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이재명 대통령 부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에비앙레뱅/연합뉴스광고길윤형 | 논설위원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이 지난달 22일 “중국 동해안에서 볼 때 한국은 아시아의 중심부에 있는 단검(dagger)”이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 이는 메이지 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천재였던 이노우에 고와시(1843~1895)였다. 이노우에는 참사원 의관 시절인 1882년 9월17일 쓴 ‘조선정략’에서 한반도를 ‘일본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칼’이라고 표현했다. 근대 일본인의 안보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이익선’(세력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3·9대 총리 야마가타 아리모토(1838~1922) 역시 1890년 3월 내놓은 ‘외교정략론’에서 “조선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때는 곧 동양 일대에 변동이 발생하는 때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남겼다.이 두 메이지인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유는 비교적 명료했다. 극동까지 슬금슬금 영토를 넓힌 러시아가 ‘힘의 공백’을 틈타 한반도까지 남하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노우에는 “불행하게도 러시아가 조선을 빼앗는다면 동양의 대세는 완전히 어찌할 수도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야마가타 역시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된다면 “러시아의 수도를 출발하여 십수일이 지나면 말에게 헤이룽강의 물을 먹일 수 있다”고 걱정했다. 즉, 이들의 ‘단검론’은 실제 칼을 쥐지 못한 일본이 러시아라는 ‘공포스러운 강대국’이 한반도를 손에 넣게 된다면, 자신들 역시 발 뻗고 잠들기 힘들게 될 것이라는 현실을 지적한 ‘방어적’ 문제제기였다. 실제 단검을 쥐고 서해에서 중국을 자극하는 비행 훈련을 서슴지 않는 브런슨의 ‘공격적 단검론’과는 ‘찌르겠다’와 ‘찔릴 수 있다’의 차이만큼이나 결이 다른 얘기라고 평할 수 있다.광고이노우에가 한반도의 운명을 깊이 우려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두달 전인 1882년 7월 발생한 임오군란이었다. 조선의 내정이 문란해지며 구식 군인들에게 제때 봉급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자, 서울의 일본공사관까지 큰 피해를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분노한 일본이 조선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자, 청 역시 출병에 나섰다. 현지에서 조선의 허약함을 목도한 이노우에는 망연자실했다. 강건한 정부가 조선을 통치하고 있었다면, 망국으로 귀결되고 마는 우리 근대사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17일(현지시각) 공개된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읽으며,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작동하던 시절이 끝났음을 통감한다. 쇠약해진 청이 1885년 위안스카이(1859~1916)라는 이름의 새파란 젊은이를 조선에 파견해 내정 간섭을 강화했던 것처럼, 미국 역시 트럼프 관세, 방위비 증액, ‘쿠팡 사태’에 대한 고강도 압박 등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통제와 압박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극우’로 꼽히는 한국계 미셸 스틸 대사가 곧 부임하면 이 흐름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광고광고극히 흥미로운 사실은 이 와중에 미-중 간에는 묘한 데탕트의 흐름이 관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은 지난달 14일 베이징에서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구축해가기로 합의했고, 미 국방부는 지난 16일 하와이에 자리한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이름을 원래 쓰던 ‘태평양사령부’로 되돌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6월 미국에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하며 “태평양은 두개의 대국을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고 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 포위’를 위해 만들었던 인도·태평양 전략을 폐기하면서 이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기로 마음먹은 듯 보인다.결국,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과 직접 충돌을 피하며 대중 견제의 부담을 한·일 등 역내 동맹에 떠넘기는 ‘역외균형’을 추구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브런슨이 말한 ‘단검’의 실체는 주한미군이 아닌 한국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피하려 전시 작전권 환수를 서두르는 등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해 버둥거리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와중에 괜한 트집을 잡히면 ‘고종 폐위’ 운운했던 위안스카이 시절 같은 참담한 꼴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광고‘손을 안 대고 코를 풀고 싶다’는 쇠퇴한 패권국과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하위 동맹국. 바로 이것이 목하 세간에서 떠들어대는 이른바 ‘동맹의 위기’의 실체가 아닐까 한다. 강건한 정부라면, 버틸 것은 버티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면서 견뎌내야 한다. 자칫하면 여기서 국운이 꺾일 수도 있다.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