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2021년 8월, 진실화해위원회가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 집단학살된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광고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7일, 국군 헌병사령부는 대통령 특명을 내려보냈다. 육군 제6사단 헌병대 김만식 일등상사도 헌병대장한테서 보도연맹원을 처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음날, 그는 강원도 춘천에서 끌려온 보도연맹원과 횡성·원주에서 경찰이 검속한 요시찰인들을 총살하는 ‘처형’과 확인 사살을 지휘했다. 남한 전역에서 그렇게 10만~20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한 달 뒤, 북한 인민군은 남한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고 부산 점령 작전에 돌입했다. 김만식은 육탄결사대에 자원해 북한 전차 부대를 격파, 저지하는 전공을 세웠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그에게 다수의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1956년 전역해 공직자 생활을 하다 퇴직한 뒤에는 재향군인회 간부도 지냈다. 그는 본디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흥남공업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청년이었다. 해방 직후 소련군이 진주하고, 목재상으로 부를 쌓은 아버지가 인민재판에서 ‘친일파’로 즉결 처형을 당하자 월남해 국군에 입대했다. 보도연맹원 학살에 ‘공산 분자’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이 깔렸을 수 있다. 2007년 11월, 나이 여든에 접어든 전직 해병대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자신이 가담했던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공개 증언했다. 전우회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불편한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를 냈다. “57년 전, 죄 없는 민간인들을 죽인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만식은 한국전쟁의 영웅이자 반공주의자인 동시에 증언자였다. 광고 국가폭력과 집단학살을 다룬 연구는 많다. 긴 세월 숨죽여왔던 피해자와 유족들의 증언도 뒤늦게나마 쌓여가고 있다. 그러나 대량학살 가담자들의 진실 고백과 공개 증언은 매우 드물다. 총을 쏜 사람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들은 정말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방아쇠를 당겼을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모자이크 l 한성훈 지음, 진실의힘, 3만7000원 사회학자 한성훈이 쓴 ‘모자이크’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앞서 진실화해위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가해자 연구는 크게 두 경향으로 나뉘어 왔다. 하나는 국가와 이데올로기, 제도, 명령 체계가 가져온 폭력을 설명하는 구조 분석, 다른 하나는 복종 성향과 권위주의, 반사회적 성격, 탈인간화 같은 심리 분석이다. 지은이는 “두 접근 방식에 ‘감정’이라는 다리를 놓아 심리와 구조의 간극을 메우려” 했다.광고광고 책에는 가해자들의 구체적 행위, 그 행위에서 느낀 감정과 신체 반응, 그리고 그것이 도덕 판단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제주 4·3, 여순사건은 물론, 나치 독일,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비밀경찰, 인도네시아 군부 정권, 일본군 전범의 사례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가해자들의 심리를 부검했다. 가해자들은 잔혹 행위 이후 굴욕감, 수치심, 죄책감, 혐오 같은 복잡다단한 감정과 마주한다. 지은이는 그중에서도 ‘혐오’에 주목했다. 직접적인 혐오는 신체와 불쾌한 감각의 접촉으로 발생한다. 앞서 김만식은 “확인 사살을 하는데, 권총으로 머리를 쏘니까 피가 튀어 내 옷을 흠뻑 적셨”던 순간을 평생 기억에서 지우지 못했다.광고‘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이란 제목의 미국 정보보고서에 첨부된 대전 골령골 학살 현장 사진. 미국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사무소의 총책임자 레너드 애벗 소령이 촬영한 것으로,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처음 발굴해 세상에 공개했다.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제공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체제에서 ‘악의 화신’으로 불렸던 경찰 비밀공작 지휘관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암살 임무를 마치고 귀가한 그는 갑자기 “입에서 쇠 맛이 나고 온몸 구석구석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느낌에 전율한다. 피해자의 신체가 폭발로 훼손됐고, 그렇게 죽어간 모습이 화약 냄새와 함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학살자는 수없이 씻고 또 씻었지만 ‘죽음의 냄새’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 밖에도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가 자신의 범죄를 재연하는 과정에서 보인 구역질(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 나치 학살 가담자들이 처형 직후 보인 생리적 반응 등을 통해, 지은이는 몸이 기억하는 도덕성을 탐색한다. 안와르가 보인 구역질은 “고문과 살인으로 죽어가는 모습에 오염되는 것을 거부하는 신체 반응이자 죽음을 회피하려는 혐오 감정”이다. 오늘날 학계에서 혐오의 역할과 도덕적 가치를 두고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양립한다. 한쪽은 혐오를 편견과 배제를 낳는 위험한 감정으로 여긴다. 다른 쪽은 혐오가 인간이 어떤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도덕 감각과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이 책은 후자의 입장에 서 있다. 가해자에 대한 공감이나 도덕적 옹호가 아니라, 가해자의 행위와 감정을 인간 본성에 비추어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다. 가해자 심리 분석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쇳말은 '분절화'다. 지은이는 가해자가 두개의 자아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자아 안에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 ‘심리적 구획’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학살을 수행하는 자아와 가족을 사랑하는 자아는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도덕적 영향력을 주고받지 않도록 분리돼 있을 뿐이다. 이 설명은 전쟁이 끝난 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간 수많은 가해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광고2022년 6월 진실화해위원회의 정근식 위원장(왼쪽 두번째)를 비롯한 진실화해위 조사관들이 한국전쟁 당시 대전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을 방문한 유엔특별보고관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심리적 분절화’ 개념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익숙한 변명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시 이행’이 책임 회피의 언어라면, ‘심리적 분절화’는 책임을 견디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어 장치이자 면역 체계다. 가해자의 죄책감과 수치심, 혐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의식의 다른 방으로 밀려난다. 국가와 이데올로기는 그런 분절화를 자연스럽게 정당화해 준다. “집단이라는 기제가 개인에게 개별 책임과 도덕적 자율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대가로 수치심 없이 ‘잔인해질 자유’를 부여하며 인격을 분절화”하는 것이다. 인간이 같은 종인 동료 인간을 거리낌 없이 살해할 수 있는 강력한 동인은 ‘비인간화’다. 타인에게서 인격을 지우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하는 인간의 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인지 조작이다. 그럴 때 증오와 살해에 따른 심리적 거부감이나 죄책감은 옅어지고 잔혹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 특정 집단을 향한 무차별 살상에는 극단적 형태의 비인간화가 개입하며, 그 과정에서 살인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도덕과 양심을 거둬들이게 된다. 나치가 유대인 등 홀로코스트 대상을 인간 이하의 동물로 비유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책에서 접하는 가해자들의 서사와 진술, 학살 현장의 세밀한 기록은 고통스럽고 불쾌하다. 가해자를 이해한다는 말도 종종 피해자의 고통을 희석하는 것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이때 느끼는 불편함이야말로 이 주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 긴장이자 불가피한 성찰이라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가해자의 악행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것을 경계할 수 있고, 가담할 가능성을 줄이며, 미연에 방지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