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천현우의 요즘 조선소 _12일러스트레이션 김재영 광고평균 기온 앞자리가 숫자 3까지 오르던 초여름, 유급 교육을 받게 됐다. 할 일이 없어서였다. 만들어야 할 배가 한가득한데 일이 없다니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장마철이 길어지거나, 자재 입고가 안 되거나, 용접은 다 끝났는데 배가 못 나가는 경우 등등. 이럴 때 보통 하루이틀 정도 ‘뜨는 날’은 무급 휴가 처리하지만, 길어지면 사쪽에서 교육을 보냈다. 마침 나는 4G(위보기 자세) 용접 자격이 없어 10일 동안 기능교육원으로 교육을 갔다. 중간중간 이론 수업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쉬는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 동안 꼭 읽어야겠다는 책이 있었다.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 울산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원청-현장직-정규직의 삶을 연구한 책이었고, 하청 노동자로서 원청 정규직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고 넘어가야만 했다. 나는 오랫동안 창원의 대기업 공장을 전전했다. 효성중공업, 현대로템, 한국지엠, 에스앤티(S&T)중공업(현 에스앤티다이내믹스)까지, 모아 보면 3년 정도. 모두 하청 노동자로 일했다. 정규직한테 직간접 차별을 숱하게 겪었다. 대공장의 하청 노동자가 원청 노동자를 보는 시선은, 한국인이 재벌을 바라보는 눈빛과 같다. “혐오하지만 갖고 싶은”, 나 또한 딱 그 정도 인식으로 살다가 일하면서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광고 첫번째 계기는 한국지엠에서 일하면서였다. ‘원청 아재들’은 힘들다, 불행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국지엠 정규직 현장 노동자 연봉이 얼마일까? 내가 취재했던 분은 9천만원 정도라고 대답했다. 퇴직을 1년 남겨 둔 분이었기에 평균보단 높았으리라. 그래도 얼추 7천만원 이상이다. 같은 일하는 하청 노동자가 24시간 일해도 절대 받을 수 없는 액수. 내겐 꿈만 같은 연봉을 받아 가던 노동자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두번째 계기는 내가 하청으로 일했던 에스앤티중공업의 인소싱 사건이었다. 원청 노동자가 하청 노동자를 내쫓고 일자리를 꿰찼다. 내쫓은 노동자들은 휴게실조차 같이 쓰지 못하게 했던 이들이었다. 내쫓긴 노동자들은 내가 2년간 일했던 회사의 동료들이었다. 당시 에스앤티 사외하청으로 일하면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화가 났다. 원청은 왜 저토록 이기적인가? 이유를 떠올려보다가 지엠 공장 생각이 났다.광고광고 원청 노동자는 대체 왜 불행해졌는가, 원청 노동자는 왜 이기적으로 변했는가?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부제에서 나오듯 ‘울산 대공장 노동자’다. 여기서 언급하는 울산 대공장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여기서 내가 주목한 집단은 현대차 노동자다. 내가 일했던 지엠은 완성차 회사, 에스앤티중공업은 대형차 부품 회사였다. 아카데믹한 얘기는 책에 다 나와 있다. 나는 ‘현대차 원청 현장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들이 왜 불행하며 이기적이어야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자부심’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블루칼라 노동자의 자부심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아무나 못 하는 일을 해낼 때다. 고도 숙련이 필요한 노동을 통해 훌륭한 결과물을 낼 때다. 현대차의 극초기 상황을 묘사한 책 ‘응답하라, 포니원’을 보면, 한국 최초의 완성차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고난과 ‘자부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대한민국의 자동차 공장 일 대부분은 라인 노동이다. 지루하다. 숙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대체당하기 쉽다. 다른 육체노동과의 호환성도 떨어진다. 자부심을 느낄 여지가 없다. 이 부분이 현대중공업과 크게 다른 점이다. 조선소의 외업은 힘들지언정 지루하지 않다. 매일 하는 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려운 만큼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설비에 의존한 노동이 아니기에 쉽게 대체할 수 없으며 건설업과 호환성도 좋다. 외업 노동자들 다수가 조선업 대량해고 사태 때 평택으로 갈 수 있던 이유다. 이런 차이 탓에 현중 노동자가 현차 노동자들보다 정신건강만큼은 훨씬 좋으리라 장담한다.광고 현대차 현장이 라인 노동, 먹물 말로 ‘테일러-포드식 노동’을 차용한 계기는 노동조합의 거부 때문이었다. 사쪽은 노조에 독일이나 일본 방식의 ‘린 생산식 노동’을 요구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대우자동차를 주축으로 탈숙련, 모듈화, 자동화, 외주화가 진행됐다. 설계는 수도권에서, 생산은 지방에서 하는 ‘공간분업’이 시작됐다. 그 결과 자동차 공장 노동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자조하듯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일은 단순하고 지루해졌으며, 사쪽과 협상력도 떨어졌다. 일터에서 자부심을 찾을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가장 가깝고 안전한 장소는 가정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좋은 아빠 노릇’을 하면서 자존감을 채워나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를 필두로 만들어진 ‘산업 가부장제’, 가장의 월급만으로 나머지 가족을 먹여 살리는 모델은 ‘좋은 아빠 노릇’을 원천 봉쇄했다. 장기 노동, 교대 노동을 고임금과 중산층 지위로 맞교환한 산업 가부장제는, 노동자의 삶 대부분을 일터에 묶어버렸다. 흔히 가부장제는 여성을 지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산업 가부장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지운다. 일터에선 여성을 배제하지만, 일터 밖에선 남성이 배제당한다. 가족은 중산층의 혜택을 누린다. 고액 과외, 많은 여가 생활, 외국여행, 못 한 공부는 아내와 자식의 몫이다. 일터 밖 시간이 부족한 가장은 삶 속에서 자부심을 느낄 요소가 거의 없다. 바닥난 자부심은 현대차 노동자 인터뷰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현금인출기”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정작 자신은 체감할 수 없는, 껍데기뿐인 ‘고액 임금자’로서만 가장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삶. 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가열찬 임금투쟁, 최악의 경우 하청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는 선택까지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일터 안에선 지루한 노동을 불안하게 이어나가고, 일터 밖에선 자신만 빠진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산업 가부장’의 역할을 지속해나갈 수 없는 삶. 풍요롭고 불행한 삶에 잇닿은 그들의 선택을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상여금으로 나라가 떠들썩한 요즘, 행복과 임금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광고 천현우 | 창원시에서 여러 회사 전전하며 10년간 제조업 노동자로 일했다. 서울 성수동 미디어플랫폼 얼룩소(alookso) 등에서 2년 반 일하다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최근까지 거제 조선소에서 일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을 했다. 산문집 ‘쇳밥일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