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70대 레바논 할머니의 삶을 다룬 소설에 30대 한국 여성이 공감하게 만드는 게 문학의 축복 아닐까. 사진은 지난 16일 남부 레바논 다이르카눈안나흐르 마을 묘지에서 슈루크 하리리(오른쪽)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진 자신의 쌍둥이 형제들을 추모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광고바야흐로 ‘모자무싸’의 시대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스로의 존재가 진정 가치 있다는 느낌은 대체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나?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켜고 마주하는 세상은 잠든 우리를 놔두고 또 저만치 가 있다. 또 나 혼자만 뒤처진 것일까?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는 2026년의 시대정신, 아니 시대 감정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는 오늘도 세상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가치해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되기 위해, 유의미한 존재로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몸부림친다. 노골적으로 몸부림치는지, 아닌 척하면서 몸부림치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그런 우리의 동지가 여기 또 한명 있다.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여자들이 자신의 백발을 두고 수군거리며 특정 브랜드의 염색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좀 덜 칙칙해 보일 것 같다고 한 것을 듣고 냉큼 그 샴푸를 사다 머리를 감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단위를 잘못 읽어서 정량의 10배를 썼고, 머리는 새파랗게 물들어버렸다. “이웃들 보기가 겁난다.” 실패의 원인은 레드 와인 두잔으로 돌리기로 한다. 와인 두잔을 마신 것은 그만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매년 1월1일에 시작하는 번역 작업을 끝내고 새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들을 읽어보며 레드 와인 두잔을 마시는 것이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72살의 여성인 그의 이름은 ‘알리야’, 라비 알라메딘의 소설 ‘불필요한 여자’의 주인공이다. 그는 혼자다. 아무도 그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정이나 억지 연민은 사양한다.” 알리야는 지난 50년간 37권의 문학 작품을 번역해 집 안에 쌓아두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다. 문학은 그의 종교다.알리야의 사회적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불필요한 여자’로 취급받는 삶이다. 자신의 엄마처럼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억지로 결혼을 한다. 키부터 성기까지 모든 것이 작고 편협한 남편은 ‘다행히도’ 4년 만에 이혼을 선언한다. 재혼을 권하는 엄마의 말을 뿌리치고 알리야는 취업을 선택한다. 유복한 친구 한나가 친척이 심심풀이로 연 서점에 그를 고용하라고 권하자, 서점 주인은 “서점의 얼굴이 되어줄 사람을 찾을 때까지”만 일을 하라고 마지못해 승낙한다. 그는 그 서점이 망할 때까지 50년간 그곳의 직원으로 일한다. 단 한명, 친구 한나를 제외하면 엄마도, 남편도, 서점 주인도 딱히 알리야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알리야는 개의치 않는다. 적어도 개의치 않으려 노력한다. 알리야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문학이기 때문이다.광고‘문학의 성도’ 알리야에게 서점 일은 천직이다. 박봉을 모아 클래식 레코드를 사고, 팔리지 않는 책은 조용히 집으로 가져간다. 반면, 가족은 천형이다. 그의 친정 식구들―정확히는 엄마와 남자 형제들―은 젊었을 때는 남편이 그에게 남겨준 집을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리고, 늙어서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라고 윽박지른다. 그 누구도 알리야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를 원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교류하던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알리야는 오로지 위대한 문학 작품 안에서 존재의 안식을 찾는다. 심지어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번역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언어들로 써진 작품을 아랍어로 번역한다. 그의 모국어가 아랍어이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기 때문이다. 원문으로 가닿을 수 없는 세계를 번역하는 것이 그의 기쁨이다.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한다. “탁월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태도는 오로지 이것, 스스로 쓸모없다고 여기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 무익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 지극히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철학적 형이상학적 사유의 규범을 적용하는 것.” 알리야는 자신의 번역 활동을 회고하며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인용한다.광고광고이 책을 이렇게만 소개한다면 독자들은 아마도 이 책이 숨겨진 ‘제3세계’ 페미니스트 지식인의 권태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알리야는 1930년대에 중동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알리야는 프랑스 위임 통치하의 레바논에서 태어나 청소년기에 독립을 경험하고, 40대부터 기나긴 내전을 경험했다. 이 모든 사건은 알리야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30대의 알리야가 일하던 서점에 드나들던 수줍은 팔레스타인 정착촌 소년 아마드는 레바논 내전을 불러온 ‘검은 9월’을 겪으며 냉혹한 군인이 된다. 내전이 깊어지고, 사는 동네의 거리를 박격포의 사정거리로 비유할 수 있게 되는 동안 알리야는 집 없이 살 바에는 집에서 죽기로 결론을 내린다. 알리야는 자신을 지킬 총을 구하기 위해 청년이 된 아마드를 찾아간다. 아마드는 총을 주고 섹스를 요구한다. 그렇게 얻은 총으로 집에 들어온 강도들을 내쫓았다는 소문이 돌자, 알리야를 못살게 굴던 형제들의 발걸음도 끊긴다. 이 모든 일들이 70대의 머리 파란 노파 알리야의 음성으로 뒤죽박죽 이어진다. 흔한 할머니들의 이야기처럼.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지배적 감정은 당혹감이다. 이 당혹감에 대해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그 역사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한국에 있는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책 속에 살아 숨 쉬는 알리야의 감정과 2026년 서울을 살아가는 30대 여성인 나의 감정이 공명할 때, 나는 너무 당황하고 말았다. 어떻게 이렇게 공감이 가지? 내가 감히 이 인물에 공감을 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너무 공감이 되는데? 지금 내가 뭘 검열하는 거지?광고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사실 나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말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거기에 있는 삶은 내가 아는 ‘삶’과 완전히 다른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레바논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아는 ‘삶’을 발견할 거라고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스스로의 편협함을 인정하기로 했다.장혜영 전 국회의원적지 않은 기사와 르포, 인터뷰를 읽고도 갖지 못했던 ‘동시대 인간으로서의 감각’을 한편의 ‘지어낸 이야기’로 갖게 되는 이 경험을 곱씹으며 어쩌면 문학에 이 시대의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조금 거창하게 말해보고 싶다. 이토록 분열된 시대의 연대는 저널리즘의 팽팽한 씨줄에 ‘지어낸 이야기’의 날줄이 더해져야 비로소 피가 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미사일이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문학의 축복이 아닐까.장혜영 전 국회의원불필요한 여자 l 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다희 옮김, 뮤진트리(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