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드라마 ‘참교육’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광고추정헌 | 재단법인 IJM코리아 과장드라마 ‘참교육’이 뜨겁다. 교사를 겁박하고 교실을 지배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교권보호국이 주먹으로 제압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분노는 정당하다. 오늘날 학교 현장이 실제로 그만큼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법이 향하는 방향에서, 우리는 멈춰 서서 곱씹어봐야 한다. 뭐가 이렇게 찜찜할까?드라마가 포착한 교실 붕괴의 핵심에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불균등한 침투가 있다. 국회의원 아버지의 배경을 믿고 교사를 겁박하는 학생, 변호사를 앞세워 학교를 압박하는 학부모, 이들은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니라 계층 권력이 교육 공간을 잠식하는 현실의 반영이다. 아버지가 실각하는 순간 그 학생이 또 다른 폭력의 표적으로 전락하는 장면은 이 구조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폭력의 주인이 교체된 것이지, 구조가 바뀐 것이 아니다.광고범죄학의 ‘억제 이론’이 증명하는 것은 명확하다.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멈추는 것은 ‘처벌이 얼마나 무거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확실한가’ 때문이다. 법 바깥에서 작동하는 사적 제재는 그것이 아무리 통쾌해 보여도, 예측 가능한 억제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폭력이 정당화되는 선례를 남긴다.이것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교훈이기도 하다. ‘군사부일체’의 이름 아래 교사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시절, 체벌과 강압이 만연했다. 강압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낳은 것은 공적 권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었다. ‘참교육’의 교권보호국이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그 방법론이 향하는 곳은 우리가 이미 떠나온 자리다.광고광고교육 정상화를 이야기할 때, 교권 회복이 학생 인권의 후퇴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교사에게 부여되는 공적 권위는 교사 개인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학생이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권리를 위한 것이다. 계층 권력의 침투로 교실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배경 없는 학생들이다. 교권과 학생권은 대립하지 않는다. 공정한 시스템이 부재할 때 함께 무너질 뿐이다.무엇이 필요한가. 위에서 내려오는 강력한 처방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가 스스로 규범을 만들고 지킬 수 있는 구조다. 학교폭력 처리 절차가 경제력과 인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 않도록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신고와 소송에 노출된 교사가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학교 공동체의 규범을 함께 만들고 유지하는 참여의 구조가 복원되어야 한다.‘참교육’이 건드린 분노는 진짜다. 그러나 폭력으로 폭력을 끝낼 수는 없다. 가해자들을 괴물이라고 칭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주먹이 아니라, 주먹이 없어도 교실이 안전한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은 법 조항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육 공동체로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