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베니스의 상인’ 공연 장면. 파크컴퍼니 제공광고140분 공연이 끝난 뒤 1200석 규모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은 기립했다. 90살의 신구, 86살의 박근형 두 원로배우가 무대 앞으로 나오자 박수와 환호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고전을 통해 연극의 본질을 배워야 한다”는 두 원로배우와 오경택 연출이 의기투합해 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 연극 ‘베니스의 상인’이 성공적으로 출발했다.작품은 400여년 전 셰익스피어 원작의 5막 20장을 2막 19장으로 재구성하면서도 원작의 플롯을 따른다. 친구 바사니오가 부유한 상속녀 포셔에게 구혼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고자 안토니오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과 ‘살 1파운드’를 걸고 맺은 계약을 두고 우정과 사랑, 복수와 자비, 정의와 공정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원작의 큰 틀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생명을 앗으려는 복수의 잔혹성 때문에 샤일록이 악인으로 보이지만, 그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며 “선악으로 나눌 수 없는 선택의 공정, 양가성, 복잡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던 오 연출의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베니스의 상인’ 공연 장면. 파크컴퍼니 제공오 연출은 샤일록을 선과 악 어느 한쪽에 가두거나 강조하지 않고, 400년 이상 논쟁을 벌여온 작품에 대한 여러 해석과 가치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특히 원작에선 법정 판결에 “그러겠습니다”라는 한마디로 표현된 강제 개종에 대한 샤일록의 수용을 성당에서 신부가 주관하는 개종식으로 시각화하고 비중 있게 배치했다. 재산을 빼앗기고 개종까지 강요당하는 샤일록의 불합리한 상황을 강조한 것이다. 마치 관객에게 ‘샤일록은 악당인가, 피해자인가?’ ‘안토니오와 기독교인의 행위는 정의로운가?’ ‘재판은 과연 현명한 판결인가, 아니면 법의 이름으로 샤일록에게 행한 폭력인가?’를 묻는 듯하다.광고샤일록을 연기한 박근형은 이런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구현한다. 대부업을 악마의 행위라고 비난하고 침까지 뱉으며 경멸하는 안토니오에 대한 속 깊은 분노를 적절히 삭이면서도 그들의 위선과 허세를 조롱하고, 통쾌한 보복을 꿈꾸는 인간 샤일록을 능란하게 연기한다. 딸 제시카에겐 한없이 자상한 눈길을 보내고, 딸이 전 재산을 갖고 도망친 뒤에 닥친 내면의 상실과 좌절, 배신감도 호소력 있게 표현한다. ‘피는 한방울도 흘리게 해선 안 된다’는 판결에 뒤통수를 맞고 몰락하는 순간엔 한없이 무기력한 노인의 전형을 보여준다.‘베니스의 상인’ 공연 장면. 파크컴퍼니 제공제시카도 단지 사랑을 위해 도피한 여성이 아니라, 아버지와 다른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하고, 남편을 따라 자발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결국 기독교인들 안에서 주변인으로 떠도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직면한 인물로 묘사한다. 인색한 아버지를 떠났지만, 결국 몰락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책임 의식을 느끼고 아버지를 품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안토니오와 친구들은 서로의 우정엔 목숨을 걸지만,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뼛속 깊이 배어 마치 조롱과 경멸을 즐기는 인물처럼 다뤄진다.광고광고재판을 주관하는 공작 역을 맡은 신구는 움직임이 적고 대사도 많지 않다. 하지만 계약서대로 살 1파운드를 가져가겠다는 샤일록을 향해 정의만큼 자비가 중요하다는 걸 역설하는 대목은 그의 배우 인생과 뒤섞이며 묵직하게 다가온다.‘베니스의 상인’ 공연 장면. 파크컴퍼니 제공1200석 규모의 대극장 무대인 만큼 뮤지컬적인 요소와 스케일 있는 무대 장치로 연극 본연의 단출함을 극복한다. 시작과 함께 와이어에 매달려 공중을 걷는 인물을 배치해 시선을 사로잡고, 객석 여기저기서 가면을 쓴 배우들이 뛰쳐나와 ‘비바 바코, 비바 카니발’을 부르며 뮤지컬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무대 양쪽에 인생의 항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아치 레이어를 고정해 큰 무대의 빈 공간을 없애고,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 샤일록의 집, 포셔의 벨몬트 집 등 공간을 순환시켜 입체감을 더한다. 특히 작품의 핵심 주제인 ‘정의와 자비는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 공작의 재판정은 압도적 스케일로 무대를 꽉 채운다. 8월9일까지.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