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영화 ‘세계의 주인’.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광고 오연서 | 법조팀 기자광고 영화 ‘세계의 주인’에는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인 한미도가 법정의 증인석에 선 장면이 나온다. 증인석에서 한미도는 피고인 변호사로부터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증인이 정말 괴로웠다면, 어떻게 아빠에게 하트 이모티콘같이 이런 문자를 보낼 수가 있나요?”광고광고 “성폭행 이후 치른 태권도 대회에서 어떻게 평소보다 좋은 기량을 펼쳐 메달을 딸 수가 있나요?” ‘하트를 붙이면 기분이 좋으니까’, ‘태권도 대회 준비를 열심히 했으니까’라는 한미도의 대답에도 변호사는 여전히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이라며 한미도가 주장하는 피해 사실이 통째로 거짓말이라고 몰아간다.광고 영화의 주인공인 이주인은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교실 뒤에서 춤을 추는 ‘학교 인싸’로 나온다. 그런 주인이 어린 시절 삼촌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학교에 알려진 뒤, 이주인은 학교에서 이런 쪽지들을 받는다. ‘진짜 괜찮은 게 맞아?’ ‘그렇게 행동하는 너의 진짜 의도가 뭐야?’ 학업과 교우관계 모두 모범적인 이주인을 향해 친구들은 ‘저 정도면 갓생(신을 뜻하는 ‘갓’(God)과 인생의 ‘생’(生)이 합쳐진 신조어)을 사는 것’이라며 주인이 성폭력 피해자 같지 않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열심히 사는 한미도에게, 밝게 사는 이주인에게 ‘너무 열심히 살아서’, ‘너무 밝게 살아서’ 성폭력 피해자답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들 주변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광고 현실의 법정에서는 이런 시선이 ‘소송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나타난다. 몇해 전 한 친족 성폭력 사건 법정에서 피고인의 변호사는 피고인의 결혼식 사진과 방명록을 무죄의 증거로 냈다. 증인석에 선 피해자에게 피고인 변호사는 물었다. “성폭행 가해자의 결혼식에서 어떻게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가 있나요?”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한테 어떻게 결혼 축하 메시지를 남길 수가 있나요?” 결혼식 하객으로서 할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한 행동이 피해자에게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이라는 이유로 공격의 빌미가 된다.(이 사건은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났고, 피고인은 항소심에 가서야 범행을 자백했다.) 열심히 사는 피해자도, 밝게 사는 피해자도, 평범하게 사는 피해자도, 아니면 위축되고 나약한 피해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누구도 그들에게 ‘피해자답지 않다’고 지적할 권리는 없다. 그런 지적은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가해자를 단죄하려는 피해자의 마음을 단념하게 만든다.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는 떵떵거리는 사회는 이런 데서 자리 잡는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오늘도 법정의 증인석에 오른다. 장애인 성폭력 혐의로 구속된 피고인이 ‘장애인인 피해자들의 진술을 믿지 못하겠다’며 법정에 불러 세우려고 하자, 피해자 변호사는 ‘재판에 출석하겠다’고 했고, 상사로부터 당한 성추행 사실을 고백한 한 정당인은 법정에서 2시간 넘게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시선이 한미도의 세계를, 이주인의 세계를 쪼그라뜨릴 수 없다. 한미도의 세계는 열심히 사는 한미도의 것이고, 이주인의 세계는 밝게 사는 이주인의 것이다.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