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2025년 8월7일 오전 일본 사쿠요 학원 고등학교 여자 축구부 학생들이 훈련하고 있다. 오카야마/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광고2002 한일월드컵 당시 초등학교에 입학한 현진이는 6학년이 되어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던 날, 보란 듯이 일기장에 썼다. “이제부터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 4~5학년 체육 시간엔 현진이 같은 여학생에게 피구만 시켰기 때문이다. 일기 검사를 하던 담임 선생님은 다정한 글씨체로 기꺼이 응답했다. “다음에 또 하자꾸나!” 연합뉴스 스포츠부에서 일하던 이의진 기자는 어느 날 덜컥 여자축구와 얽혀 버렸다. 텔레비전 리얼리티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다가 첫 승을 거두고 우는 사람들을 여동생은 이해하지 못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전력 질주하여 운동장에 나가 공을 몰다가 5분 만에 식판의 밥을 흡입하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상태로 의자에 앉는 벅찬 감정을, 여동생은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저자는 학창 시절 자신을 지킨 것이 스포츠가 주는 “야만적인 즐거움”이었는데, 왜 누군가는 이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지 궁금해하면서 ‘구조’를 파고들었다. 2025년 7월2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블유케이(WK)리그 경기에서 서울시청과 인천현대제철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처럼 공 차는 성인 여자들의 경험을 다룬 책들이 여러권 나왔다. 하지만 여자들이 왜 어릴 때부터 축구의 즐거움에서 소외되는지, 세계 최강이던 ‘한국 여자축구’가 왜 부흥의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주저앉아 버렸는지 진단하고 해명하려고 시도한 책은 이의진의 ‘축구하는 여자 처음 봐서요’가 처음이다. 축구를 즐길 기회는 행복 추구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생각했다. “숨 막히는 답답함을 견뎌낼 흥분의 도가니”에서 누군가는 “진작 배제”되는 일이기 때문이다.광고 앞서 언급한 현진이는 어려서 축구에 푹 빠졌지만 엄마의 완강한 반대로 선수가 될 수 없었다. 대학 입학 뒤에 비로소 축구 동아리에 가입하고 맘껏 운동장을 누볐다. 해피엔딩 같지만, “행복이 어떻게 차등적으로 배분됐는지 보여 주는 역설적 사례”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축구를 둘러싼 성차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함의 밀도”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여자아이들도 공을 차며 행복해한다. 성별 불문 동등하게 축구가 전파되는 공간은 극히 드물었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가 주최한 WK리그 시상식 장면. 드루 제공 어렵게 선수가 되어도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국의 여자축구 은퇴 선수 상당수가 골프장 캐디로 살아간다. 2023년 자료를 보면, 캐디 1인당 평균 연봉은 약 5500만원. 2025년까지 여자 실업 축구 WK리그에서 단순 연봉으로 5000만원 넘는 돈을 받은 사람은 없다. 잘 버는 캐디와 최고의 여자축구 선수의 수입이 비슷한 셈이다. 선수로 성공하지 못해도 감독, 행정가, 구단 프런트 등으로 일할 수 있는 남자축구와 달리 여자축구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여축 선수와 골프 캐디, 둘 사이에 숨겨진 연결고리’, 2025년 9월8일 한겨레21 1578호, 1579호 합본호 참고)광고광고 사실 한국 여자축구는 남자축구보다 더 높은 곳까지 나아간 경험이 있다. 2010년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 17살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한국 대표팀 통틀어 국제축구연맹 주관 대회에서 우승한 유일한 기록이다. 그뿐이었다. 스포츠계에 여성 고위 임원은 없고, 일부 존재하는 지도자도 한국여자축구연맹으로 대표되는 기존 체제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보수화됐다고 한다. 2025년 7월21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WK리그 서울시청(검은색 유니폼)과 인천현대제철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폭염 속 대회를 치르면서 한국의 여자축구 선수들은 천막 아래 가림막도 없이 맨몸을 드러내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 지소연은 선수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다. 저자와 인터뷰하면서 지소연은 “제가 더 잘했더라면” 하고 자기 탓을 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부진은 구조적 문제였다. 2024년 5월10일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클럽 챔피언십 결승전이 일본에서 치러졌을 때, 현대제철과 일본 우라와 레즈 레이디스가 맞붙었다. 이날 5200명가량 관중이 입장했는데 현대제철을 응원하러 간 한국 팬은 단 한명이었다. 한국여자축구연맹의 홍보는 부실했고 팬들은 결승전이 언제 열리는지도 몰라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한명의 팬이 결승전 정보를 입수했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방적 응원 속에 현대제철은 1-2로 졌다.광고2025년 8월9일 일본 나가노경기장에서 열린 2025/26 솜포 위리그 개막전에서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가 2 대 0으로 승리한 뒤 다키카와 유메 선수가 서포터스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나가노(일본)=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책에는 스포츠 철학 부재와 정책 공백 속에 갈팡질팡하는 한국 여자축구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대한축구협회는 ‘산하기관’으로서 여자축구연맹을 방기하고, 연맹은 돈이 없고, 쓴소리를 싫어하며, 팬들은 관련 기구나 단체의 온갖 무능함에 지쳐 떠나기 일쑤다. 반면 금지의 시대를 딛고 여자축구의 역사를 뒤바꾼 잉글랜드 축구협회 역사, 호주 여자축구대표팀의 맹활약상을 보노라면 축구는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운동하면서 자신의 몸이 사회가 바라는 여성 신체 상과 달라지면서 선수 스스로가 느끼는 혼돈, 성 정체성 고민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골을 넣은 뒤 상의를 탈의하고 스포츠 브래지어와 복근을 드러내며 포효하던 브랜디 채스테인과 클로이 켈리는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걸까. “머리카락 날리는 바람이 너무 좋다”던 그라운드의 여자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한국 여자축구의 부실은 사회적으로 규명돼야 하고, 상황은 개선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축구하는 여자 처음 봐서요 l 이의진 지음, 드루, 1만9800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