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성해나 작가는 한겨레와 서면·전화 인터뷰에서 “(등단 초기) 창작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뇌한 적도 숱했지만, 절박함 속에서 매일 썼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쓴다”며 소설집 ‘혼모노’ 이후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결과가 자신의 역사관과 사회 문제의식을 명징하게 드러낸 기담집 ‘인비인’이다. ©주용진, 한겨레출판 제공 광고소설집 ‘혼모노’ 이후 1년3개월 만에 성해나 작가가 기담집을 들고 독자 앞에 다시 섰다. 2025년 문학·출판계 사건을 꼽자면 단연코 ‘혼모노’(창비)다. 2025년 3월 출시 1년 만에 40만부가 판매됐다. 그러한 기세 위에서 뜻밖이랄 수밖에 없는 ‘기담집’은 성해나(32)가 성해나로부터 뚫고 나온 궤적이거니와, 치유형 내면 서사가 흔한 주류 문학장에서 또 한층 파격하는 형식이다. 특히 엠제트(MZ) 작가의 소설에서 생체 실험을 자행한 일제 ‘731부대’의 서늘한 그림자를 이토록 겹겹이 드리워 지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더 송연한 것은 작중 역설처럼 예비해 둔 세태일 터. 그렇다, “요즘 세상에 생체 실험이니 하는 문제에 누가 관심을 둔단 말인가.” 표제작 ‘인비인’(人非人), 말하자면 ‘사람, 아닌 사람’은 이름난 영화감독(‘나’)이 한 노인한테 받은 편지 안에서 펼쳐진다. 노인은 패망한 조선의 변두리 의원 아들로 태어났으나 최고의 생화학자를 꿈꾸며 일제 교토대에 입학한 청년이었다. 미래로 내달리는 욕망과 태생에서 들러붙는 결핍감이 동반할 수는 없는 법. 청년은 일본식으로 개명하여 히라누마 가즈오가 되고, 세균학 일인자인 지도교수 요시무라를 “오야지”(아버지)라 부른다. 하얼빈 동행을 제안받는 계기다. 오야지 따라 주저 없이 도착한 데가 노인의 회고인바 “고문 틀에 매달린 사람, 산 채로 해부되고 있는 사람, 포르말린 용액에 보존된 사람의 박제” 등등 “통나무”(마루타)가 즐비한 일제 관동군의 비밀 기관 731부대였다. ‘인비인’은 여기서 태어난 한 생명체를 일단 가리킨다. 온갖 세균의 실험체가 되고서도 가장 오래 버틴 조선인 임산부가 가즈오가 주사한 페스트균에 끝내 죽어 낳은, 그러나 눈, 귀, 팔다리가 없이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져 나온 2.6㎏짜리 “가타마리”(덩어리). 과연 “그것”은 인간이 될 것인가. 기간을 두고 전담하여 사료나 음식을 먹인 이가 가즈오다. 가타마리가 가즈오에게 들러붙어 “오야지”라 부를 때까지.광고 짐승처럼 먹어대던 가타마리가 집어삼킨 만년필 한자루가 복선이 되리라 내다보긴 쉽지 않다. 요시무라가 가즈오 이름을 새겨서 준 선물이었다. 훗날 하얼빈 공원에서 수백구 유골이 발견되기까지, 청년은 의사 집안을 일궈 역삼동 병원장 아들과 뛰어노는 손주들을 보며 “평범”해진 삶을 행복해하는 서울의 한 노인장이었을 뿐이다. 돌연 “1800명을 학살하고 생체 실험한 전범”으로까지 몰린 노인은 원통해 하며 진실을 알려줄 영화 제작을 ‘나’에게 절절히 부탁하기에 이른다. 자신은 요시무라의 “조교”였을 뿐이라고, 노인을 동문이라며 아끼고 “요시무라 교수 아래 있”었으니 “그리 약을 잘 쓰”는 것이라 칭찬하던 병원 단골이 ‘나’의 아버지였다면서 말이다. ‘나’의 세태 인식이 바로 ‘누가 생체 실험 따위 관심을 둔단 말인가’이다. 기득권의 기묘한 ‘가스라이팅’ 같고, 아무렴 다중은 뒤틀린 역사와 사회를 무심히 떠받치는 격이랄까.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에까지 굳게 결부된 문제의식이다. ‘야스쿠니신사 봉헌 글짓기’로 조부가 초등생 때 상 받은 벚나무 책상에서 이제 칼럼 쓰고 강의 준비하는 어느 교수의 무정한 서술, 고종의 하사품이라며 고조부 이래 가보로 간직해 온 도검을 막상은 친일 고위 관리에게 일제가 준 기념품이라고 감정한 방송사 앞에서 데모하는 88살 조부의 행태…. ‘냄새’까지 물림하며 자신들의 ‘가타마리’를 키워 온 친일 유산의 단면이겠다.광고광고 ‘친일 가해’의 번듯한 유산과 위선이 자갈처럼 서걱대니, 이것이 성해나식 ‘기담’이다. 성 작가는 23~2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청산되지 못한 문제 중 우리 사회를 가장 좀먹게 한 것이 친일”이라며 “다 지난 일이라 가벼이 말하는 이들 앞에서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적시하는 과정으로, 침묵이 상식처럼 굳어지지 않게 문학으로서 수면 아래 문제를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인비인 l 성해나 지음, 한겨레출판, 1만8000원 소설은 친일 배경의 세편이 묶인 ‘어제’에 이어 ‘오늘’, ‘내일’ 아래 또 세편씩 구성되어 맞물린다. 각기 소비 자본주의, 인공지능(AI), 그리고 어느 시공간에서건 ‘성공’ ‘욕망’에 예속되는 시대에 ‘인간다움’과 삶의 가치를 구성지게 풍자한다. 작가 말대로 “문학은 미결의 역사를 현재형으로 다시 불러내는 일”이니, 과거는 늘 미래로 이동 중이고 미래는 이미 대개 경험되는 중이다.광고 성 작가는 “이 나라를 속국으로 만들려 했던 이들이 해방 이후 중역에 섰다는 사실이 제겐 여전히 납득되지 않고, 역사 왜곡을 통해 수많은 투사들이 지켜온 기반까지 흔들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 잔재에 속수무책인 사회가 오늘, 내일은 또 어떤 부조리를 무지―무감하게 수용하게 될지 짙어져 오는 그 기미가 진짜 ‘기담’ 아닐까. ‘인비인’은 2019년 발표한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부터 올 6월 ‘고蠱’까지 성 작가의 ‘등단 8년치’를 아우른다. ‘친AI’에서 ‘AI 종속’으로 변질하는 한의사의 말로는 친일을 부정하는 친일의 말로와 겹친다. 작가는 한겨레에 “친일, 존재와 괴리, 근미래에 도래할 AI 사회와 노동”이 주요 관심사였다고 한다. “시대를 거듭해 이어진 균열이자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불안과 변화”를 감각시키는 형식이 도리 없이 기담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소설집은 비관적인가, 심각하기만 한가. 독자가 묻는다면 ‘혼모노’가 어땠는가 되물을 수밖에 없다. “(‘혼모노’ 이후) 1년간 오롯이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처음엔 무던히 넘기지 못했는데,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은 담담해졌습니다. 어른에 대한 정의도 바뀌었어요. 관대하며 공정한 이가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건 성인이나 군자인 것 같습니다. 어른은 나를 제대로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 경거망동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속단하지 않고, 설령 실수하고 실패를 겪더라도 반성하며 책임질 줄 아는 사람, 자신의 불완전함을 밀쳐내지 않고 끌어안는 사람 (…)” “나도 타인도 완벽하지 않고 불안하기에 우리의 미래가 더 낙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