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팔레스타인 저널리스트(@hosnysalah)가 지난 3월 픽사베이에 올린 현지 소년 모하메드의 사진.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모하메드의 꿈은 축구 선수였지만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다리도, 꿈도 잃었다. 픽사베이 제공 광고종이에 적힌 문장들이 비명처럼 쏟아져 나와 귓가를 때릴 수도 있을까. 종이에 찍힌 구두점 하나하나에 이토록 숨이 가빠질 수 있을까. 동시대인들의 절박하고 긴급한 고통을, 멀리서 그저 활자로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수치스러워질 수도 있을까. 그런 읽기의 경험을 우리는 살면서 몇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번역가 알라 알카이시의 에세이와 시를 엮은 책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은 첫머리부터 고통의 기록이 숨 가쁘게 몰아친다. 거기엔 번역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안온함이 조금도 없다. 12편의 에세이와 14편의 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그 어떤 기록보다 처절한 르포다. 이스라엘에 의해 짓밟히고 봉쇄된 가자에서 언어는 그곳에 살던 사람과 건축물처럼 부서진다. “배고픔은 몸을 집어삼키기 훨씬 전부터 언어의 뼈대를 풀어헤치고, 명료함을 지워버리고, 리듬을 해체”한다. 친구들과 시를 주고받던 메신저 대화방엔 단말마 같은 단문이 올라온다. “나 배고파”, “아직 살아 있어”. 가차 없는 굶주림, 기약 없는 공포가 지배하는 도시에서는 형용사와 조사마저 사치가 된다. 어떤 시인에게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면 차라리 나을까. 가자는 세계의 풍요 곁에서 굶주리고, “이 세상에 속한 곳처럼 느껴지지 않는” 방식으로 고통받는다. 광고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저자는 질기게 쓴다. 팔레스타인 민족으로서 “존엄은 사람이 무언가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견뎌내는 방식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배웠고, 기억은 그 자체로 저항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남았다. 이스라엘의 학살을 수동태로 안전하게 번역하는 서방세계에 맞서, 이 참상을 절박하고도 정확한 언어로 기록할 의무가 그에게는 남겨져 있다. 동물의 이름보다 ‘드론’이라는 명사를 먼저 습득하고, ‘피란’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겪어 배운 아이들의 비통함을 기억할 의무, 숱한 주검들의 이름을 기억할 의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빚어온 진짜 언어를 기록할 의무….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저자는 ‘번역은 끊임없는 전투’라고 선언한다. 번역 불가능한 아랍어를 외교의 언어이자 “단정하게 범주화된 폭력의 언어”인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딜레마가 그의 앞에 놓여 있어서다. “너무 직설적인 번역은 정치적 수사로 기각당할 위험을 안고 있는 반면, 너무 완화된 번역은 그것이 막고자 하는 바로 그 지워짐에 기여하게 될 위험을 떠안는다.” 지난 4월 국내 출간된 ‘완벽한 피해자’(마티)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인 저자 모함메드 엘쿠르드 역시 “팔레스타인인은 오로지 송곳니를 뽑혀야만 말하고 서사화될 수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광고광고 게다가 이곳은 변증법적 극복이 불가능한 세계다. 단일한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세계다. 친구들의 주검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는, 죽음의 기억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가 더블린의 평화로운 거리에 있어도, “빛과 온기를 마치 배급품이라도 되는 듯” 나눠 쓰는 그의 몸은 아직 가자의 폐허를 감각하고 있다. 번역가이자 망명자로서 알카이시는 이 딜레마를 넘어설 ‘대위법적 인식’을 선택한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국과 저항을 동시에 읽어내려 제안한 방법론이다. 바흐의 푸가에서 각자 진행되는 선율들이 하나의 구조를 이루듯, 알카이시는 가자와 더블린이라는 두개의 계절을 살아가는 자신을 받아들인다. ‘전쟁’과 ‘휴전’이라는 권력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지난달 28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통제 범위를 70%까지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불안한 운명 속에서도 삶을 이어 나간다. 그러니 가자는 미디어 속 폐허가 된 구경거리가 아니라, “불협화음 속에서, 꼬이고 흔들리는 문장들 속에서” 기억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역설적으로, 제국과 저항 사이의 균열을 다루는 이 중개의 기예야말로,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무기일 것이다. 광고 제국의 언어를 통해 모국의 고통을 번역해 알리려는 알카이시의 시도는 성공적이었음이 틀림없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출간된 적 없이, 한국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다. 팔레스타인 관련 글을 국내에 소개해 온 서제인 번역가가 알카이시의 에세이 한편을 옮긴 뒤, 이를 읽은 글항아리 출판사가 저자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이런 고통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은 없습니다. 대신 제가 바라는 것은 깨어 있는 상태로 이어지는 독서, 무관심을 거부하는 독서, 스스로에게 변화를 허락하는 독서의 경험입니다.” 그가 요청한 대로다. 이 책을 읽고도 가자의 비명을 외면할 수 있는 독자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광고팔레스타인 저널리스트(@hosnysalah)가 픽사베이에 올린 현지 사진. 지난해 10월 휴전협정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은 이어지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폭격의 공포만큼 굶주림과 빈곤도 이들의 삶을 위협한다. 픽사베이 제공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l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글항아리,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