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천현우의 요즘 조선소 _13일러스트레이션 김재영 광고몇몇 언론에서 틈만 나면 군불 지피는 주제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폐지 내지는 축소. 주로 법이 통과됐는데 산업재해 사망률은 변화가 없으며 자본 투자 심리만 위축시키므로 무의미하다는 식이다. 이런 논지의 기사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정말로 책상에서 통계표만 보고 대충 쓴 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짓 한번, 발걸음 한 보 잘못해서 다치고 죽는 쪽은 노동자인데, 그 노동자를 취재한 경우는 거의 없더라. 산업안전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다. 다운로드하고 설치 끝나면 뚝딱 하고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오랜 시간 무의식으로 쌓인 습관을 바꿔야 하는 영역에 가깝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갑자기 오른손을 내려놓고 지금부터 영원히 왼손으로만 식사하라고 하면 누가 금방 적응할 수 있을까. 법이 쓸모없다는 식의 몇몇 냉소와 달리 현장은 천천히 바뀌는 중이었다. 현장에선 이제 안전관리자를 무시하고 작업할 수가 없었다. 특히 원청 안전관리자의 위상은 엄청나다. 한마디 지적사항이라도 나오면 하청 회사는 발칵 뒤집힐 정도다. 현장에서 직접 다치고 쓰러져보니 알겠더라. 중대재해처벌법 약발이 듣긴 듣는구나. 예전 같았으면 어물쩍 넘어가고 계속 일 시켰을 상황이 와도 모두가 작업을 멈추고 내 상태부터 살폈다. 척 봐도 알 수 있듯 조선소 탑재 노동은 사람 다치고 죽기 좋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옥외 작업이며, 관리해야 할 영역이 매우 넓고, 상황에 따라 고소 작업과 밀폐 구역 작업도 해내야 한다. 지상과 높낮이 차 15m가량 되는 선박 외곽에서 그라인더 작업을 한 적 있었다. 발아래를 볼 때마다 머리가 띵했고 바람 한번 불 때마다 심장이 벌렁댔다. 밀폐 구역 작업을 하다 환풍기가 꺼지면 용접 연기가 금방 가득 차서 사방이 뿌옇게 변하는데 이 또한 아찔한 풍경이었다.광고 현장 말고 출퇴근길 또한 꽤 위험하다. 몇만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리는데 큰길로 통근버스며 자전거가 오가서 아찔한 상황도 가끔 나온다. 자전거를 급정거하다가 무릎을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에 찧어버린 사람. 파란불 아슬아슬한 횡단보도를 달리다가 넘어진 사람을 봤다. 내 첫번째 조선소 산재도 출근길에서 일어났다. 좁은 야드 통로에서 자전거를 피하다가 그대로 크레인이 오가는 레일에 발이 걸렸다. 발목이 시큰했다. 사실 나보단 휴대폰이 더 크게 다쳤다. 액정이 완전히 박살 났다. 다리를 절며 탈의실에 도착하니 반장님이 곧바로 반응했다. “니 발 와 그라노?” 사실대로 얘기하니 곧바로 사무실로 데려갔다. 아무래도 노동자가 다쳤을 때 대응 체계가 있는 듯했다. 상황서를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하는 동안 과장님이 차를 몰고 왔다. 차를 타고 남문의 간이병원으로 가는 동안, 과장님은 안 다치는 게 가장 좋지만 다쳤을 땐 눈치 보지 말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병원에서 양말을 벗어보니 발목이 붓거나 하진 않았고 멍만 약간 도진 상태. 바깥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봐도 멀쩡해서 산재 처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선 다 나을 때까지 유급휴가로 쉬라고 했지만 그냥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대충 공상 처리만 하고 끝내리라 짐작했는데 틀렸다. 현장은 이제 사람이 다치면 숨기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면서, 산재를 은폐했다간 큰 손해 볼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다만, 안타깝게도 휴대폰 액정은 비용 처리를 받지 못했다. 수리비로 내 돈 30만원을 써야 했다. 사소한 부상이었던 첫번째 산재와 달리 두번째는 정말 위험했다. 7월 중하순. 여름휴가 전에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원청은 2주 쉬는데 하청만 1주일 쉰다, 원청은 성과급 400%를 받는다더라 등등. 듣고 있으면 배 아픈 소식에 현장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조선소에선 28도 이상이면 30분, 32도를 넘어가면 1시간 더 쉰다. 이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은 오히려 아예 더운 쪽을 선호하기도 했다. 1시간이나 더 쉬어야 할 만큼 대낮 여름 작업은 위험했다. 까딱 목숨을 잃는 위험에 비하면 오히려 땀나고 꿉꿉하면서 축축 처지는 감촉들은 사소한 문제였다. 내가 쓰러졌던 날은 품질 검사원이 그날따라 유달리 까탈스럽게 굴 때였다. 거대한 선체의 일부인 선행탑재(Pre-Erection) 블록을 쌓아둬서 ‘피이(PE)장’이라 불리는 야적장이 있다. 그곳의 크나큰 블록 안에서 용접 수정 작업을 했다. 용접 품질은 이 정도면 되겠지 싶어 지나가면 계속 재검사를 먹였다. 이미 1시간 동안 두꺼운 용접복을 벗지 못한 상태였다. 직관과 달리 직사광선이 쬐는 옥상보다 그 바로 아래가 더 더웠다. 천장은 달아올랐는데 통풍이 전혀 안 되기 때문이었다. 용접기와 그라인더를 들고 이동하는 순간 관자놀이가 눌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두통이 몰려왔다. 몸이 직립보행을 못 하고 좌우로 흐늘거렸다. 아마 멀쩡한 상태였다면 곧바로 위험을 감지했으리라. 온열질환이 무서운 이유는 인지능력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점이었다. 위기란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일을 마치기 위한 본능이 몸을 움직이는 상태였다.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현우야! 괜찮냐?” 같이 일하던 권 형이 달려와서 어깨동무를 했다. 어찌어찌 블록 밖으로 나와 용접복을 벗고 그늘에 누웠다. 물을 마시자 하고 들이켜니 배에서 무언가 밀어 올리는 듯한 이물감과 함께 구토를 했다. 권 형이 회사에 상황을 알렸고 곧 트럭이 도착했다. 탈의실로 도착하니 반장님이 무조건 쉬라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플 때 일한다고 알아주는 사람 없다. 무조건 니 몸부터 챙기라!”광고광고 조선업은 아직도 사람을 갈아서 유지하고 있다. 별개로 안전 영역에선 바뀌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었다. 한국은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선진국이다. 단순한 ‘부국’이 아니라 선진국이란 표현엔, 속한 국민이 마땅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그 마땅한 권리 안엔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함”은 당연히 포함된다. 산업 발전만큼이나 노동자의 안전을 중시할 때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안전이란 과제는 일터에서 아무도 죽지 않을 때까지 강조해야 한다. 완벽히 달성하란 얘기가 아니다. 불교의 십선계나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귀히 여겨야 할 지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산업안전 영역은 아직도 모자람이 가득하다. 꾸짖고 비판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바뀌려는 노력까지 없는 양 호도하진 않았으면 한다. 천현우 | 창원시에서 여러 회사 전전하며 10년간 제조업 노동자로 일했다. 서울 성수동 미디어플랫폼 얼룩소(alookso) 등에서 2년 반 일하다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최근까지 거제 조선소에서 일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을 했다. 산문집 ‘쇳밥일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