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13일 오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의 허페이창신관에서 휴머노이드가 작업자의 손동작을 따라 하고 있다. 허페이/박민희 기자 광고주황색 로봇팔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차체를 가뿐하게 들어올리고 불꽃을 튀기며 쉼 없이 용접을 한다. 바닥에서는 흰색 운반용 로봇이 자동차용 부품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인간 노동자의 모습은 아주 가끔 보일 뿐이었다. 지난 12일 찾은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신차오 네오파크에 있는 중국 고급 전기차 브랜드 니오(중국명 웨이라이)의 에프(F)2 공장은 로봇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분당 1대꼴로 전기차를 생산한다. 부품 조립을 마친 차량들은 자율주행으로 이동해 차량 내부 시스템으로 1000여가지 기능을 스스로 검사한다. 약 1300대의 생산용 로봇과 500여대의 운송용 로봇이 ‘일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공장 지하에는 하루 1.5테라바이트(TB) 분량의 공정 데이터를 수집하는 인터넷망이 설치돼 있다”며 “앞으로 의사 결정까지 자동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세계 최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기지’를 목표로 확장하고 있는 이 최첨단 공장은 중국 중부 내륙 도시인 허페이가 첨단기술 도시로 변신했음을 보여주는 곳 중 하나다. 10여년 전까지 허페이는 ‘거대한 농촌 마을(縣城)’이라 불렸던 ‘낙후된 대도시’였지만, 허페이시 정부가 주도한 전략적 투자와 중앙정부의 ‘장강 삼각주 일체화’ 전략(2018년 시진핑 주석이 주창한 상하이와 안후이·장쑤·저장성 통합 발전 전략)이 만나 결실을 맺으면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허페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6.8% 성장해 중국 주요 29개 대도시 가운데 성장률 1위다. 광고 1980년대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이 자본주의 실험실이자 개혁개방의 상징으로 도약하면서 ‘선전 속도’, ‘선전 모델’이 주목받았던 것처럼, 최근에는 ‘허페이 속도’, ‘허페이 모델’이 중국 경제의 새 경로를 상징한다. 선전 모델이 개혁개방과 세계화 흐름 속에서 민간 중심의 성장이었다면, 허페이 모델은 세계화가 끝나가고 있는 안보의 시대, 미-중의 사활을 건 첨단기술 경쟁 속에서 중국의 새로운 전략을 보여준다.지난 12일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신차오 네오파크에 있는 중국 고급 전기차 브랜드 니오(웨이라이)의 F2 공장에서 차량 운전자가 배터리를 교체하고 있다. 니오는 배터리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3분 안에 충전할 수 있다. 허페이/박민희 기자 첫번째 열쇳말은 정부의 핵심 역할이다. 허페이시는 산하에 허페이산업투자, 싱타이 자본 등 5개 투자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지하철 건설을 잠정 중단하고 지방 재정수입의 3분의 1을 쏟아부어 당시 10억위안 이상 적자를 내고 있던 디스플레이 기업 징둥팡(BOE)을 유치했다. 징둥팡은 현재 전세계 액정표시장치(LCD) 1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2위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기업이다. 2013년에는 반도체기업 창신메모리(CXMT)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37%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제재에 나서면서 ‘반도체 자립’이 중국의 핵심 과제가 됐고, 창신메모리는 중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했다.광고광고 한발 더 나아가 허페이시는 2020년 파산 위기에 몰려 있던 전기차 기업 니오에 70억위안을 투자해 니오 본사와 생산 공장을 유치했는데, 이를 계기로 비야디(BYD), 폭스바겐 등의 전기차 공장이 들어왔다. 배터리 기업들이 함께 성장하면서 전기차 산업의 주요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허페이시 외사판공실의 뤼샤오메이 부주임은 “허페이 정부가 투자에 모두 성공해 허페이의 첨단산업이 빠르게 발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허페이를 ‘도박 도시’라 부르고 ‘허페이 속도’에 주목한다”며 “허페이의 성공은 도박이 아니고, 투자 때마다 발전 전략에 맞는지 점검하고 치밀하게 연구한 결과”라고 말했다. ‘신핑치허’, 즉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자동차, 인공지능을 융합한 제조업 발전이라는 핵심 전략 설계도에 따른 투자를 했다는 뜻이다.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신차오 네오파크에 있는 중국 고급 전기차 브랜드 니오(중국명 웨이라이)의 F2 공장에서 로봇들이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니오 제공 광고 두번째는 인재다. 12일 허페이 북쪽 구도심에 위치한 중국과학기술대학 캠퍼스에는 한밤중에도 학생들이 바쁘게 오가고 건물들도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 정문에서 안면인식으로 신분을 확인한 뒤에만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인공지능과 양자 기술, 핵융합 에너지와 항공우주, 반도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등 중국 차세대 미래 산업 연구의 핵심 중 하나다. 베이징에 있던 중국과학기술대학(중국과기대)은 1970년대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피하려 ‘도피처’를 찾았고, 허페이시는 시내 가장 좋은 땅을 캠퍼스로 제공하고 국가급 실험실을 설립하는 등 긴밀하게 협력해왔다. 2022년에는 함께 ‘과기대 실리콘밸리’라는 과학기술 특구도 만들었다. ‘신징바오’ 보도를 보면, 중국과기대 졸업생 30%가 매년 허페이에 남아 창업 또는 취업해 혁신 생태계의 인재풀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음성 인식 인공지능 기업 아이플라이텍도 1999년 중국과기대의 언어통신실험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중국과기대 박사과정 연구생이었던 류칭펑 회장이 동료 연구원들과 설립한 회사다. 아이플라이텍의 중국어 이름 ‘커다쉰페이’에서 ‘커다’는 중국과기대를 뜻한다.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의 옛 공항 부지를 활용한 뤄강공원에서 허페이이항이 사람 탑승용 무인운전 비행기 운행 시험을 하고 있다. 허페이/박민희 기자 세번째는 공급망 생태계다. 전기차를 중심으로 태양광, 배터리까지 거대한 공급망 생태계가 만들어지자, 이를 기반으로 로봇, 무인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첨단산업의 숲’이 만들어지고 있다.광고 2006년 설립된 고션하이테크는 허페이시의 배터리 산업 육성과 연구개발 지원 등에 힘입어 1분기 기준 배터리 출하량이 30GWh를 기록하며 글로벌 배터리 탑재량 기준 세계 5위에 오른 중국의 대표 배터리 제조기업이다. 지난 11일 만난 고션하이테크 본사 관계자는 독일 폭스바겐이 약 11억유로를 투자해 지분 24~25%를 가지고 있으며,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부터 에너지저장장치까지 완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페이공대 교수였던 차오런셴이 설립한 태양광 인버터로 시작한 선그로는 이제 풍력,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 종합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했다. 2024년 광저우의 무인기 기업 이항이 허페이시 국유자본 플랫폼과 합작으로 허페이 뤄강공원에 허이항공을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11일 이곳에서 이항 화둥지역 담당자 구융은 “허페이시 정부의 투자와 지원, 중국과기대를 비롯한 풍부한 이공계 인재, 무인기 개발에 필요한 배터리와 부품 기업 등 공급망 생태계를 고려해 이곳에 회사를 설립했다”고 했다. 뤄강공원은 옛 공항 부지를 재개발한 곳으로 화웨이의 연구개발센터, 허이항공의 무인기 시험운영 시설까지 줄지어 입주하고 있다. 허이항공은 이곳에서 무인운전택시 시험비행을 하고 있는데, 윙 하는 굉음과 함께 승객을 태운 무인기의 프로펠러가 빠르게 회전하며 힘차게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120미터까지 솟아오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배터리와 드론 산업의 발전은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에 필요한 부품 공급망을 가장 저렴하게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반이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중국이 로봇 공급망도 완전히 장악했다. 중국 없이는 로봇을 생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도했다.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의 음성 인식 인공지능(AI) 기업 아이플라이텍 본사, 자체 개발 에이아이인 스파크를 비롯해 음성 통역, 번역기, 음성 인식 차량 제어 시스템들을 개발하는 이 회사는 미국의 제재 대상이기도 하다. 허페이/박민희 기자 허페이 모델의 마지막 열쇳말은 ‘미-중 기술 경쟁 속 기술 자립’이다. 지난 13일 찾아간 아이플라이텍 본사에는 자체 개발 인공지능인 스파크를 비롯해 83개 언어를 통역하는 번역기와 이어폰, 번역 안경을 비롯해 산업 현장의 결합을 찾아내는 음향 감지기 등 일상부터 산업까지 파고드는 인공지능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이플라이텍은 2019년 미-중 무역·기술 경쟁이 격화하면서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2018년 인간 전문가 수준의 인공지능 음성 번역 기술을 개발했지만, 이듬해부터 미국산 인공지능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게 됐다. 미국은 아이플라이텍의 기술이 중국 군과 연계될 가능성과 감시 기술에 활용될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그러자 아이플라이텍은 함께 제재 명단에 오른 화웨이의 어센드칩을 이용해 인공지능 개발을 가속화했다. 2023년 화웨이와 협력해 인공지능 대형 모델을 훈련하는 컴퓨팅 플랫폼 ‘페이싱1호’를 내놨고, 이젠 자체 인공지능과 로봇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아이플라이텍의 인공지능 번역 부문 책임자인 청천은 “미국의 제재가 우리를 이 길로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제재가 중국의 기술 발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전략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첨단기술 유출을 차단하려는 벽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9~13일 중국에서 만난 정부·기업 관계자들은 한국이 중국 첨단 제품에 문을 여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한국과의 기술 협력이나 투자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공장에 들어가기 전 휴대폰에 촬영 방지 스티커를 붙여야 했고, 아예 질문도 받지 않겠다는 회사도 있었다. 첨단기술 패권 장악을 위한 국가 전략산업의 시대, 중국 내에서 한국의 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무한정 제조되고 막강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제품의 ‘시장’, 첨단기술 경쟁의 ‘견제 대상’이 된 현실이 한국의 고민을 깊게 한다. 허페이·난징/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