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사육곰 농장에서 반달가슴곰이 철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광고(☞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전망이 아주 좋았어. 큰곰 한 마리에 8000만원, 1억원 하고 그랬어. 그때는 곰 키우던 사람들이 밥술이나 먹고, 큰소리 좀 쳤다고.”지난 12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사육곰’ 농장주 박아무개(70)씨가 철창 안 곰들에게 나뭇잎을 건네며 말했다. 섬강이 휘감은 건등산 아랫마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그의 농장엔 초여름을 맞아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박씨가 곰 사육장 안으로 뽕잎·질경이를 들이밀자, 사육장 안쪽 그늘에 누워있던 곰이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뽕잎도, 오디도 아주 좋아해.”광고20여칸 사육장을 한두마리씩 나눠 쓰는 곰들은 등이나 입 주변 털이 듬성듬성했다. 33년째 사육곰을 길러온 박씨는 “제일 어린 곰이 10살이고 주로 15~16살이지만 20살이 넘은 곰도 있다”고 했다. 옆칸 곰과 싸워 앞발이 없는 곰과 지난해 갑자기 겨드랑이에 종양이 생긴 곰까지 붉게 녹슨 철창만큼이나 곰들의 몸도 ‘갇힌 세월’을 증언하고 있었다. “정부가 키우라고 장려할 때는 언제고… 왜 농장주를 범법자로 만들어. 저들이 법을 바꿔서 사육곰을 불법으로 한 거지, 우린 달라질 거 없어.”박씨가 30대 후반이던 1993년 회사를 그만두고 여태 해온 일은 이제 ‘불법’이 됐다. 올해부터 전국의 곰 사육 농가는 곰을 소유·사육·증식할 수 없다. 웅담(쓸개즙)을 채취해 팔고 알선하는 것도 금지다. 2023년 국회를 통과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에 따른 것이다. 남은 곰들을 보호시설 등으로 옮기는 시간을 벌기 위해 처벌과 몰수를 6개월 유예했는데, 그 계도기간도 30일 끝난다.광고광고정부는 지난 1월1일 ‘곰 사육 전면 금지’를 발표하며 “6개월 내 곰들이 모두 매입되도록 시민단체와 농가 간 협상을 지도·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날 박씨 농장에는 여전히 19마리의 곰이 남았다. 그의 농장까지 전국 9곳 농가에 남겨진 곰은 219마리(웅담 채취용 189마리, 전시·관람용 30마리). 한때 1600마리에서 확연히 줄었지만 적지 않은 수의 곰들이 여전히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4년부터 지리산국립공원 일대에 복원해온 반달가슴곰(100마리로 추정)의 두배가 넘는다.지난 12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한 사육곰 농장의 농장주 박아무개씨가 곰에게 간식으로 나뭇잎을 넣어주고 있다. 김지숙 기자곰들은 어디에서 왔고, 왜 아직 철창에 갇혀 있을까. 사육곰 구조 단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등의 보고서를 보면, 국내 곰 산업은 1981년 본격화됐다. 곰들은 주로 일본·동남아시아에서 들어왔다. 당시 야생동물을 관리하던 산림청은 ‘조수 수출입허가 사무취급규칙’을 제정해 “농가수익 증대” 목적으로 곰을 수입·사육·재수출할 수 있게 했다.광고1985년 정부가 만든 ‘대한뉴스’는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관리만 유의하면 병 없이 쉽게 키울 수” 있으며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은 국내 수요뿐 아니라 수입 대체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광고했다. 1981년 전국 30여곳 농장에서 100여마리로 시작한 곰 사육은 1997년 농장 110여곳, 1600여마리까지 늘었다(산림청). 반면 야생의 곰은 1983년 ‘설악산 포획’을 마지막으로, 자연에서 자취를 감춘다.사육곰 산업은 1990년대까지 급격히 성장했다. ‘절정의 시기’였던 1991년 신문엔 “살아 있는 곰에게 웅담을 빼낸다”며 ‘액체 상태의 웅담’ 광고가 실리는 한편, 철창에 갇혀 산 채로 쓸개즙을 뺏기는 곰의 모습이 방송으로 보도됐다. 1993년 우리나라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사이테스)에 가입하면서 모든 곰의 상업적 수출입이 금지됐지만, 사육곰 농가는 여전히 늘어갔다.원주 사육곰 농가 박씨가 곰 사육을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비슷한 시기인 1992년 충남 당진에서 사육곰 농장을 시작한 김아무개(72)씨는 “당시 농가들도 정부의 사이테스 가입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육곰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고 했다. “국가 간 거래를 못 하는 거지, 국내에서 용도 변경(도살)하는 건 아무 관련 없어요.” 우리나라 정부도 1994년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조수보호법)을 개정해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죽이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농가들은 여전히 사육곰을 길렀다. ‘죽이는 건 불법’이지만 ‘키우는 건 합법’인 상황에서, 농가들은 암암리에 웅담을 채취하고 곰들을 도살해 팔았다.사육곰 산업은 1990년대까지 급격히 성장했다. 1991년 신문엔 “살아 있는 곰에게서 웅담을 빼낸다”며 ‘액체 상태의 웅담’ 광고가 실리는 한편, 철창에 갇혀 산 채로 쓸개즙을 뺏기는 곰의 모습이 방송으로 보도됐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관리부실이 지적되자 정부는 아예 다시 조수보호법을 개정(1997년)해 웅담 채취를 합법화하고 24살 이상 된 사육곰을 도살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1999년)했다. 이 시기 정부가 ‘산업’ 목적으로 사육을 장려한 야생동물은 곰뿐이 아니었다. 2001년 10월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는 축산법상 가축에 타조, 오소리, 뉴트리아, 꿩을 포함했다. 특히 오소리는 국제 거래가 금지된 곰의 ‘대체품’으로 여겨졌다.광고2000년대에 들어서자 상황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사육곰의 열악한 처우와 웅담 채취 실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늘면서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사냥의 대상인 ‘야생조수’(새와 짐승)라 불리던 동물도 ‘야생동식물’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조수보호법’이 폐지되고 ‘야생동식물보호법’이 2004년 제정됐다.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수의사)는 그러나 “이런 제도 변화는 사실 언어와 형식만 바꾼 것에 불과했다”며 “조수가 동물이 됐지만, 동물의 고통이나 보신산업 등 본질적 문제를 개선하진 못했다”고 짚었다.이 시기 사육곰 법제의 가장 큰 변화는 도살을 뜻하는 ‘용도 변경’ 가능 연령이 24살에서 10살로 낮춰진 것이다. 1450여마리(2005년)였던 사육곰은 몇 년 만에 998마리(2012년)까지 줄어든다. 김씨의 곰도 400마리에 달했지만, 2005년 이후엔 매년 용도 변경해 263마리까지 감소했다.이즈음 농가들도 더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 같다. 정부 연구(‘사육곰 실태조사 및 관리 방안 연구’, 2012년)에서 농가의 87%는 국가가 곰을 매입하면 매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부(옛 환경부)도 열악한 사육 환경에 대한 비판 여론이 지속하자 2014~2017년 ‘사육곰 증식 금지 사업’을 진행했다. 남아있는 곰들을 불임(중성화)시켜 증식을 막은 것이다. 곰 967마리가 수술을 받았고 마리당 420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김씨는 당시 “이 산업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박씨 또한 “거의 사육포기 단계”였다. 이들은 정부가 곰들을 매입할 거라는 ‘약속’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바람으로 “증식을 포기”했지만, 곰들은 2020년까지 별다른 조치 없이 농가에 방치됐다. 곰들로서는 중성화수술이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뒤에도, 더 나은 삶을 약속받지 못한 것이다.사육곰 문제 해결이 급물살을 탄 것은, 동물복지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시기 2021년 1월 환경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한 전 장관은 그해 8월 사육곰협회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곰 사육 종식 이행 계획’을 추진했다. 이후 2023년 곰 사육 금지 내용을 담은 야생생물법 개정안(이학영 의원 대표발의)이 국회를 통과하며 사육곰 산업이 제도적으로 마무리됐다.박씨는 왜 여태 곰들을 데리고 있는 걸까. 그는 “중성화 수술을 한 뒤로 정부가 매입한다고 여기고 차일피일 (용도 변경을) 미룬 것”이라고 했다. “나도 동물 키우는 사람이니까, 이왕이면 돈 몇 푼에 죽이는 것보다 좋은 환경으로 보내고 싶지. 내가 분유 먹여 키운 애들이니까.” 그러면서도 그는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직장 생활도 30년 하면 퇴직금이라도 받잖아. 정부는 시민단체가 보상(매입)해줄 거라고 하는데, 마리당 500만원을 준다고 해요. 그건 말도 안 되지.” 그는 “1년 치 사료값만 해도 1천만원 이상”이라며 “거론되는 ‘곰 매입비’가 적당치 않다”고 했다.2022년 1월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방정부(전남 구례군, 충남 서천군), 사육곰 농가, 동물보호단체와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당시 협약에는 정부·지자체가 보호시설 설치·운영과 지원을, 농가는 보호시설 이송 전까지 곰 관리를, 시민단체는 후원·모금으로 곰을 보호시설로 이송하는데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시민단체는 사육곰 농가로부터 곰들을 매입해 정부 보호시설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박씨는 정부가 ‘보상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가 수익을 내는 사기업도 아니고, 시민들 후원금 모아서 곰을 매입하는 거잖아. 사기꾼은 너희(정부)인데 왜 시민단체에 책임을 떠넘기느냔 말이야.”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합당한 가격’을 요구하기란 곤란하다는 것이다. 박씨는 “정부가 곰 매입에 예산을 쓸 수 없다면 (농장 폐업으로 생기는 비용인) 시설철거비·복구비라도 보상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사육곰 산업에 대한 여론이 악화한 2000년대부터 시민단체·사육곰 농가가 지속해서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사육곰 농장 전경. 김지숙 기자지난 45년 인간들이 ‘사육곰 산업’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곰들은 낡은 철창에서 죽어갔다. 외화벌이,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재산이었다가 정작 수출이 막히자 애물단지가 됐다. 정부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이들은 평생을 좁은 우리에 갇혀 살다 제대로 된 도살법 없이 목매달리거나 근육이완제를 투여받으며 고통사했다. 생태정의 연구자 황준서 성공회대 사회융합학부 조교수(사회학전공)는 “우리 사회 인식·행동 변화 속에 관련 법 제도가 조금씩 바뀌고 ‘사육곰 금지’도 이뤄냈지만, 동물과 생명을 대하는 국가의 근본적 태도가 바뀌었는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라 했다.반달가슴곰은 이미 1979년부터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월 현재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뜬장에서 살고 있다.최대한 밀어 넣어도… 90여마리는 갈 곳이 없다오는 7월부터 국내에서 곰 사육이 법으로 완전히 금지되지만, 29일 현재 전국 9곳 농가에는 총 219마리의 반달가슴곰이 남아 있다. 정부가 지난해 국내 최초 공립 곰 보호시설인 ‘구례 곰 마루쉼터’를 열었지만, 수용 규모는 49마리 수준이다. 현재 이곳에선 구조한 사육곰 28마리를 보호하고 있다.올해 개관이 목표인 충남 서천의 또 다른 시설(70여마리 규모)이 문을 열고, 공영·민영 동물원, 국립공원 등에 남은 곰들을 보내더라도 90여마리는 여전히 농가에서 ‘임시보호’란 이름으로 생활해야 한다. 곰 사육이 곧 완전히 금지되지만 제대로 된 대책이 없는 것이다.기후에너지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현재로선 보호시설 건립을 빨리 마무리하고, 농가-시민단체 매입 협상을 독려하면서 보호 여력이 있는 기관에 최대한 밀어 넣는 게 대책”이라고 했다. “필요하면 해외 보호시설 이송도 고려”한다지만 “새롭게 발표할 대책은 없다”고 했다.그러면서 기후부는 곰 장기 사육이 부적합한 산하 기관에까지 보호를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복원 중인 반달가슴곰 가운데 야생에 적응하지 못하는 곰들을 회수하는 자연적응시험장을 웅담 채취 사육곰들의 임시보호소로 활용하거나, 국립공원 유휴부지에 보호시설을 건립하는 식이다. 동물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여건이나 복지를 무시한 채 밀어 넣으려는 것이다.이다솜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국립공원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지정한 공간인데, 사육곰 보호시설이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며 “산림 훼손 발생이나 야생동물 서식지 교란도 우려된다”고 말했다.※참고 자료: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보고서’(곰 보금자리 프로젝트·한국 휴메인월드 포 애니멀즈, 2024), ‘사육곰 36년의 이야기’(녹색연합, 2017)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45년만에 끝나는 ‘곰 사육’…우린 이들을 ‘생명’으로 대하고 있나
(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전망이 아주 좋았어. 큰곰 한 마리에 8000만원, 1억원 하고 그랬어. 그때는 곰 키우던 사람들이 밥술이나 먹고, 큰소리 좀 쳤다고.” 지난 12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