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오십줄 ‘늦깎이 대학생’으로 지낸 필자의 2011년 졸업식 사진. 장남수 제공광고지난 5월 스승의 날, 서울 마포의 평생교육 시설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는 ‘만학도의 별’ 이선재 교장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한다. 1963년 야학으로 시작해 배움의 기회를 놓친 50~80대 여성 6만여명에게 졸업장을 안겨주었으나 설립자인 교장이 별세하며 ‘존폐 위기’에 처해 있다. 고령의 학생이나, 젊은 교사 모두가 간절히 존치를 원하고 있었다. 기사를 보며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성인 여성들을 위해 배움의 기회를 열어준 이선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 지난달 10일 별세했다. 향년 90살. 이 교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학교는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평생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중학교 교사인 사위가 지난해 주말 제주 지역의 방송통신중학교 수업을 맡아 “장모님이 자주 생각나더라” 하며 ‘학습자님’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수업 시간에 자는 학습자님이 단 한분도 없고, 손주뻘의 교사에게도 극존칭을 써서 몸 둘 곳을 모르게 한다. 남자중학교 교실은 아무리 지도해도 지저분하기 마련인데 방통중 학습자님들은 이른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빗자루를 들어 교실 청소부터 하신다. 선생은 괜히 부끄럽고 민망한데 방통중 수업한 다음날 아침은 교실이 반짝인다. 시험 때는 많이들 긴장하신다. “이런 것도 시험에 나옵니까?” “시험 범위 한번 더 알려주십시오.” “연습문제에서만 내는 거 맞지요?” 거듭 확인한다. 학교에서 도시락이 제공되는데도 계절마다 직접 키운 나물과 온갖 반찬을 해와서 나눠 드신다. 수업 빨리 끝내면 좋아하시는 건 또 똑같으시다. 방통중의 체육대회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가벼운 대형 고무공 들고 뒤로 넘겨주기, 박 터트리기 등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미니게임 위주로 진행한다. 그래도 경기는 치열하다. 매년 한번의 소풍(현장체험학습)은 서커스 관람, 족욕 체험, 산책코스 등으로 진행하는데 ‘음주 금지’ 규칙을 강조하지만, 어느새 식탁에 슬그머니 막걸리가 올라와 있기도 하다.”광고올해는 교사인 내 딸도 제주 지역 방송통신고등학교의 한 과목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어미의 학업 과정을 잘 아는 딸의 교실 풍경에 가만히 나를 넣어본다. 분필을 들고 칠판 앞에 선 딸과, 바라보며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는 할머니 학생….나 역시 천막 교실 야학과 독학의 검정고시, 오십줄에 학사모를 쓴 ‘늦깎이 학생’이었기에 그 설렘과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통과해 온 그 배움의 문을, 이제 사위와 딸이 이어가며 누군가와 열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전율로 다가온다.광고광고1978년 섬유직물공장 원풍모방에서 일할 때 3교대 근무의 틈을 활용해 공부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산업체 부설 학교나 공단 노동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사설 학원들에서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충남방직, 방림방적 등에도 산업체 부설 학교가 있었다. 아쉽게도 원풍모방은 1970년대 후반 종업원이 2천여명에 이르렀지만, 8시간 3교대 근무 구조라 야간학교 수업에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삼성고등공민학교, 새마을중학교 같은 곳에 다니거나 드물게 주간 근무 반에 속해 한강재건실업학교 등에서 공부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이조차 어려우면 궁여지책으로 서울 영등포에 있던 한림학원으로 향했다.그곳은 영어, 국어, 교양, 주산 반 등을 운영했는데 교복 한번 입어보지 못한 십대들이 앙증맞은 초록색 학원 배지를 달고 굳이 책을 삼각끈으로 묶어(당시 대학생들에게 유행했다) 옆구리에 끼고 학생 회수권을 구해 버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의 영등포 타임스퀘어 맞은편에 있던 정류장은 원풍모방뿐 아니라 그 일대 공장의 노동자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알파벳이라도 깨치려는, 가짜일지라도 학생이 되고 싶은, 또는 주산을 익혀 사무직원으로 이직해 보려 애쓰던 소녀들의 욕망은 달리 길이 없었기에 학원은 번성했다.광고밤 10시 근무조일 때는 아침 6시에 퇴근해서 떠오른 해를 커튼으로 가린 채 몇시간 자고 오후에 학원으로 달려갔다. 책상에 앉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외우거나 주산 알을 톡톡 튕기다 돌아와 밤에는 실을 감으며 낮에 배운 노래 ‘유 아 마이 선쌰인’(You are my sunshine)을 속으로 불렀다. 부족한 수면과 고된 노동을 버티며 책을 끼고 다닌 그날의 공부는 생존과 자아 사이의 치열한 사투이자 공장 바깥의 세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창문이기도 했다.노동조합 활동에 집중하면서부터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공자왈 맹자왈 외우는 공부가 뭔 대수랴 싶어 교양학원의 등록을 중단했다. 그러나 밀쳐둔 것일 뿐 학업의 꿈은 잠복해 있었다. 세상의 지식을 넓히고 깨우치고 싶은 갈망은 그야말로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같은 것이었다.고등학생이 된 딸에 발맞추어 오십살의 내가 기어코 대학교에 들어간 날, 입학식장 입구에 교수들이 나란히 서서 학생과 내빈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를 본 총장이 빨간 장미 한송이를 건네며 “우리 학교에 자녀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했다. 생긋 웃으며 “제가 입학생입니다” 하자 “아이구, 이분이 입학생이시네.” 깜짝 놀란 총장이 주변 교수들을 불렀고 인사를 시키는 촌극이 펼쳐졌다. 떠올릴 때마다 혼자 피식피식 웃는 장면이다.두꺼운 책과 물병, 돋보기안경을 담은 가방을 메고 지하철 7호선 끝자락 온수역에 내려 걸어 들어가던 길의 젊은 기운들, 교정 안 잔디밭에 피어나던 보랏빛 라일락 향기, 온갖 책이 가득한 도서관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은 이전에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다른 충만함이었다. 열아홉 스물의 학생들을 보며,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사촌이나 동네 언니 이름으로 공장에 왔던 동료들, 캄캄한 새벽이나 늦은 밤에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작업장 문으로 들어서던 자매들이 떠올랐다. 학교 안의 풀 한 포기 낙엽 한 잎에도, 이론으로 배우는 자본과 노동에도, 울컥거리고 뭉클했다. 어린 시절 교복 입고 가는 친구들을 피해 호미를 툭툭 치던 밭둑이 아닌, 배움의 기운이 충만한 교정이었다.광고2026년 3월 충남 지역 방통중 두곳에는 최고령자로 85살의 학생이 입학했고 만학도들의 평균 연령이 65살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해는 87살에 대학 새내기가 되어 과잠(학과가 새겨진 점퍼)을 입고 기뻐하는 어르신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은 해 거창 지역에서는 평균 76살의 할머니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사례도 있었다. 손주가 사준 가방에 교과서와 학용품을 담아 메고 립스틱을 곱게 바른 할머니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교실, 수업이 끝난 뒤 순대며 만두 같은 군것질을 하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장면마다 콧날이 시큰해졌다.얼마 전 월간 ‘작은 책’에 연재한 나의 글 ‘만학의 시간’을 본 한 독자가 ‘지난 호를 읽고’에 이런 후기를 남겼다.“만학의 시간을 읽다가 나의 치열했던 40대가 생각났다. 글 내용이 내 마음과 일치하는 대목이 많아 ‘맞아, 맞아’를 반복했다.”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본인의 어머니를 떠올리는 경우도 많고 본인의 누이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필자의 2006년 고입 검정고시 응시표. 장남수 제공흔히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80살의 입학생에게 ‘때’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자존감을 찾아 성큼 내딛는 순간이다. 어쩌면 진짜 공부란, 단어를 익히고 수학의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평생 맺혔던 질문들에 답을 해 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만학도들은 말한다. “이제야 내 이름을 찾은 것 같다.” 흔히 취업과 승진을 위한 도구적 지식을 공부라 부르기도 하는데 인생의 황혼에 시작하는 배움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다.딸의 교실에 앉아 있을 그 수많은 ‘나’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배움 앞에 무릎 꿇지 않는 그들의 등 뒤에 인생의 깊고 아름다운 교과서가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장남수 | 경남 밀양 출생. 1958년생으로 열여섯살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신정야학에서 공부했다. 원풍모방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해고된 뒤 노동운동을 하며 글을 써왔다. 늦깎이로 검정고시를 거쳐 성공회대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제주도에 살면서 걷고 배우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1984년 ‘빼앗긴 일터’를 시작으로 ‘빼앗긴 일터, 그 후’ ‘파문’ ‘노동의 시간이 문장이 되었기에’ 등을 썼다.