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동물복지 기준보다 더 넓은 사육 밀도로 산란계를 사육하는 경기 화성시의 산안마을 농장. 두 차례 살처분을 겪으며 백신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남종영 광고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의 모범국이라고 우리가 자부한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2010년대에는 그나마 띄엄띄엄 발생했지만 2020년대 들어선 매년 발생하여 살처분이 계속된다. 달걀값 폭등도 더는 낯선 뉴스가 아니지만, 이제는 그 지독한 무감각을 떨쳐내야 할 이유가 있다. 바다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 조류인플루엔자 H5N1형이 변이를 거듭하며 포유류의 몸으로 건너오고 있어서다. 아르헨티나 발데스 반도에서 코끼리물범이 떼죽음하고, 알래스카의 북극곰과 포클랜드제도 젠투펭귄마저 감염됐다.광고 최악은 바이러스가 2024년부터 미국의 젖소 농장 1000여 곳을 휩쓴 사태다. 젖소의 기침이나 타액이 아닌 착유기를 통해 바이러스는 숙주를 넘어다녔고, 결국은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감염됐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아직 사람까지 잘 옮겨지지 않지만, 인체 감염 시 과거 누적 치명률이 절반에 이르렀던 무서운 질병이다. 우리나라는 감염병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 왔던가.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모두 팔 걷고 백신을 보급했고, 학교와 일터를 멈추고 사회적 거리를 벌렸다. 고령층 등 면역이 약한 이웃을 지키려 불편을 견뎠고, 그렇게 한국은 방역 모범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닭과 오리를 대하는 방법은 정반대였다. 숙주를 지키는 대신 숙주를 없앴다. 농림축산부 공식 집계를 보면, 지난겨울 조류인플루엔자에 따라 살처분된 1134만 마리는 전체 산란계 사육 두수의 13.7%에 달했다. 10마리 중 1마리 이상을 죽이며 산업을 유지하는 게 과연 정상적일까?광고광고 살처분폐지연대 등 시민단체와 산란계협회는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숲과나눔 재단에서 열린 ‘왜 한국은 아직도 살처분에 갇혀 있을까?’ 토론회에서 백신을 시범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정부는 청정국 지위를 잃어 국제 무역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바이러스의 ‘깜깜이 전파’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백신 도입을 미뤄왔다. 하지만, H5N1형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바이러스가 남극까지 번진 지구적 확산을 두고 세계동물보건기구 등 학계와 전문가 그룹은 이번 대유행을 ‘팬주틱’(범동물유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가금 농장에서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광고 프랑스는 2021~22년 2200만 마리 살처분 사태를 겪고, 2023년부터 오리에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정책 방향을 선회해 백신 접종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시범 도입을 준비 중이다. 바헤닝언 생물수의학연구소의 현장 시험 결과,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때 1회 접종군의 폐사율은 10%로 나타났고, 추가 접종을 받은 닭에서는 폐사가 없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백신을 접종한 가금 제품의 무역 장벽을 허물자며 미국·캐나다·프랑스·유럽연합과 실무그룹까지 꾸렸다. 또 다른 우려는 백신 접종 개체와 실제 야외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체를 구분하기 어려워 인간 감염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를 가려내는 디바(DIVA∙Differentiating Infected from Vaccinated Animals) 기술이 이미 개발됐고, 정기적으로 검사해 지켜보면 된다는 관련 업계의 의견이 소개됐다. 이달 초 동물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낸 보고서에도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백신 접종이 면역 회피 돌연변이 출현을 부추길 수는 있으나, 그 대가로 바이러스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초래해 오히려 포유류에 대한 병원성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물론 백신이 만능이 아니다. 백신 도입론자들도 농장 소독과 이동 제한을 없애라는 게 아니다. 세계동물보건기구는 2023년 과거 살처분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백신 접종을 보완적인 질병 통제 수단으로 채택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21년 경기 화성시 동물복지 농장 산안마을이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오르자,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도 차원의 살처분 기준을 주문하며 백신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5년이 흘렀고 많은 게 바뀌었다. H5N1 바이러스는 지구를 점령했고, 방역 선진국들은 정책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으며, 국내 농가들도 백신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마다 수백만 수천만의 애먼 목숨을 기계적으로 지워내며 달걀을 얻는 방식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