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클라우디오 한나가 지난달 23일 경기 안성시 석정동 김명곤 복싱짐에서 글러브를 끼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광고“다른 운동도 좋아하지만 복싱이 제일 재밌어요.” 수줍게 말을 마친 뒤 발걸음을 옮긴다. 샌드백을 보는 눈매가 매섭다. 카메라를 어색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빨간 글러브가 잇달아 흰 샌드백에 꽂힌다. 지 난달 23일 저녁 7시께 경기 안성시 석정동 ‘김명곤 복싱짐’에서 만난 ‘복싱 꿈나무’ 클라우디오 한나(14)의 훈련 모습이다. 한나가 복싱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 체육관을 찾은 뒤로 복싱에 푹 빠졌다. 흥미를 잃은 친구는 체육관을 떠났지만, 한나는 글러브를 벗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처럼 아이돌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그룹 엔믹스(NMIXX) 멤버 오해원의 팬이라는 한나. 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복싱”이다.광고 지난해 2월28일은 한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처음 복싱대회에 나갔다. ‘진짜 링’에 오르는 일을 앞두고 망설임도 있었지만 용기를 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첫 대회부터 최우수선수로 꼽힌 한나는 그날부터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총 전적 7전7승. 한나는 “코치님께 배운 걸 실제로 수행할 때 기분이 정말 좋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올림픽에 나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클라우디오 한나가 지난달 23일 경기 안성시 석정동 김명곤 복싱짐에서 스파링을 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그런 한나에겐 요즘 고민이 있다. 대회 참가 때문이다. 한국은 한나가 오를 수 있는 링을 제한한다. 한나는 동호인이 참가하는 생활체육대회에는 나갈 수 있지만 선수들이 출전하는 엘리트 대회에는 나설 수 없다. 필리핀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이곳에서 복싱을 배운 한나는 필리핀과 한국 중 “당연히 한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한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나는 귀화도 고민하지만 성인이 되기 전엔 사실상 어렵다.광고광고 ‘외국인’ 한나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사실 한나를 가로막는 건 단순히 국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한복싱협회 경기인 등록 규정은 국적을 이유로 선수 등록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외국인도 국제복싱협회 규정과 국내법 허용 범위에서 협회 허가를 받아 선수 등록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산하 다른 종목에선 실제 외국 국적자가 선수로 나선 경우가 여럿 있다. 2023년 대한씨름협회 특별 승인을 받아 전국대회에 나설 수 있었던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2세 김웬디(14)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 한나도 그간 대한복싱협회에 선수 등록을 수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대한복싱협회는 “외국인은 안 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협회 관계자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고, 협회 목적인 ‘한국 국가대표 양성’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고 했다. 사실 협회에는 그간 유사한 요청이 수차례 들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진학과 취업에 영향을 주는 엘리트 대회에 외국인 선수가 등록하는 걸 반대하는 협회 안팎 여론 때문이다. 한나를 도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지난 5월 진정을 낸 정인교 안성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센터장은 “스포츠가 강한 선수를 싫어하는 꼴”이라고 했다.광고클라우디오 한나(오른쪽)가 지난달 23일 경기 안성시 석정동 김명곤 복싱짐에서 김정우 코치와 대화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한창 실전 경험을 쌓으며 성장해야 할 시기인 한나는 이날 또래 여학생 대신 남학생과 스파링을 했다. 한나를 지도하는 김정우 코치는 “남성은 국적 문제가 있어도 선수 풀이 넓어 상황이 나은데 여성은 인재 풀도 적어 엘리트 대회가 아니면 경험을 쌓기 어렵다”며 “한나가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한나가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 코치가 말을 이었다. “선수로서 무조건 성공한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한나가 도전하고 실패할 기회마저 빼앗을 순 없는 것 아닌가요.”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