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미국의 피아니스트 리언 플라이셔(1928~2020)의 1963년 모습(사진 왼쪽)과 2007년 12월 위싱턴디시의 케네디센터 창립 기념 갈라쇼 공연 전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EPA 연합뉴스광고서울시립교향악단 실내악(체임버) 시리즈, 공연 시작 30분 전, 이날의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는 분장실에 놓인 피아노에 앉아 연습하느라 분주했어요.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3악장 스케르초. 이 곡은 정말이지, 피아니스트를 한시도 놓아주지 않는 곡이라 저도 그 심정을 잘 알고 있지요. 수백시간을 연습하고 수십번 연주했어도 연주 중 작은 감정의 동요가 생겨 근육이 긴장하거나 소위 ‘삐끗’이 시작되는 순간, 이 곡은 돌이킬 수 없이 ‘엉망’이 돼버려요. 게다가 혼자서 수습할 수도 없는, 5명이 함께 연주하는 곡이니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요.매번 이렇게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이 곡은 피아니스트를 ‘불안탕’이라는 작은 수조에 가두고 그 안에서 수백번 빙빙 돌게 만드는 악랄한 곡이랍니다. 피아니스트는 그렇게 무대로 나가기 직전까지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손가락을 쉬지 않고 있었어요.분장실에서 피아니스트가 연습하던 바로 그 3악장 스케르초는 알레그로의 빠른 템포에서 다른 악기들과 함께 타이트하게 리듬을 전개하는, 긴장감 넘치는 곡이에요. 처음 브람스는 이 곡을 현악 5중주로 작곡하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친구였던 요제프 요아힘에게 보여주었어요. 요아힘은 브람스에게 곡의 매력이 부족하다며 현악기 편성이 문제라고 조언해요. 또 피아니스트이자 친구였던 클라라 슈만은 피아노가 없는 게 문제라고 말해줍니다. 결국 브람스는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악곡을 완전히 바꿔버려요. 그런데 현악 5중주를 두대의 피아노 편성으로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더니, 이번엔 클라라가 이렇게 말해요. “원곡을 편곡한 느낌이 너무 강해요. 차라리 처음 편성했던 현악기들을 다시 넣어보세요.” 브람스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지만 클라라의 조언에 현악 5중주와 두대의 피아노의 절충안인 피아노 5중주로 최종 버전을 만듭니다.광고이 곡을 듣는 누구라도 본래 이 곡이 피아노가 없는 현악기 버전이었다가 현악기가 없는 피아노 버전이 된 그 복잡한 역사를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피아노 5중주예요. 작곡 배경을 해설로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실 정도로요.3악장 스케르초는 다단조에서 말 달리는 듯한 리듬을 긴장되게 끌고 가다가, 중간 트리오에서는 피아노와 첼로가 아름다운 다장조의 노래를 시작해요. 기쁨과 환희로 가득한 세상에 그 감사의 빛을 흩뿌리다가 다시 리듬이 충만한 다장조의 말 달리는 느낌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브람스는 31살이었어요. 아직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는 발표하기 전이지만, 꽤 많은 작품으로 작곡가로서 인정받고 있었는데도 그는 동료의 진심 어린 조언에 귀를 기울인 것이지요. 자기만의 확신으로 밀어붙여도 되었겠지만 브람스는 지금보다도 더 완벽한, 더 이상의 미련과 후회가 없을 그 마지막 선택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최선’은 더 이상 나올 게 없는, 가장 마지막 지점까지 가보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음악에서는 이처럼 ‘마지막 버전’이 갖는 의미가 큽니다.광고광고분장실에서 맹렬히 3악장을 연습하던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피아니스트 리언 플라이셔의 앨범이 떠올랐어요. 2007년 세계적인 연주 단체인 에머슨 현악 4중주단과 연주한 브람스 피아노 5중주 앨범이에요. 플라이셔는 100년에 한번 나오는 피아노 신동으로 불렸던 천재예요. 만 31살에 미국 피보디(피바디) 음악원의 교수가 되지만, 3년 뒤 그만 오른손에 마비가 오고 오른손 두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만 36살에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지휘자로, 왼손만으로 연주하도록 작곡된 곡들을 연주하며 음악가의 삶을 살아요. 하지만 여전히 양손 연주에 대한 미련과 희망을 놓지 못합니다.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주사 요법과 파킨슨병 치료제 등의 치료법을 시도하다가 놀랍게도 보톡스 주사를 맞은 뒤 손가락 두개가 서서히 펴집니다. 마비가 온 지 30년 만에, 일흔이 다 되어가는 플라이셔는 드디어 양손으로 연주를 할 수 있게 됩니다.양손으로 연주를 한다지만 오른손 움직임은 여전히 낯설었어요. 10여년 동안 꾸준히 재활을 한 뒤, 그러니까 오른손을 잊은 지 40여년 만에 양손으로 연주한 음반인 ‘투 핸즈’(Two Hands·양손)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 뒤 에머슨 콰르텟과 함께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를 2007년 녹음하는데요. 만 79살, 여든에 가까운 나이였지요. 그때 그의 연주 영상을 보면, 다섯째 손가락(새끼손가락)의 움직임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워요.광고피아니스트라면 당연히 양손을 써야 함에도, 그동안 잃어버린 40여년의 세월, 그 험난한 싸움을 이겨낸 한 인간의 의지와 숭고함이 이 앨범에 담겨 있어요. 마비 전의 움직임과 조금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에게 최종 버전은 양손 연주였던 것이죠. 특히 3악장 스케르초의 중간 부분의 노래는 꼭 리언 플라이셔가 오른손을 되찾은 감사와 기쁨을 노래하는 듯 들립니다. 보통 피아니스트들이 무대로 나가기 직전까지 손을 놓을 수 없는 바로 그 브람스의 3악장을 현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요? 여든이 다 된 노장에게 ‘가장 높은 것’(최선·最善)은 바로 양손 연주로써 최종 버전을 만드는 것이었나 봅니다. 내게 최선(가장 높은 것)은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본다면, 인생의 목표와 방향에 있어 미련과 후회가 덜하겠지요.안인모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