦은 깨달음의 발현이다. 강재경에게 사법적 단죄 대신 ‘광기’의 격리가 부여된 결말에서는 가부장제의 그늘에서 뒤틀린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모든 묵직한 사회학적 화두들은 최종회에서 허무할 정도로 급작스럽게 힘을 빼며 가벼워진다. 사생결단의 파국으로 폭주하던 극은 ‘2년 후’라는 자막 한줄과 함께 평온해진다. 제대로 처벌받은 기득권은 없고, 마지막에는 예능 수준의 두번째 영혼 체인지가 일어난다. 마르크스의 격언처럼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 첫번째 영혼 체인지가 청년의 계급적 좌절이 얽힌 ‘비극’이었다면, 두번째 체인지는 “어차피 판타지 소동극이니 더는 진지해지지 말라”며 관객의 비판적 시선을 무력화하는 ‘희극’이자 비겁한 물타기다. 제작진은 ‘재벌집 막내아들’이 빚은 결말 공포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충과 봉합이라는 안전장치를 택했고,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비추다 말고 진지함을 벗고 도망쳤다.‘신입사원 강회장’ 12회. 강 회장과 재혼한 조선희 여사는 요리 유튜버로 성공한다. 집사 출신인 그는 강방글의 엄마로 한결같이 전처 자식들을 돌봤지만, 전처 자식들에게 어머니로 인정받지 못했다. 제이티비시 제공 이 얄팍한 해피엔딩 속에서 조선희 여사(윤유선 분)가 맞이한 결말만큼은 대단히 신선하고 진보적이다. 재벌가 사모의 존재는 가부장제 안에서 ‘돈 많이 받는 집사’로 격하되느냐, 혹은 헌신을 인정받아 ‘정상 가족의 어머니’로 등극하느냐는 낡은 이분법에 갇히기 쉽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를 집안에서의 인정 투쟁에 가두지 않는다. 대신에 그가 가족들을 보살피며 축적한 압도적인 요리 실력을 사적인 ‘무급·그림자 노동’에 묶어두지 않고 ‘요리 유튜버’라는 공적 영역으로 해방한다. 그는 가부장의 시혜적 인정 서사를 거부하고, 자신의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를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사회화하여, 자율적 주체이자 1인 기업가로 변신한다. ‘신입사원 강회장’이 남긴 자본주의적 착시와 기만적 능력주의의 거대한 한계 속에서도, 이 ‘돌봄 노동의 사회화’라는 건강한 유산만큼은 우리 사회가 오래도록 곱씹고 확장해야 할 성취이다. 황진미 |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