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순대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가수를 꿈꾸는 임슬지씨. 임슬지씨 제공광고먼저 본 건 줄 선 사람들이었다. 퇴근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낯선 ‘순대 트럭’과 꼬리 문 대기 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아이도 학원에 가고 혼자 때워야 하는 저녁, 반신반의하며 대열에 합류했다. 40분쯤 기다렸을까? 내 차례가 가까워지자 그제야 사장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야리야리한 체구의 젊은이가 고개를 처박고 순대랑 싸우는 것처럼 칼질하고 있었다. 포장 접시에 수북이 쌓아 올린 순대가 7천원이라는 것도 신기했다.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열심히 순대를 썬다고?’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생경한 풍경’에 순대값과 함께 무작정 “인터뷰해달라” 명함을 건넸다.한달 뒤 임슬지(35·사진) 넉살순대 사장을 만났을 때 흠칫 놀랐다. 그는 가수 별과 ‘정말 많이’ 닮았다. “아아, ‘별 사장’이라고 부르는 손님들도 계세요.” 슬지씨는 익숙한 듯 웃었다. ‘넉넉하게 사랑을 베풀면서 살자’는 뜻의 ‘넉살순대’를 준비할 때 친구들은 “그럴 거면 차라리 봉사활동을 해라”며 뜯어말렸다고 한다. 과한 그의 ‘순대 인심’을 이미 목격한 터라 친구들 마음도 이해됐다.“사실 남는 건 많지 않아요. 그래도 전 사람 남는 장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을 더 남기려 머리 쓰는 것보다는요. 그래야 한번 온 분이 또 찾아오시죠.”광고대화를 이어가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도 만났다. 슬지씨는 10년 전 소뇌암 판정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경련 증상에 찾아간 병원에서 “암이 척수를 타고 허리까지 전이됐다”는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수술로 머릿속 암은 제거했지만, 스무번 넘는 항암치료가 남았다.“원래 40㎏이던 몸무게가 수술할 땐 34㎏이었어요. 그땐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 항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치료를 포기했어요.”광고광고슬지씨는 너무 억울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고등학교 때부터 김밥 가게, 청소, 택배 상·하차, 새벽 배송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지방에 있는 2년제 대학의 실용음악학과를 5년 만에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참이었다. 술, 담배를 입에 댄 적도 없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이었을까. 그는 담담히 그때를 떠올렸다.“딱히 지킬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왜 그렇게 산 걸까, 좀 놀아볼 걸 그랬나, 억울하더라고요. ‘남은 시간 동안 보고 싶은 건 보고,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자’ 싶었어요.”광고대전을 중심으로 푸드트럭 ‘넉살순대’를 4년째 운영 중인 임슬지씨가 지난 5월11일 대전 서구 탄방동에서 순대를 썰고 있다. 최예린 기자두려움을 안고 시작한 전국 여행에 동행해준 이는 3살 위 선배인 지금의 남편이었다. 함께 여행하며 느낀 그의 ‘묵묵한 따뜻함’은 슬지씨를 바꿨다. 그와 함께한 길에서 슬지씨는 행복한 순간을 만났다. 낯선 여행지에서 삶의 아름다움도 발견했다. “제가 안 죽고, 살아남을게요. 그러니 계속 같이 여행하고 싶어요.” 내뱉은 어느 날의 고백은 자신을 죽음 밖으로 구출해냈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됐고, 선배는 구형 피시(PC)와 낡은 이불 하나만 챙겨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왔다. 말리는 친구들에게 선배는 “그 친구가 죽게 되더라도 그 순간 내가 옆에 있어야겠다”고 답했단다.겨우 삶의 의지를 되찾고 1년 만에 병원을 찾았을 땐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척수를 타고 허리로 전이됐던 암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의학적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기적이었다. 1년 뒤, 슬지씨와 ‘여행 메이트’는 부부가 됐다. 그러나 음악학원 강사로 일하며 새 삶을 일구던 어느 날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서른살 되던 해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고, 매일 약으로 버텨야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신체 리듬에 직장생활을 잇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뭐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떠올린 게 ‘순대 장사’였다. ‘푸드트럭을 타고 여행하듯 곳곳을 다니며 정겨운 음식을 팔아보자’는 생각이었다. 열심히 준비해 2023년 10월 장사를 시작했지만, 처음 1년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매일 버리는 순대가 너무 아까워서 나중엔 장사가 끝나면 항상 대전역으로 가 거기 계시는 분들께 나눠드렸어요. 부산에 놀러 갔다 맛본 부침개 양념장을 순대용 레시피로 바꿔 만들어봤는데, 그게 인기였어요. 처음엔 무료로 드리다가 ‘차라리 돈을 받고 더 많이 만들어달라’는 손님들 요청에 지금은 하루 100개 한정으로 팔아요. 줄 선 손님들 모습을 보면 여전히 믿기지 않아요. 제가 뭐라고…. 하루하루 정말 감사하죠.”사실 그의 ‘숨은 꿈’은 가수다. 초등학생 때부터 가수를 꿈꿨다고 한다. “하루 중 어떤 순간이 제일 행복해요?” 묻자 슬지씨는 머뭇거리다 “노래 부를 때요. 노래할 때 가장 살아있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자신감이 부족해 남편 앞에서만 노래하곤 하지만 여전히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남몰래 노래 부르며 오늘도 열심히 순대를 써는 슬지씨. 폐허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캐내는 그의 음악은 어떤 색으로 빛날까? 듣고 싶다.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