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 광고 지금 이 문장광고 삼성전자 성과급 합의가 있었던 바로 다음날이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하청노조와 교섭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판결이었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삼성전자 노조와 같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만 노동3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판결문을 본 순간 나는 프레드 로델이 쓴 이 책을 떠올렸다.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해석상 인정되던 사용자 개념을 법에 명시한 것이 개정 노조법(일명 ‘노란봉투법’)이다. 있던 개념을 법으로 표현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래 사용자가 아닌 자가 노조법 개정 덕분에 사용자에 포함되었다고 해석했다. 법 개정 과정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을 대법원은 몰랐다. 게으르고 비겁한 변명이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대법원이 몰라서 그런 것 같진 않다. 이미 결론을 내놓고 그에 맞는 논거를 짜맞춘 것 같달까.광고광고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l 프레드 로델 지음, 이승훈 옮김, 후마니타스(2014)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서 최고봉에 오른 대법관들은 능력주의의 화신이다. 능력주의자들에게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같은 존재일 수 없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243억원의 재산을 신고한 이숙연 대법관은 “기업들에게 (하청노조와 교섭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혼란은 신속한 경영 판단과 적시의 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여 우리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기업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니 먼저 결론을 정해 놓고 나중에 정당화한 것이 분명하다. 비단 법관만 그러할까. 법 만능주의 시대에 다수의 변호사가 정치에 뛰어들었다. 정치인들은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 로펌은 기업을 선호한다. 80년 전 프레드 로델이 말했던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부자를 옹호하고 대기업의 도구이며 언제나 부유한 자, 월스트리트, 그리고 공화당의 편”에 서서 열심히 법 해석하는 자들은 지금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진실은 법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의 일상에서 겪는 평범한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다.” 동료 김동현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민중의 법 해석이 만인의 법 해석이길 바란다.광고윤지영 변호사. 본인 제공 윤지영 l 노동 인권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했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의 대표를 맡고 있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