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직관이 들려주는 삶의 신호 ‘사인’ 내 생일이자 혁명인인 4·19 일상의 특정 숫자가 건네는 격려 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화면을 들여다보고 산다. 모유진 작가는 `모르면 손해'라고 말하는 에스엔에스(SNS) 게시물들을 보며 `좀 손해 보고 살지 뭐'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모유진 제공 광고 나를 키우는 중입니다광고 ‘서너시간 유튜브 영상이나 웹툰을 보고 나서 “와, 오늘 하루 잘 살았다”라고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5년 전쯤 출간한 에세이에서 나는 이렇게 고백했다. 당시 나는 끊임없이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존재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당시 불안은 내가 ‘현재 하고 있지 않은 일’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내 일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집중하지 못했고, 온종일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될까 봐 걱정했다. 이래도 불안하고 저래도 걱정인 나는 무엇을 해도 온전히 쉴 수 없었다. 그땐 몇시간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으면 하루를 망친 것처럼 죄책감이 들었다.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마케팅은 이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에스엔에스(SNS) 피드에는 ‘꼭 해야 할 3가지’, ‘~ 안 하면 큰일 나는 이유’처럼 초조함을 자극하는 게시글이 가득하다. ‘모르면 손해’라는 슬로건 아래에 내 마음대로 한줄 평을 적을 수 있다면, 나는 ‘좀 손해 보고 살지 뭐’라고 쓰고 싶다. 내게 정말 필요한지도 모를 정보들을, 단지 뒤처질지 두려워 꾸역꾸역 수집하며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광고광고 책 ‘사인’의 저자 타라 스와트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다음과 같이 짚어낸다. ‘현대에는 스트레스가 가득하다. 그 원인 가운데 상당 부분은 더 빨리,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 우리를 이끌고 풍요롭게 해줄 주변의 것들을 보는 대신 하루 종일 화면만 쳐다보게끔 하는 기술의 발전 탓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결핍감을 느끼게 된다. 물질주의적인 세상에서 삶은 소비주의에 따라 규정되고, 소셜미디어에 전시된 완벽한 삶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자연과의 연결을 잃어버렸으며,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인해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감각으로부터 단절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현대사회는 이성과 논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만, 우리 내면에는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직관’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뇌 스캔 기술의 발전으로 직관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신경과학적 증거가 늘어났다. 저자는 이 직관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신뢰할 때, 자신에게 찾아온 ‘사인’을 더 잘 알아차리고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사인’이란 무엇일까. 각자의 준거틀에 따라 그것은 신이나 우주 같은 거대한 원천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의 영혼일 수도 있다. 근원이 어디이든 사인은 우리 몸과 환경이 전하는 말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어쩌면 누군가는 정신이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특정 누군가를 떠올리는 순간 바로 그 사람에게서 문자가 오는 것 같은 신비로운 경험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광고 나에게도 늘 머릿속을 맴도는 중요한 숫자가 있다. 바로 내 생일이자 역사적 혁명이 일어났던 날인 ‘4·19’다. 게다가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성경 구절 역시 마태복음 4장19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우연 같은 숫자들로 일상에서 기쁨으로 발견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계기는 뜻밖의 만남이었다. 내가 시비에스(CBS) 간증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상을 우연히 본 미국의 한 교수님이 용기를 내어 먼저 연락을 주셨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와 함께 곡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내 또래의 딸을 둔 엄마이자 한 회사의 대표, 그리고 교수이기도 한 그는 참 다채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일상에 숨어 있는 ‘사인’들을 찾는 법을 알려주었다. 가령 그녀는 ‘11’이라는 숫자를 신뢰했는데, 길을 걷다 우연히 시계에서 ‘11:11’ 같은 숫자를 마주치면 지금 자신이 하나님께 올바르게 인도받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419’라는 숫자를 기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차에 시동을 걸었을 때 계기판에 찍힌 잔여 주행거리가 419㎞라거나, 친구와 한참 대화를 나누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전자레인지 화면에서 4시19분을 발견할 때면, 마치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고 토닥여주는 따뜻한 격려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도서관에서 책 ‘사인’의 도입부를 읽으며, 신경과학자인 저자가 사인을 통해 주변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감사하게 된 과정에 깊이 매료되었을 때, 문득 나도 내 삶의 사인을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내면을 향해 가만히 속삭였다. ‘최근 내게 찾아온 소중한 기회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오늘 내게 419를 세번 보여주세요.’ 놀랍게도 이 막연한 요청은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응답을 보내왔다. 첫번째는 도서관 계정의 초기 비밀번호가 ‘0419’인 것이었고, 두번째는 로그인을 위해 내 손으로 직접 그 숫자를 패드에 입력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바로 그날 오후에 있었다. 한국방송(KBS) 다큐 제작팀과 미팅 도중, 담당 작가님이 뜬금없이 내 생일을 물어 온 것이다. “4월19일이에요”라고 대답하는 순간, 마침내 세번째 사인이 완성되었다. 내면에서 잔잔한 소름과 함께 깊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것이 변해 있는 세상이다.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과 부의 대이동, 기준과 가치의 혼란은 우리를 이른바 ‘불안 세대’로 내몰았다. 무엇 하나 신뢰하기 두려운 요즘,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외부 세계가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가 아닌,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고 세상을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사인’이 아닐까. 설령 사인을 신뢰하고 선택한 일의 결과가 당장은 엉망일지라도 “지금 보면 망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났을 때 신의 한 수일지도 몰라. 아직은 과정일 뿐, 지금 상황을 최종 결과라고 단정 짓기에는 이르니까” 하고 자신의 성장을 믿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싱어송라이터 모유진사인 l 타라 스와트 지음, 이영래 옮김, 알에이치코리아(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